비트코인. 연합뉴스
2017년 9월 7일 수원지방법원은 불법 음란물 사이트인 ‘AVSNOOP.club’을 운영하면서 회원들로부터 사이트 이용료를 비트코인 등으로 받아 총 19억여 원의 수익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안 아무개 씨(33)에게 징역 1년 6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추징금 3억 4000만 원을 선고했다.
판결의 관건은 ‘비트코인’이다. 안 씨가 이용자들로부터 받은 대가 중엔 비트코인 216개가 있었다. 지난해 5월 안 씨가 구속될 당시 범죄수익금 19억여 원 중 14억여 원은 현금, 나머지는 비트코인 216개(당시 5억여 원어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비트코인 지갑을 압수한 상태다.
당시 판결에 이목이 집중됐던 이유가 있었다. 검찰이 가상화폐에 대한 몰수를 구형한 최초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형법상 범죄로 인해 취득한 물건을 몰수하고 몰수가 불가능한 수익은 가액을 추징한다. 당시 검찰은 약 19억 7000만 원을 범죄수익으로 봤다. 비트코인 216개를 몰수하고 14억 7000만 원을 추징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반면 안 씨는 “금액 전부를 범죄수익으로 봐선 안 되고, 검찰에서 스스로 인정한 3억 4000만 원만이 범죄수익에 해당한다”며 “비트코인은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는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여서 몰수가 적정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안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1심에서 “안 씨의 범죄수익을 3억 4000만 원으로 인정하는 이상, 객관적 기준가치를 상정할 수 없는 비트코인 중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비트코인은 현금과는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이기 때문에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며 3억 4000만 원만을 현금으로 추징했다.
1심 판결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9월 8일 Y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범죄자들 X꿀이네, 잡히기 전에 비트코인으로 다 넣으면 되네”라며 “몇년 교도소 살다 나와서 시세 오르면 X이득”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회원은 “와, 이거 진짜 X통수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조건 범죄자가 이득이네”라며 “몰수 안 하면 안전한 은닉처가 넷상에 생기는 거네”라고 우려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범죄자를 옹호한 판결로 사법부가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1심 판결 이후 수개월이 흘렀지만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검찰이 “실체는 없지만 재산으로 인정하는 채권처럼 비트코인도 환금이 가능한 몰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법원에 즉각 항소했기 때문이다. 오는 1월 30일 2심 선고공판에 가상화폐 투자자들과 법조 전문가들의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실제로 법조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본승 변호사는 “법원이 어떤 형태든 범죄수익을 몰수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범죄수익을 전부 비트코인으로 바꿀 수 있다. 판결에 대해선 헌법소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상급심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가상화폐 사례 자체가 판결로 나온 것이 처음이다”며 “판결을 존중한다면 2심에서도 몰수는 물론 추징도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1심 법원이 비트코인에 대한 몰수 청구를 기각한 이유는 뭘까. 제본승 변호사는 “일단 비트코인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면, 법령의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물건도 아니고 채권도 아니고 유가증권도 아니다”면서 “매우 독특한 개념이라 몰수하는 것이 애매하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투자자들도 2심 판결을 주목하고 있다. 1심 판결 소식을 접한 민 아무개 씨는 “2심 결과가 궁금하다. 비트코인 채팅방에서 코인을 돈으로 받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범죄수익의 몰수 여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에 대한 추징금 산정 시점도 관심거리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안 씨가 구속될 당시 비트코인 216개는 5억여 원어치 ‘5월 17일 기준, 1개당 약 220만 원’의 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216개는 ‘1월 28일 현재, 1개당 1280만 원’에 달해 약 30억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비트코인 거래소 광경. 일요신문DB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몰수나 추징의 가액 산정 시점은 ‘재판 선고 시’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의 가치는 하루에도 급등락을 반복하고 거래소별 화폐가격도 제각각이다.
제본승 변호사는 “비트코인을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바꾸었을 때는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일종의 채권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몰수가 아닌 가액 추징으로 하고 행위시를 기준으로 범죄수익을 평가해서 추징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증폭되자 법조계에서는 “국회나 정부의 법률 미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거래를 일단 허용하고 오는 30일부터 거래 실명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기 위한 기초자료도 생성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에 대한 ‘성격’ 규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변호사는 “추심의 대상인 물건에는 권리가 포함된다. 1심 법원이 비트코인에 대해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해석을 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사실 국회에서 입법으로 정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 했다. 판사들이 판결을 해야 하는데 답이 없으니, 판단을 미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급심 법원이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처음으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우리 정부의 대응과 차이가 확연하다. 미국은 이미 가상화폐를 화폐나 지급 수단이 아닌 일반상품으로 규정했다. 가상화폐가 자금세탁이나 범죄수익 은닉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도 일찌감치 정비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6월 미국 뉴욕주 금융감독국 ‘NYDFS’은 자금세탁방지, 이용자보호 등을 고려한 종합규제체계를 마련했다. 디지털화폐를 교환수단 또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전자적 단위를 전반적으로 정의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성격’이 명확하면 처벌도 쉽다. 2015년 당시 미국 정부는 현재는 없어진 암시장 실크로드(Silk Road) 조사에서 압수한 비트코인을 여러 차례 경매로 처분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유죄 평결을 받은 실크로드 운영자 로스 울브리히트와의 오랜 법정 다툼 끝에 경매 수익금을 인수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앞서 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물론 모든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오로지 법원의 판결만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