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해 3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월 26일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진의’를 놓고 유영하 변호사와 최순실 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가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유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은 몇 번이나 ‘내가 (최순실에게) 속은 것 같다’고 했다”면서 “이제라도 최 씨는 자기가 박 전 대통령을 속였다는 걸 털어놔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경재 변호사는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면서 “이제 와서 최 씨가 박 전 대통령을 속였다는 걸 자백한들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왜곡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유 변호사는 국정농단 사건 초기부터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아왔으며 변호인단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사실상 집사 역할을 맡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새로 선임된 국선 변호인단의 접견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변호인단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유일하게 소통되는 인물은 유 변호사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새로운 문고리로 부상한 것이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역할을 하며 재판 과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논란은 이미 지난해부터 불거진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유 변호사가 유일하게 박 전 대통령과 접견하면서 접견 내용이나 조사 내용을 다른 변호인단과 공유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내부 갈등설이 불거진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유 변호사와 채명성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변호사들을 해임하고 새로운 변호인단을 꾸렸다. 초기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서성건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 같은 변호 방식으론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형도 나올 수 있다”며 “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들 전화조차 받질 않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소통부족을 비판했다.
여러 논란에도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를 매각한 후 남은 차액을 유 변호사에게 맡겨 보관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과거 변호인단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자기 근처에 가족이 절대 못 오게 한다. 자신과 연루되면 괜히 피해를 입을까봐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가족 대신 집사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 역할을 유 변호사가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유 변호사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그런 역할을 맡게 되니 상황이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유 변호사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유 변호사 본인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다른 변호사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 매우 질책했다. 모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해서는 변호인단 단톡방(단체채팅방)에서 욕설까지 하면서 질책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모 변호사는 언론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유 변호사가 하도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막으니까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봤다. 박 전 대통령은 언론 접촉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 뜻을 전달받고 언론 인터뷰를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유 변호사가 강하게 질책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배보윤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합류하는 문제도 유 변호사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배 전 공보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 대변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배 전 공보관이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합류했다면 탄핵 심판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고 여론 전환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배 전 공보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탄핵 심판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합류를 먼저 나서서 타진했지만 협의 과정에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거 변호인단 관계자는 “당시 배 전 공보관 합류를 반대하는 명분도 제대로 설명 받지 못했다”면서 “유 변호사가 정치인이라 언론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독차지하려 하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한 전임 변호인은 “당시 배 전 공보관 합류가 무산된 것이 유 변호사 반대 때문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변호인단에서) 특별히 반대한 분은 없었다. 다만 협의과정에서 뭔가 안 맞았던 것 같다. 협의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어떤 부분 때문에 합류가 무산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전임 변호인은 배 전 공보관 합류가 무산된 이유에 대해 “사정상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재판의 방향을 놓고도 다른 변호인들과 충돌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에도 문제가 됐던 최순실 책임론이다. 유 변호사는 최 씨가 박 전 대통령을 속인 것이라는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가고 싶어 했지만 일부 변호인들은 최 씨가 범죄를 인정하게 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은 오히려 검찰이 원하는 방향이라며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일부 변호인은 끝까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유 변호사는 중요한 쟁점 사안이 아니라며 일축했다고 한다.
한 변호인단 관계자는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은 틀림없지만 변호인단 내부에서 이견이 있는 것들을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자신의 방식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됐다”면서 “그런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박 전 대통령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의견을 유 변호사가 중간에서 왜곡하고 있다면 다른 변호인들이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법적으로는 모든 변호인이 의뢰인과 접견할 수 있지만 다른 변호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원하지 않아 부르기 전에는 접견 신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유 변호사는 직접 의견을 밝혔다. 우선 배보윤 전 헌재 공보관의 합류가 무산된 것에 대해서는 “변호인단 내에서 여러 의견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선임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뜻과 달리 독단적으로 변호인들의 언론 접촉을 막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법정 이외에서 언론 접촉은 하지 말라는 당부 말씀을 하셨고 이를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모 변호사가 두 번에 걸쳐 인터뷰한 것에 대해서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변호인들도 납득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가 새로운 문고리로 등장해 다른 변호인들과 박 전 대통령의 소통을 막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접견을 허락하고 안하고는 박 전 대통령이 결정하신 것이라서 제가 답변 드릴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 변호사는 배 전 공보관 합류가 무산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유 변호사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드릴 수 없다”면서 “더 질문하셔도 어떤 답도 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유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 많은 억측과 오해에 대해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제가 안고 가는 게 더는 시끄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