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5월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소공원에서 열린 대국민 인사에서 왼쪽부터 안희정 충남지사,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원순 시장,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이 함께 손을 맞잡았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오는 6·13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미니 대선인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의 ‘수성이냐, 탈환이냐’는 지방선거 전체 승패는 물론, 차기 대선의 향배를 가를 핵심축이다. 그 중심엔 박 시장이 있다. 애초 ‘박원순의 길이냐, 기존의 정치문법이냐’를 놓고 고심하던 박 시장은 전자를 택했다. 민선 최초로 3선 서울시장 도전 길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여의도 문법으로만 보면 광역자치단체장 3선은 차기 대선의 걸림돌이다.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서울시를 10년 이상 맡을 경우 모든 정책의 책임은 박 시장에게 돌아간다”며 “전임인 오세훈 전 시장 책임론은 이제 꺼낼 수 없는 카드”라고 말했다. 박 시장 내부에서도 3선 도전에 대한 부담감이 컸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박원순만의 길을 만들어보자는 모험을 택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와 호흡을 맞춰가면서 박원순표 정책을 통해 포스트 주자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포석이 깔렸다. 이명박(MB) 정부 때인 2011년 보궐선거로 입성한 그는 보수정권의 표적이 됐다. 박원순 제압 문건과 청년수당을 둘러싼 보건복지부와의 소송전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보수정권 하에서 서울시장을 맡았던 박 시장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3선 고지를 밟고 문재인 정부와 운명공동체론을 펼치고 싶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박 시장 측은 최근 선거 캠프 구성에 들어갔다. 박 시장의 기획·정책업무를 맡았던 권상훈 정무보좌관과 박영선 보좌관이 1월 중순 사표를 내면서 조직 구축에 돌입한 것이다. 박 시장은 평창동계올림픽(2월9∼25일)이 끝나는 2월말에서 3월초쯤 3선 도전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예선전부터 거센 도전이 예상된다. 앞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박원순 3선 도전 반대설’, ‘경남지사 차출설’ 논란으로 증폭한 ‘문심’(문 대통령 의중)은 서울시장 당내 경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박 시장의 도전자인 박영선·민병두·전현희 의원 등은 이미 문심 잡기 마케팅에 돌입했다. 86(80년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 우상호 의원도 1월 21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돕겠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2011년과 2014년 당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치렀던 선거 양상과는 다른 셈이다.
전망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친문이 특정 후보를 밀 경우 박 시장의 경선 통과 자체가 어렵다고 예상한다. 친문계 특유의 응집력 때문이다. 친문계 내부에서는 ‘쇼’에 치중하는 박 시장의 행정력을 비판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최근 서울시 미세먼지 대중교통운임 무료 정책과 박 시장의 ‘라디오스타’ 출연 등을 놓고도 비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친문의 특정 후보 밀어주기에 대해 “지난 몇 년간 대선 후보였던 박 시장을 꺾을 만한 인물이 당내에 있느냐”라며 “박 시장이 가장 유리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경선에서 ‘문심(문재인 대통령 의중)’이 작용할 가능성을 묻자, “문 대통령이 공학적으로 판을 그리는 분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시장의 현직 프리미엄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다만 박 시장이 당내 경선을 통과해도 가시밭길 투성이다. 자유한국당 후보군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병준 국민대 교수 등은 물론, 통합개혁신당(가칭) 소속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박 시장은 온갖 네거티브에 시달리면서 ‘상처뿐인 영광’에 그칠 수도 있다. 박 시장은 이미 2014년 6·4 지방선거 때 부인 강난희 여사의 성형 의혹 등 네거티브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박 시장 대권가도의 가장 걸림돌은 강난희 여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박 시장이 원조 친문이 아닌 이상, 3선 수성과 차기 대권은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차기 대선은 친문계가 미는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3선에 성공해도 차기 대선의 상수는 문심이라는 얘기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주가는 새해 들어 치솟고 있다. 각종 경기지사 여론조사에서 과반 지지도를 차지, 현직인 남경필 지사를 단숨에 꺾었다. 특히 친문 중 친문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인지도의 큰 격차로 ‘이재명 대세론’을 형성했다. 이 시장은 1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음의 결정은 이미 했다”며 “당에서 (경선 룰을) 국민여론 50 대, 권리당원 전원투표 50으로 사실상 정한 것 같은데, 이견은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재명 대세론’이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이 처한 지방선거 전체 구도를 조망할 때 그렇다. 박원순 시장은 예선전부터 거친 도전을 뚫어야 한다. 낙동강벨트의 요충지 부산·경남(PK)과 호남에선 각각 보수야당의 도전을 뚫어내야 한다. 반면 이 시장의 승리 기대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들 지역보다 승리의 극적효과가 떨어질 경우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가 제한적일 수도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 흐름으로) 이 시장이 당선되면 이길 선거에서 이겼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대선의 징검다리 효과는 반감한다”고 전망했다. 이 시장도 본선보다는 예선이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조직력이 약해서다. 지난해 장미대선 때도 현역 가운데선 정성호·유승희·제윤경·김병욱 의원 등만이 합류했다.
3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 지사의 행보는 ‘포스트 3인방’ 중 가장 뜨거운 감자다. 박원순·이재명 시장과는 달리,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 지사가 지난해 말 3선 도전을 포기할 당시 민주당 차기 당권 도전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1년간 유학길에 오른 뒤 2020년 총선에 도전할 것이란 얘기가 여의도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안 지사는 핵심 측근들이 제3의 길을 조언하자, 이를 사실상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DJ(김대중 전 대통령) 모델’이다. 1992년 대선 패배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떠났던 DJ는 1년여 후 귀국,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제1기 민선 지방선거였던 1995년 지역등권론을 앞세워 조순 민주당 후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성공적인 복귀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의 명분으로 작용, 1997년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단행했다.
여의도 안팎에선 안 지사의 제3의 길이 임 실장의 ‘박원순 3선 도전 반대설’이 흘러나온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주목한다. 청와대의 특정 인사 밀어주기 논란과 박영선 의원의 친문계 포섭 등이 잇따라 제기되는 상황에서 ‘안 지사의 유학길’ 얘기가 확산하자, 비문(비문재인)계가 당 주류와 휴지기를 갖는 전략적 제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문계 관계자는 “역대 차기 대선주자들은 모두 당 대표를 하기 꺼렸다”라며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데다, 당내 개혁을 추진할 경우 당·청 갈등으로 치달을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도 고공행진 지지도를 보이는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당권 도전과 6월 재보선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다. 비문계 한 관계자는 “제3의 길은 대선주자들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 두기를 하려는 목적”이라며 “여의도 경험이 없는 안 지사의 경우는 다르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경선 통과 가능성을 점친 청와대 관계자는 “안 지사의 제3의 길은 좋은 카드”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