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낙하산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미키루크’ 이상호 씨였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미키루크’로 활동해 필명이 더 유명한 이 씨는 노사모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조직 구성의 귀재로 불리는 이 씨는 지난해 문재인 대선캠프에 합류해 활약한 바 있다.
그가 지난해 말 전문건설공제조합 감사로 취임하며 논란이 본격화됐다. 전문건설공제조합 감사는 연봉 2억 7000만 원을 받는 ‘꿀보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는 건설과 관련된 경력이 전혀 없어 자격 논란과 함께 낙하산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특히 이 씨는 감사 업무를 두고 “그 정도는 다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에도 문재인 캠프 출신인 유대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명됐다. 조합 이사장은 3억 5000만 원의 높은 연봉을 받는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전문건설공제조합에 관심이 있었다. 특히 연봉이 높아 누구나 관심 있는 곳이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문재인 캠프 논공행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역시 문재인 캠프 출신인 김성주 전 의원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김 이사장은 문재인 캠프에서 대선 공약을 다듬었고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전문위원 단장을 맡기도 했다.
김 이사장이 이미 확정적이라는 이야기는 취임 훨씬 전부터 정치권에서는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야당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이미 취임 몇 달 전부터 지역구가 전주였던 김성주 전 의원이 확정됐다는 말이 돌고 사실로 보였다.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에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도 하는데, 국민연금공단과 전주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된 김효석 전 의원도 문재인 캠프 출신이다. 김 회장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눈길이 가는 점은 전임 석유협회장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 출신의 강봉균 전 의원이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금융감독위원장을 역임한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손해보험협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선 문재인 캠프 정책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다. 캠프 출신이라는 점과 참여정부 관료 출신인 점을 들어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취임 당시부터 불거졌다.
2012년 대선에서 활약했던 ‘올드보이’들의 귀환도 눈에 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김영주 전 산업부 장관은 무역협회장에 선임됐다. 경제5단체로 꼽히면서 코엑스를 소유하기도 한 핵심 협회장 자리를 두고 김영주 회장과 전윤철 전 감사원장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전 전 원장은 2017년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지난해 자산 106조 원 규모로 부산은행, 경남은행을 자회사로 둔 BNK금융지주에 김지완 회장이 취임했다. 김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으로 참여정부 시절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김 회장은 71세가 넘는 고령으로 회장직에 취임하기에는 많은 나이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또한 금융권 출신이긴 하지만 BNK와 뚜렷한 인연도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지난 2012년 대선 문재인 캠프에서 경제고문으로 활동한 경력 때문에 낙하산으로 분류됐다.
최근 논란이 된 낙하산으로는 한국마사회 회장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사회장은 낙하산 자리로 통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계 인맥으로 통했던 현명관 전 마사회 회장이 취임하자 당시 민주당은 “연말 인사철을 맞아 친박계의 낙하산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낙하산의 부작용 탓인지 현 전 회장은 정유라 특혜 논란 등으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도 마사회장은 낙하산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어 보인다. 지난 19일 김낙순 전 의원이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출신으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김 회장 취임 2개월 전부터 내정설이 퍼지자 노조에서는 경영 경력도 거의 없고, 말 산업과 인연이 없는 등 전문성이 없는 점을 들어 반발이 있었지만 임명에는 문제가 없었다.
장예찬 시사평론가는 “적폐청산이 명분을 얻으려면 더욱 철저한 기준으로 이전 정권과 차별화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인 낙하산 인사를 답습하면 적폐청산이 아닌 권력 교체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