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통합에 반대하는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발목이 붙잡힌 상황이다. 비례대표 한 석이라도 더 챙기려는 안철수 대표와 출당을 요구하는 의원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박은숙 기자
국민의당 내부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 18명이 ‘민주평화당’(약칭 ‘민평당’)이라는 이름의 개혁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 노선을 계승할 정당’이라며 창당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민평당 창당을 준비 중이다. 이들 가운데 단연 주목을 받는 인물은 비례대표인 장정숙·박주현·이상돈 의원이다.
이 세 사람은 국민의당을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의 당선인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 이상의 당적을 가지는 때 그 당선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이들이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민의당에서 먼저 세 사람을 출당조치를 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바른정당과 통합을 시도하며 의석수 한 석이라도 확보하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비례대표를 최대한 안고 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함께 통합을 추진 중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합의 이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출당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안 대표는 “비례대표는 국민이 뽑아준 정당의 자산”이라며 비례대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두 사람이 이견을 보이는 동안 국민의당 비례대표 13명은 둘로 나뉘었다. 통합에 반대하며 안 대표에게 ‘출당’을 요구하는 3인과 바른정당과의 통합정당에 몸을 싣게 될 10인. 친안계로 알려졌던 비례대표 김중로·김수민 의원도 통합파에 발을 담근 상태다.
통합파인 10명은 안 대표 뒤에서 차분하게 통합을 추진 중이지만, 통합반대파인 3인은 의원직이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최악의 경우 몸은 통합신당에 두고 마음은 국민의당에 둔 채 마치 ‘유체이탈’하듯 의정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도 안 대표가 비례대표 의원들의 거취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신당) 거기 놓고 우리하고 활동하면 된다”고 말했다. 통합 반대를 외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적만 통합신당에 두고, 개혁신당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개혁신당(민평당) 세력은 안 대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경진 개혁신당 창당기획단장은 지난 1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안 대표를 향해 “속이 그렇게 밴댕이 같아서 무슨 당대표를 하나”라고 강하게 비꼬았다.
통합 반대파인 비례대표 3인 또한 안 대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현 의원실 관계자는 “안 대표가 ‘당원권 정지’ 시동을 걸고 있던데, 여기에 박주현 의원은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반어법이다. 안 대표의 ‘정치적 탄압’ 모양새가 짜증나서 그런 말까지도 하더라”고 전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박은숙 기자
장정숙 의원실 관계자는 “(통합신당으로) 가지 않으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비례대표 제명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그렇게 안 해주면 우리도 입장이 곤란해진다”며 “안 대표의 옹고집 같은 정치로 (통합을) 망치고 있다. ‘새정치’를 한다면 깔끔하게 놓아줘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상돈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이 되고 안 대표가 비례대표 제명을 안 시켜주면 통합신당 소속원으로 활동은 못 하고 의정활동만 할 것 같다”면서도 “(만약 안 대표가) 비례대표 제명을 해준다면 개혁신당에 힘을 보태서 입당하고, 소속원이 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바른정당의 일부 의원들은 ‘국민의당 비례대표 출당’ 문제에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바른정당은 국민의당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면서 “국민의당 지도부가 그들(비례대표 3인)을 제명시키지 않는 것을 찬성한다”고 안 대표에 무게를 실어줬다.
하지만 바른정당은 지난해 2월 소속 의원의 이름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의원이 소속 정당에서 분리된 정당으로 소속을 바꾸는 경우에도 비례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는 ‘김현아 방지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바른정당에 입당하려 했던 비례대표 김현아 의원을 출당시켜주지 않았다. 때문에 당적을 바꾸지 못한 김 의원은 족쇄를 찬 채 의정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자가 하 의원에게 ‘이를 방지하는 법안은 발의했으나 왜 이번 반대파 출당은 못 도와주느냐’라고 묻자 그는 “(국민의당 내 반대파 비례대표 의원들이 바른정당과 합당할 수 있도록) 설득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정치적인 판단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고, 법안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탈당을) 즉각하라는 뜻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편, 유 의원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현아 의원이 저희(바른정당)와 뜻을 같이 했는데, 한국당이 출당을 안 시켜줘서 한국당 내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