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주를 상대로 수년간 ‘갑질’을 하고 제왕적 기업 운영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치즈통행세, 보복출점 등 미스터피자 오너의 갑질에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가맹사업법 개정 등 제도개선으로 근본적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24일 내놓은 논평이다. 가맹점주들은 재판부의 결정에 큰 충격을 받고 앞으로의 영업 환경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갑질 논란을 빚으며 법적 다툼 여지가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르다김선생·피자헛·하남돼지집·총각네 야채가게 등 프랜차이즈 기업 대부분이 식자재 납품이나 광고비 등의 부분에서 가맹점주에 대한 갑질 논란을 빚어왔다.
그만큼 미스터피자 사건은 관련 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상징적인 사건인 데다 현 정부에서 검찰이 처음으로 빼든 사정의 칼날이기도 하다.
미스터피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맹점주들을 압박해 회장 일가의 자산을 불리고 횡령한 혐의로 대국민적 공분을 샀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6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서초구 미스터피자 본사, 장안유업 등 관계사 2곳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사정 칼날을 뽑았다.
미스터피자의 갑질 논란의 주요 쟁점은 ‘치즈통행세’와 가맹점주들을 응징하는 ‘보복출점’ 등이다. 치즈통행세 문제는 정 전 회장이 2005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MP그룹과 가맹점의 치즈 유통단계에 정 전 회장의 친동생 명의의 납품 업체를 끼워 넣어 57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미스터피자에서 탈퇴한 가맹점주들은 새 피자 브랜드인 ‘피자연합’을 만들어 사업을 전개했다. 그러자 미스터피자는 피자연합 매장 근처에 미스터피자 직영점을 내는 등 보복출점을 하고,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최저가에 피자를 판매하는 등의 맞불작전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MP그룹은 식자재유통업체가 피자연합에게 치즈·소스를 납품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또 미스터피자는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 ‘피자연합’ 설립을 주도한 전 가맹점주 이 아무개 씨를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혐의가 없다는 처분이 나오자 항고를 했고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지난해 3월 목숨을 끊었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3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처럼 미스터피자 갑질 논란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자 검찰도 강력하게 대응했다. 검찰은 보다 적극적인 공소유지를 위해 수사검사가 공판에 직접 참여하는 직관사건으로 미스터피자 사건을 다뤄왔다. 결국 정우현 전 회장에게는 징역 9년을 구형하며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판결했다. 검찰 구형보다 선고 형량이 상당히 낮게 나왔는데 그 이유는 미스터피자에 제기된 대부분의 갑질 혐의는 무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치즈통행세’는 부당지원과 횡령의 두 가지 혐의로 갈래가 나눠진다. 재판부는 정 전 회장이 동생에게 치즈통행세를 챙기도록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를 일부 유죄 인정했으나, 통행세를 통해 MP그룹의 자금을 횡령했다고 본 검찰의 공소사실은 증거부족으로 무죄로 봤다. 또 다른 쟁점인 ‘보복출점’에 대해 법원은 증거가 없다고 판단해 역시 무죄로 봤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구형에 비해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정부 들어 첫 사정 칼날을 대기업이 아닌 미스터피자에 들이댄 검찰은 민심을 읽는 사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스터피자 사건의 핵심인 치즈통행세와 관련해 검찰이 횡령죄 성립에 대한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지 못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변호인이 정 전 회장과 그 동생의 공모관계를 쟁점으로 이끌어갔는데, 검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해 줄줄이 무죄가 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스터피자는 판·검사 출신의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검찰의 칼날을 막았다. 법무법인 평산의 강찬우·이우룡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의 송봉준 변호사 등이 각 쟁점을 나눠 맡았다. 변호인단 중 가장 눈에 띈 인사는 강찬우 변호사다. 수원지검장 출신 강찬우 변호사(연수원 18기)는 서울지검 특수2부 부부장, 대검찰청 중수3과장,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법무부 법무실장 등을 거친 ‘특수통’ 출신이다. 정 전 회장과 경상남도 진주고 동문이다.
정우현 전 회장과 MP그룹을 변호한 이우룡 변호사(연수원 22기)는 수원지법 부장판사 출신이고, 바른의 송봉준(연수원 25기)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근무했다. 정 전 회장의 친동생 정 아무개 씨는 기업 형사 사건을 주로 다뤄온 전치영 변호사가, 최병민 미스터피자 대표는 조일원 변호사가 맡았다.
재판부는 “(정 전 회장이) 일부 범행을 인정·반성하고 있는 점과 언론에 제기된 것과 달리 위법한 보복출점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토종 피자기업을 마지막으로 살릴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는다면 피고인이나 가맹점주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적지 않은 가맹점주가 선처를 요구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양형기준을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의 양형기준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도 중요하다”며 “토종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동력은 엄격하고 공평한 법의 잣대를 경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