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방영된 MBC ‘하얀거탑’이 재방송되면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문제는 그 이후다. ‘하얀거탑’이 월화드라마와 수목드라마를 대체하며 주 4회 방송되는 것은 피치 못할 상황에 따른 것이라 이해가 가능하다. 게다가 이런 위기에서 꺼내들 수 있는 좋은 드라마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MBC의 저력일 수 있다. 관건은 정상적인 드라마 편성이 이뤄지는 3월 12일 이후에는 확실한 반전이 이뤄질 수 있느냐다.
라인업부터 살펴보자. 월화드라마는 ‘위대한 유혹자’가 준비 중이다. 배우 우도환과 걸그룹 레드벨벳의 조이가 주연을 맡았는데 주연급의 무게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연출을 맡은 강인 PD와 김보연 작가 역시 시청자들 입장에선 낯선 이름들이다. 물론 이런 새얼굴들이 엄청난 화제를 양산하며 성공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낸 사례도 많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확실한 시청률 보증수표는 없는 상황이다.
수목드라마는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가 준비 중이다. 주연으로는 한혜진과 윤상현이 출연을 검토 중인 가운데 최근 유인영이 출연을 확정했다. ‘자체발광 오피스’를 연출한 정지인 PD가 연출을 맡고 ‘장녹수’ ‘명성왕후’ ‘욕망의 불꽃’ ‘인수대비’ 등을 집필한 정하연 작가가 5년 만에 대본을 쓴다. 정하연 작가라는 확실한 카드가 있는 데다 한혜진 윤상현이 주연으로 확정될 경우 ‘위대한 유혹자’에 비해 무게감은 실린다.
물론 출연진이나 스타 작가 내지는 PD가 반드시 시청률을 보장하진 않는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조정석 혜리의 ‘투깝스’, 유승호 채수빈의 ‘로봇이 아니야’ 등은 스타성을 겸비한 출연진을 갖췄음에도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 최승호 신임사장은 17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2018년 프로그램 방향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에 대해선 우선 외주제작보다 자체 제작을 늘리겠다는 계획과 드라마 숫자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우선 ‘전생에 웬수들’이 5월에 종영할 예정인데 그 이후 일일드라마를 잠정 중단한다.
기본적으로 일일드라마는 메인 뉴스의 시청률 견인차 역할이 중요하다. 일일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채널을 바꾸지 않고 메인 뉴스까지 시청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KBS 뉴스 9’가 꾸준히 10%대 중반 시청률을 이어가는 데에는 KBS 일일드라마가 꾸준히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과거 MBC 역시 9시에 메인 뉴스를 방영하던 당시에는 그만큼 그 직전에 방송되는 두 방송사의 일일드라마 싸움이 치열했다.
현재 상황은 두 편의 KBS 일일드라마가 막강한 라인업을 꾸리고 있다. 일일 시청률 순위 1, 2위 자리를 KBS 1TV ‘미워도 사랑해’와 KBS 2TV ‘내 남자의 비밀’이 지키고 있는 것. ‘미워도 사랑해’는 ‘KBS 뉴스 9’ 바로 앞에 편성돼 메인 뉴스 시청률 견인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 중이며 ‘내 남자의 비밀’은 ‘MBC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8시에 방영되는 타사 메인 뉴스프로그램을 견제하는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두 일일드라마 모두 시청률이 20% 수준이다.
주말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40%가 넘는 시청률로 막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데 반해 MBC 주말드라마 ‘돈꽃’과 ‘밥상 차리는 남자’는 10% 후반에서 20%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린 MBC ‘로봇이 아니야’. 공식 홈페이지 캡처.
게다가 단순히 KBS와 SBS 등 지상파 방송사와의 경쟁이 끝이 아니다. 케이블 채널이 막강한 드라마 라인업으로 드라마 시청 층을 주도하고 있고 종편도 점차 드라마 시장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 스타급 배우들이 가장 출연을 선호하는 곳이 케이블 채널이 됐으며 지상파는 종편에게도 밀리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출연 배우들의 라인업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케이블 채널이 드라마보다는 영화 출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톱스타들까지 출연시키고 있는 데 반해 MBC 등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 출연진은 종편 채널 드라마에게도 밀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재 MBC는 이런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사장은 일일드라마를 잠정 중단하는 까닭에 대해 “드라마가 너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요일별 미니시리즈 등 기존 편성에 따라 반드시 드라마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다시 드라마를 편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최 사장은 “제대로 된 16부작 미니시리즈를 한 편이라도 더 만들어서 드라마 PD들이 기회를 갖고 실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드라마 편수를 줄이고 기획부터 캐스팅이나 모든 면에서 자체 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 셈인데 이런 결정이 MBC를 다시 드라마의 왕국으로 만들어 줄지 여부는 조금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도전 자체는 MBC뿐 아니라 지상파 드라마 전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분명 의미 있는 행보로 보인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