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인생의 인기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LTE급 전개 속도와 2017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천호진 ‘서태수’의 호연도 일품입니다. 서지안과 서지수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과 최도경과 서지안의 로맨스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황금빛 신드롬이 일고 있는 까닭입니다.
특히 황금빛 내인생이 2030세대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지태, 이수아 커플의 연애·결혼·출산 이야기가 젊은 층의 많은 공감을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드라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2030세대가 살고 있는 ‘암울한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일요신문i’는 지태와 수아 커플의 에피소드를 토대로, 헬조선의 현주소를 분석해 봤습니다.
황금빛 내인생 포스터. KBS 홈페이지 캡처
서지태는 서태수와 양미정 부부의 큰아들이자 지안이의 오빠입니다. 지태의 어머니인 양미정의 말처럼, 이들 가족은 “월급 150만 원 가지고 500원, 1000원 아껴가며 사는 것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신협에 다니는 지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습니다.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흙수저’라는 꼬리표는 늘 지태를 괴롭혀왔습니다. 지태가 활짝 웃는 순간은 수아를 만날 때가 유일합니다. 우연히 나간 소개팅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수아와 만화방 데이트를 할 때가 그렇습니다.
만화방에서 데이트하는 지태와 수아. KBS 드라마 영상 캡처
수아와 지태는 대표적인 비혼 커플. 서로 합의하에 결혼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돈’ 때문에 결혼할 수 없고 결혼해서도 안 됩니다. ‘결혼 없는 연애’를 전제로 이들이 4년째 비밀 연애를 하는 이유입니다.
만화방에서 데이트를 하는 지태와 수아. 어느날 수아는 지태를 향해 “영감, 우리 저기에 문 하나만 달아줘”라며 애교를 부리자, 지태는 “오호 할멈, 엉큼한 생각하지마”라며 응수합니다.
“우리 옥탑방 구할까봐, 우리 만화방에 쓰는 돈으로 월세내고…”라는 수아의 말에, 지태는 “너, 옥탑방 초라하고 무서워서 여성전용 아파트 들어간 것 아니야?”라고 되묻는 까닭입니다. 수아는 지태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은근히 드러냈지만 지태는 완강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결혼은 금기어입니다.
과연 드라마에 불과할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5.9건.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결혼 건수는 2015년 30만 2828건에서 2016년 28만 1635건으로 감소했습니다.
이제 ‘결혼’은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경제적 부담과 육아 문제 때문에 지태와 수아 같은 비혼커플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길거리에서 다툼 중인 지태와 수아. KBS 드라마 영상 캡처
비혼커플의 한계는 어디일까요? 드라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수아는 여동생에게 자신을 소개시키지 않은 지태의 태도에 실망했습니다.
수아는 “내가 바퀴벌레니. 우리가 결혼을 안 하기로 했지, 연애를 숨어서 해야 돼? 결혼 안하면 가족들 만나지도 못해? 죄졌어?”라고 발끈합니다. 하지만 지태는 “연애니까 만날 필요없지”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수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아무리 비혼 커플이라도, 지태의 가족에게 ‘투명인간’ 취급받는 자신의 처지가 싫었습니다. 수아는 지태가 미래를 약속할 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마음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결국 수아는 홧김에 지태를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소개팅을 했습니다. 심지어 야근을 한다고 거짓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잡히고 말죠. 두 사람은 길거리에서 어깨를 밀치면서 싸웠습니다. 여기서 지태의 본심이 나옵니다.
“그래. 나 결혼 안 할꺼야! 결혼 따위 안 해! 반월세 사는 집 장남이라 희망이 없어서 결혼 안 해! 내 자식한테 나같은 가난 대물림하기 싫어서 결혼 안 해, 이수아 니가. 니가 원하는 아파트에 살수 없어서 결혼 안 해! 평생... 그러니까, 가라!”
지태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죠. 여기서 잠깐, 지태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소득계층 이동 및 빈곤에 대한 동태적 고찰’에서 2007∼2015년 소득계층별 가구의 계층 이동률을 분석했습니다. 자료는 제주도와 도서 지역을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 거주하는 가구·가구원을 대상으로, 가장 소득이 적은 1분위부터 가장 많은 10분위까지로 구분했습니다.
분석 결과, 평균적으로 1년 뒤 소득 분위 이동이 없을 확률은 40.4%였습니다. 상향과 하향이동 확률은 30.1%, 29.5%. 즉 전체 가구의 30% 정도만 소득계층이 상승하고 나머지 70%는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더욱 빈곤한 계층으로 추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지태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소득 양극화, 청년 세대의 결혼을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지태. KBS 드라마 영상 캡처
갑작스러운 이별 때문에 지태는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눈치 없이 지태의 속을 들쑤셨습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친구들은 “지태야, 슬슬 결혼해 4년 만났으면 인연이다. 수아 씨만큼 여자 오래만나고 좋아한 적 있냐? 잡아!”라고 말합니다.
지태는 화를 내면서 “잡아서 뭐하게, 월세방에서 궁상맞게 살자고 잡으라고? 둘이 벌어 몇 년 모아서 전세방 겨우 구하다 애 낳으면 거기서 스톱. 아주 잘해봤자 수도권 방 두 개 빌라 전세방에서 스톱이야”라고 강조했습니다.
홧김에 한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신혼부부가 마주할 부동산 현실은 암담한 수준입니다. 한국감정원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2017년 12월 전국 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2억 7899만 원. 서울은 5억 4915만 원, 수도권은 3억 7931만 원, 지방은 1억 8804만 원입니다.
결혼하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상, 2030세대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합니다. 월세도 심각합니다. 2017년 서울의 평균 월세는 114만 9000원. 월 200만 원 수입을 가진 직장인이라면, 월급의 절반을 내줘야 합니다. 가히 살인적입니다.
지태는 신협 직원이지만, 수아는 출판사 무기계약직으로 근무 중입니다. 두 사람이 대략 월 5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번다고 가정해도, 신혼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입니다. 월세살이도 쉽지 않습니다.
결혼에 골인한 지태와 수아 커플. KBS 드라마 영상 캡처
하지만 이별이 서로의 소중함을 일깨운 걸까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수아와 지태는 기적처럼 결혼에 골인합니다. 수아는 돈을 아끼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포기했고 무료로 야외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훗날 ‘분가’를 하기 위한 결단이었죠.
두 사람은 결혼 계약서도 썼습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태 수아 부부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황금빛 미래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변수가 등장하죠.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 아래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의 어두운 표정이 보이시나요? “임신 8주 되셨어요. 태아 심장소리에요”라는 의사의 말에, 지태와 수아의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수아는 낙태를 하고 싶어 하지만 지태는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어봤냐”며 출산을 설득합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수아의 진심은 뭘까요?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는 수아. KBS 드라마 영상 캡처
“난 무기계약직이야! 임신으로 휴가 못써! 그럼 회사를 그만둬야하는데 자기 월급으로 어떻게 살아, 밥만 먹고 살아? 우리 정말 평생 쪼들리면서 살아야 돼. 나는 그런 인생 살기 싫어, 우리 인생만 쪼들리면서 살아야 될 거 같아? 제대로 사교육도 못 시켜 우리 형편으로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경미 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차이는 최대 8배까지도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7년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평균 25만 6000원. 서울 지역 월소득 600만원 이상 그룹과 읍면 지역 월소득 200만 원 미만 그룹의 학생 1인당 사교육비를 비교하면, 초등학교는 5.8배, 중학교 7.8배, 일반계 고등학교는 8.4배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사교육 공화국’ 답네요.
병원 앞에서 싸우는 지태와 수아. KBS 드라마 영상 캡처
수아는 또 지태를 향해 “남들처럼 해줄 거 다 해주지 못할 거면서 뭐 하러 아기를 낳아. 그러다 아기 낳으면? 아기는 누가 봐줘? 어머니? 어머니랑 아이문제로 엮이고 싶지 않아. 아니 그전에 우리 첫 번째 조건은 아이를 낳지 않는 거였어. 자기도 그랬잖아 가난 대물림하기 싫다고”라고 소리칩니다.
수아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결혼을 해도 산 넘어 산입니다. 통계청 ‘2017년 1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2017년 11월 출생아 수가 역대 월별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연간 출생아수가 사상 처음으로 30만 명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의 제목은 ‘황금빛 인생’이지만 수아와 지태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김 아무개 씨(29․여)는 “수아에게 같은 여자로서 엄청나게 공감합니다. 둘이 합쳐 500만 원씩 번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해요”라며 “대출금 갚아야지, 시부모, 친정부모한테 용돈도 들어가지, 분유값, 기저귀 값 때문에 도저히 못 키웁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아무개 씨(27)도 “지태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도 결혼에 대한 부담감이 많습니다. 가난의 대물림 때문이죠. 어렵지만, 대물림 안 시키려고 더욱 발악하면서 살아갑니다”고 전했습니다.
2030세대가 마주할 대한민국은 ‘황금빛’ 미래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현실은 더욱 잔혹합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