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열린 2018 평창 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참가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임준선기자
정치권 일각에선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조직위)는 대회 준비 과정에서 위원장이 정치적인 이유로 교체되고, 올림픽 관련 이권을 챙기려 한 정권 실세가 구속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또 자의든 타의든 올림픽에 거액을 후원한 일부 기업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단순 홍보 목적으로 조직위에 후원 의사를 밝힌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취재에 응한 재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사회적 책임’, ‘정무적 판단’ 등을 올림픽 후원의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들 기업 역시 아무 이득 없는 행사에 돈을 풀진 않았을 것이란 반론이 제기된다. 4대 그룹 한 인사는 “국가적 행사에 동참함으로써 기업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정부와 관계를 매끄럽게 만들어 향후 사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코카콜라, 알리바바, 인텔 등과 함께 ‘올림픽 월드와이드 파트너’로 선정된 삼성은 삼성전자가 평창동계올림픽 공식파트너를 맡았고,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공식스폰서 자격으로 조직위를 후원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과 삼성증권은 올림픽 공식공급사로 일찌감치 대회 후원을 약속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파트너이면서 대회 조직위를 함께 후원하는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이런 호재에도 삼성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자제하고 있다. 자사 대표 브랜드인 ‘갤럭시 노트8 올림픽 에디션’을 만든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삼성 내부에선 “(우리가) 올림픽 메인 스폰서인데 답답하다”는 말도 나온다. 올림픽 유치에 지분이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수감 등이 원인이란 주장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성의 후원을 받아온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최근 내부 폭행 사건 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종목을 관장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삼성 임원 출신이 회장을 맡고 있다.
반면 지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오너 구속이란 최악의 상황을 면한 롯데는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평창 띄우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 ‘스키 애호가’로 알려진 신 회장은 2014년 11월 대한스키협회장에 취임하고, 선수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외관을 LED 조명을 이용한 성화봉으로 꾸미는가 하면 신 회장이 직접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재계 10대 오너 가운데 성화를 직접 봉송한 사람은 신 회장이 유일하다. 롯데는 또 평창 롱패딩을 독점 유통하고, 영업점마다 올림픽 기념품을 판매하는 등 적극적인 ‘평창 마케팅’에 나섰다.
자의든 타의든 올림픽에 거액을 후원한 일부 기업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단순 홍보 목적으로 조직위에 후원 의사를 밝힌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청와대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이 재판 중에도 해외를 방문해 주요 인사들에게 평창올림픽을 홍보하는 등 전사적으로 움직여 왔다”며 “일례로 롯데호텔은 성공적인 대회 운영을 위해 강원도 숙박시설을 찾아다니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 롯데는 자체 운영 중인 면세점을 통해 일정 부분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와 함께 이번 올림픽의 ‘숨은 승자’로 꼽히는 기업은 KT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6일 ‘주간 통신 이슈’에서 “(대회 기간) 자율주행버스, 체감형VR방송이 집중 조명을 받을 전망이며, 5G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들의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KT는 평창동계올림픽 공식파트너 자격으로 대회 기간 통신-네트워크 관련 인프라와 서비스를 독점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KT는 5G 기술을 접목한 자율주행버스를 통해 차세대 이동통신 이슈를 선점할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그룹 한 관계자는 “국내외 많은 시청자가 모바일을 통해 대회를 볼 텐데 그런 점에서 KT는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은 ‘피겨여왕’ 김연아를 앞세운 광고를 제작했다가 ‘엠부시 마케팅’ 논란에 휩싸였다. 통신부문 공식후원사가 아니면서도 올림픽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의도해 광고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해당 광고는 삭제됐다.
다만 SK는 통신을 제외한 대회 공식파트너 자격으로 500억 원 규모의 현물(혹은 현금) 후원을 이어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대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북한 선수단이 SK 계열 워커힐 호텔에 묵는다는 소식이 긍정적이다. SK 측은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대차는 이번 올림픽에서 화제가 될 자율주행버스를 KT에 제공하지만 정작 현대차 브랜드 홍보 효과는 낮아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IOC와 미리 올림픽파트너십을 체결한 일본 도요타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때 자율주행차를 선보인다는 로드맵을 가진 걸로 아는데 이번 대회에선 신기술을 공개할 수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번 대회에서 수소전기차 ‘넥쏘’를 선보인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TV를 보다보면 외투 가슴에 박힌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띄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또 재계 10대 기업 가운데 후원을 하지 않은 GS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의 4대 그룹 한 인사는 “GS의 후원 포기가 전경련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공식스폰서로 지정된 KEB하나은행 측은 “브랜드 제고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