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업계에서는 벌써 대우건설 매각이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매각 의지가 워낙 강한 탓에 대우건설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부풀어오르고 있다. 지금 상태로 매각을 강행한다면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대우건설 지분 50.75%를 3조 2000억 원에 인수했다. 지난 19일 단독 입찰한 호반건설의 인수 희망가격은 1조 6000억 원가량으로 전해진다. 이대로 매각된다면 산업은행은 국민 혈세 절반을 날리는 셈이 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미 지난 정부에서 매각이 결정됐고, 이를 위해 진행해왔던 일”이라며 “가격적인 부분을 고려하기보다 (무조건) 팔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특혜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23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산업은행은 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지난해 5월 헐값 매각에 따른 관련자들의 법적 책임을 면하는 정관 개정을 했고, 대우건설을 헐값에 팔아 넘기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지분 분할매수를 역제안하는 등 석연치 않은 과정이 계속되는데, 정권과 호반건설의 커넥션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입찰 전 호반건설은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50.75% 가운데 40%를 우선 인수하고 나머지 10.75%는 3년 후에 인수하는 ‘분할매수’를 제안했으며 산업은행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본입찰이 성사됐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정관 개정은 (지난 정권 때인) 4월에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M&A업계에서는 인수전에 나서는 호반건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일요신문DB
한편에서는 호반건설의 인수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동안 호반건설이 M&A시장에서 보인 모호한 행보 때문이다. 호반건설은 2015년 2월 금호산업을 시작으로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까지 모두 수차례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실제 인수한 곳은 2016년 울트라건설과 지난해 제주 퍼시픽랜드, 두 곳이다. 번번이 예비입찰 혹은 본입찰에 참여해 예상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중도 포기해왔다. 인수 가격 역시 울트라건설이 208억 원, 퍼시픽랜드가 800억 원가량으로 조 단위 인수전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호반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최고경영진의 사업다각화 의지에 맞춰 진정성을 갖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며 M&A에 참여해왔다”며 “때에 따라선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M&A 흥행을 위해 우리를 끌어들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가 성공하더라도 호반건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준선 기자
일부에서는 과거 대우건설을 인수해 어려움을 겪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처럼 호반건설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6000억 원에서 7000억 원가량을 차입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호반건설의 현 재무상태에서는 이 정도 차입금은 부담스럽다”며 “산업은행과 추가적으로 맺어야 하는 잔여 지분 인수에 대한 협상도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호반그룹의 건설계열을 보면 지난해 매출 추정액이 6조 원에 달하며, 추정영업이익은 1조 3000억 원”이라며 “단순 비교해 ‘승자의 저주’를 예단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건설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덩치도 크고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이 상당히 많다“며 ”능력에 별탈이 없다면 이른바 ‘새우가 고래를 먹는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우건설이 매력적인 건설사임에는 틀림없지만 국내 주택에 사업 비중이 큰 호반건설이 해외 토목 부문과 플랜트 부문에서도 강점을 보이는 대우건설을 인수해 어떻게 꾸려나갈지 관건“이라며 ”업계에서 대우건설은 자존심이 강한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호반건설에 피인수된 후 직원들 사기를 잘 추슬러야 하는 것도 숙제“라고 내다봤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산은에 드리운 ‘대우그룹’ 그림자…건설·자동차·조선업까지 애물단지로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외에도 대우조선해양 56.88%, 한국지엠(옛 대우자동차) 지분 17.02% 등 옛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옛 대우 계열사들의 지분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일부에서는 대우그룹의 어두운 그림자가 산은에 미쳤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조선업 불황 등으로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지나친 국민 혈세를 투입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2015년 5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이 10조 원이 넘는 지원을 통해 ‘부실회사’를 회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2월 신년 경영계획발표회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에 가장 기본적 원칙은 추가 자금지원은 없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 후 수출입은행과 2조 9000억 원에 달하는 추가 자금을 지원해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한국지엠 또한 지난해 산업은행의 비토권이 만료됨과 동시에 철수설 재점화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최근에는 한국지엠 모회사인 제너럴모터스가 한국 정부에 한국 신차 배정을 조건으로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요구했다는 ‘갑질’ 의혹까지 불거졌다. 한국지엠 측은 “조건부 투자요구는 없었다”며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대우 계열사들 처리에 대한 산업은행의 성적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산업은행은 2016년 4월 KDB대우증권(옛 대우증권) 지분 43%를 미래에셋증권에 매각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분 인수 이후 양사 합병을 통해 ‘미래에셋대우’로 법인명을 변경, 국내 증권업계 1위로 등극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