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국제사회가 한바탕 핵버튼 논란에 휩싸이면서 잔뜩 긴장했다. 발단은 북한 김정은 노동위원장의 신년사였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노동위원장이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내게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핵버튼이 있다”고 맞받아치자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것도 모자라 트럼프는 말미에 “내 버튼은 작동도 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에 양측의 핵버튼 싸움이 마치 초등학생처럼 유치하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트럼프의 책상 위에 정말 핵버튼이 있느냐 없느냐로 옮겨갔다. 만일 있다면 어떻게 생겼으며, 또 작동은 어떻게 하는지도 관심사였다. 뿐만이 아니다. 핵버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동시에 ‘핵가방’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미국 대통령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이 ‘핵가방’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소문처럼 붉은색 핵버튼이 설치되어 있을까.
대통령 곁에는 늘 핵가방을 들고 있는 군보좌관이 24시간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냉전시대부터 사실 핵버튼에 대한 공포는 끊이지 않아 왔다. 혹시 누군가 홧김에 핵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실수로 누른다면? 그렇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핵전쟁이 발발하고, 전 인류는 파괴될까?
하지만 이런 염려는 사실 기우에 불과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적어도 홧김에, 혹은 실수로 핵버튼을 누르게 되는 불상사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 핵버튼이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 대통령이 직접 누를 수 있는 핵버튼은 없다는 이야기다. 집무실 책상 위에도, 그리고 핵가방 안에도, 그 어디에도 핵버튼은 없다. 핵무기 발사는 대통령이 직접 핵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쳐 구두로 명령을 내리는 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는 붉은색 버튼이 하나 설치되어 있긴 한데 사실 이는 다른 용도의 버튼이다. 가령 대통령이 직원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호출할 때 사용하는 버튼이다. CNN에 따르면,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다이어트 콜라를 요청할 때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핵가방이란 무엇일까. 겉으로 보면 평범한 가죽 가방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가방은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와 다를 바 없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였던 마이클 돕스는 핵가방을 가리켜 “궁극적인 무기이자 전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최후의 심판 무기”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핵가방의 정식 명칭은 ‘대통령의 비상 손가방’이다. 별명으로는 ‘뉴클리어 풋볼’ 혹은 ‘풋볼’이라고 불린다. ‘풋볼’이라는 별명은 최초의 핵공격 작전 코드명이었던 ‘드롭킥’과 연관이 있다. ‘드롭킥’은 미식축구 용어로, 공을 떨어뜨린 다음 다시 튀어오르는 순간에 발로 차는 기법을 말한다.
핵가방에는 모두 세 가지가 있다. 어디를 가나 늘 대통령을 따라 다니는 대통령 가방, 부통령 가방, 그리고 백악관에 보관되어 있는 비상 가방 등이다. 무게는 약 20kg 정도다.
외관만 보면 가죽 가방처럼 보이지만 핵가방은 사실은 알루미늄 프레임에 검은색 가죽을 덧씌운 형태를 하고 있다. 가방 제작업체는 세계 최초로 여행 및 비즈니스용 가방에 알루미늄 소재를 도입한 미국의 ‘제로 할리버튼’이다. ‘제로 할리버튼’은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맨 인 블랙 2’ ‘에어포스 원’ ‘스파이 키즈’ 등 할리우드 영화에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그럼 그 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핵가방에는 핵버튼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 핵공격 명령을 내리는 데 필요한 각종 문서들과 장치들이 담겨 있다. 핵가방의 주된 용도는 대통령의 신원을 군사기관에 확인시킨 후, 신속히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 백악관군사실(WHMO) 국장인 빌 걸리가 자신의 자서전 ‘브레이킹 커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핵가방 안에는 모두 네 가지 문서가 들어 있다. 첫째, ‘블랙북’이라고 부르는 약 23cmx30cm의 책자다. 모두 75쪽이며, 이 안에는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핵공격 옵션이 적혀 있다. 가령 한 번의 급습으로 미국의 적들을 모두 섬멸할 것인가, 아니면 모스크바, 평양, 베이징 등 특정 도시만 공격할 것인가 등이다. 다만 이때 공격 대상은 ‘핵무기 및 그밖의 대량살상무기’ ‘군 관련 산업시설’ ‘지도자 및 그의 은신처’ 등 세 가지 유형에 국한되어 있다.
둘째, ‘블랙북’과 비슷한 크기의 검은색 책자가 한 권 더 있다. 여기에는 미 전역의 비밀 벙커 목록이 적혀 있다. 비상 사태 발생시 대통령은 이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게 된다.
셋째, 8~10장의 문서가 들어있는 폴더 한 권이 있다. 여기에는 비상통보시스템(EAS)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천재지변이나 테러 등 미국 내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했을 경우, 모든 미디어 채널을 동원해서 이를 통보하는 시스템이다.
넷째, 일명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카드가 있다. 일반 신용카드 크기로, 여기에는 대통령이 핵무기 발사 명령을 하달하는 데 필요한 인증 코드가 적혀 있다. 이 카드는 한편으로는 대통령 신원 확인 카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진짜 대통령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용도인 것이다. 이밖에도 가방 안에는 손잡이 옆으로 돌출되어 있는 안테나로 추정컨대 통신장치도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대한 무기인 만큼 핵가방은 잠시라도 대통령 곁에서 떨어져선 안 된다. 대통령은 보통 비상 사태 발생시 15분 안에 핵공격 여부를 결정 내려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모든 서류가 바로 핵가방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 곁에는 늘 핵가방을 들고 있는 군보좌관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24시간 따라 다니는 것은 물론이요, 엘리베이터를 타건, 자동차로 이동을 하건, 에어포스원을 타고 날아가건 어디를 가나 늘 함께 동행한다.
때문에 대통령이 잠시 백악관을 벗어나 여가를 즐길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령 대통령이 골프 라운딩을 즐길 때면 대통령의 골프 카트 바로 뒤에는 핵가방을 든 군보좌관이 탑승한 골프 카트가 뒤를 쫓는다. 또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강 위에서 래프팅을 즐길 당시 핵가방을 든 군보좌관이 뒤에서 노를 저으면서 쫓아 왔는가 하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백악관 인근에서 조깅을 할 때마다 늘 핵가방을 든 보좌관이 함께 뛰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핵가방을 담당하는 군보좌관은 다섯 명가량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의 교대 순서나 근무 일정은 일급 비밀로 기밀에 부쳐져 있다. 핵무기를 다루는 만큼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임무를 맡을 자격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광범위한 정신 감정과 심리 평가를 받으며, 국방부, 비밀경호국, FBI 등으로부터 철저한 신원 조회를 받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면 대통령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 ‘양키 화이트’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핵가방으로 어떻게 핵무기 공격 명령을 내리게 되는 걸까. 우선 핵무기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군통수권자이자 최고사령관인 대통령 오직 한 사람뿐이다. 모든 시스템은 발사 명령이 실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진 ‘유효한’ 명령인지를 식별하는 데만 맞춰져 있다. 또한 ‘세컨드 보이스’, 즉 ‘차기 명령권자’는 없다.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도 공격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핵무기 공격 여부는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대통령은 군 관계자들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후 보좌관들과 회의를 거쳐야 하며, 이때 보좌관은 대통령을 설득할 수는 있지만 한 번 하달된 명령에 불복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핵공격을 실시하기로 마음 먹으면 먼저 핵가방을 연 후 군보좌관들과 함께 ‘블랙북’에 명시되어 있는 핵공격 옵션을 검토한다. 옵션 가운데 하나가 선택되면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비스킷’의 인증 코드를 소리내어 읽어 신원을 증명한다. 이는 지금 내리는 명령이 진짜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하달되는 것인지를 확인시키는 절차다. 이때 국방장관 역시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다.
모든 코드가 확인되면 보안 통신망을 통해 해당 전략사령부 관계자들에게 공격 개시 명령이 전달되고, 각 사령부에서는 코드가 일치하는지를 점검한다. 몇 분 후 이 명령은 핵무기 발사 명령인 ‘긴급행동지령’으로 전환되고, 이에 따라 마침내 표적을 향한 핵무기가 발사된다. 명령 하달부터 발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미사일은 5분, 핵잠수함은 15분 정도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미국 대통령과 ‘비스킷’ 지미 카터, 양복 주머니에 넣고 ‘깜빡’ 세탁소 맡겨 핵가방은 언제 어디서나 늘 대통령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핵공격 인증 코드가 담겨 있는 플라스틱 카드, 즉 ‘비스킷’을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과거에는 간혹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순간의 실수로, 혹은 사고로 대통령이 ‘비스킷’을 잃어버리거나 핵가방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1973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당시 구소련 지도자였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를 데이비드 캠프로 초대해 ‘링컨 콘티넨탈’ 한 대를 선물로 증정했다. 선물을 받고 흥에 겨웠던 브레즈네프는 즉흥적으로 닉슨을 태운 채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워낙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닉슨의 경호원들이 따라붙을 새도 없었으며, 핵가방을 든 보좌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대통령과 핵가방이 떨어져 있었던 시간은 30분가량이었다. 그런가 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1981년 발생했던 암살 공격으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핵가방과 떨어지게 됐다. 총상을 입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는 응급차를 보좌관 차량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응급 처치 과정에서 ‘비스킷’이 분실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비스킷’은 나중에 대통령이 신고 있던 신발 한 짝 안에서 발견됐다. 그 결과 레이건이 평소 양말 안에 ‘비스킷’을 넣고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다소 황당했다. 수개월 동안 ‘비스킷’을 어디에 둔지 모른 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이와 관련, 당시 군보좌관이었던 콜 로버트 패틴슨 중위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진 다음 날 아침, 대통령에게 업데이트된 카드로 교체해 드릴 테니 기존의 카드를 반납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클린턴은 “2층에 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보좌관들이 백악관 2층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카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클린턴은 “사실은 분실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당시 클린턴은 언제 마지막으로 카드를 봤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양복 재킷 주머니 안에 카드를 넣어 둔 채 무심코 드라이 클리닝을 맡기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