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 사진=박정훈 기자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은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에서 열린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청와대가 강압해 전경련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허현준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가 전경련을 통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이날 법정에서 지난 2014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청와대가 지정한 특정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회장은 “단체들로부터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받기 전에 특정단체에 지원 금액을 미리 지원하는 경우가 있냐”고 검찰이 묻자 “거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청와대가 지원 대상 단체 명단을 미리 짜 놓고 자금을 지원하라는 식으로 요구한 것은 2014년 1월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검찰이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냐”고 질문하자 이승철 전 부회장은 “회원사에 불이익이 갈까 봐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당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김기춘) 비서실장이 직접 챙기는 관심사니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빨리 조치를 취하라”고 독촉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특정 단체를 지원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하는 정황도 일부 공개됐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신동철 전 비서관에게서 “최소한 선진화시민행동과 애국단체총협의회는 실장 지시이니 지원하라”는 독촉과 함께, 청와대 측이 두 단체는 대선 때 도움을 줬으니 지원해야 한다는 말도 당시에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허현준 전 행정관은 월드피스자유연합이란 단체에 지원금을 더 주라며 “4대 개혁과 관련해 연합이 할 일이 많다. 다른 데 지원금을 빼서라도 지원해줘라”는 말을 했다고 이 전 부회장은 증언했다.
하지만 이후 2016년 4월 언론이 어버이연합 지원 의혹을 보도하자, 전경련은 청와대가 제시한 명단의 단체들에게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자 허 전 행정관은 당시 전경련 권순범 사회협력팀장에게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가 해당 언론사 앞에서 데모할 테니 곧 무마될 것이다. 대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전경련은 2016년 7월부터 시대정신 계열 단체들에 자금 지원을 재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