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상화폐 거래소와 실명거래 계약을 맺은 은행은 3곳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중 빗썸은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 업비트는 IBK기업은행, 코빗은 신한은행, 코인원은 NH농협은행과 연동된다.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광주은행은 가상화폐 실명거래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지만 아직 거래소와 실명거래 계약을 맺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30일부터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한 오프라인 지점.
현 상황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 사항만 체크하면 된다. 하나는 기존에 가상 계좌를 가지고 있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이용을 원하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연동되는 계좌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이미 가상 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거래소에 연동되는 은행 계좌도 있다면 절차가 간단하다. 이 경우 신규 계좌 발급 없이 거래소 홈페이지에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실명확인 입출금 번호를 발급받아 은행계좌와 연동해 사용하면 된다. 다만 등록되어 있는 입출금 계좌의 명의는 회원명과 동일해야 하며 한번 등록한 계좌는 추후 변경할 수 없다.
기존에 가상 계좌가 있지만 거래소와 실명거래 계약을 맺은 은행 계좌가 없다면 일단 은행부터 방문해야 한다. 이 경우 거래소와 연동되는 은행 계좌를 신규 발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는 앞의 과정와 동일하다.
지난 1월 29일 직장인 강 아무개 씨는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기업은행에 방문해 은행 계좌를 신규 발급했다. 강 씨는 기존에 업비트에 가상 계좌를 가지고 있었지만 업비트와 실명거래 계약을 맺은 기업은행의 계좌가 없었다. 강 씨는 “신분증과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니 간단하게 기업은행 계좌를 신규 발급할 수 있었다”며 “집에 돌아와 업비트 홈페이지에서 본인 인증 후 간단히 기업은행 신규 계좌를 등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에 가상 계좌가 없는 경우다. 현재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는 기존 가상 계좌 거래자에게만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1월 30일 기준 가상 계좌가 없는 사람이라면 거래소와 연동되는 은행 계좌가 있어도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인증 자체가 불가능해 가상화폐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코인원은 지난 1월 30일부터 농협 계좌를 통해 신규 투자자의 입금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30일 기자는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인증에 대해 문의 차 빗썸 광화문 지점에 방문했다. 빗썸과 실명거래 계약을 맺은 신한은행 계좌가 있었지만 기존에 거래하던 가상 계좌가 없었기 때문이다. 빗썸 창구 직원은 “기존에 거래하던 가상 계좌가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인증을 할 수 없다”며 “기존 가상화폐 계좌 보유 고객들이 실명 계좌로 모두 전환되고 난 이후에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를 원하는 일부는 요즘 은행계좌 신규 발급도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은행이 인정하는 금융거래 목적에는 ‘가상화폐 거래’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직장인이 아닌 대학생, 취업준비생, 주부처럼 소득 증빙이 어려운 경우에는 어려움이 크다. 이들 중에는 재직증명서, 신용카드 이용대금명세서, 본인 명의로 공과금 납부고지서 등 소득 증빙 서류를 제출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A 씨는 “가상화폐 투자를 위해서 돈을 입금하고 싶은데 연동되는 은행 계좌가 없는데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통장 개설이 쉽지 않으니 막막하다”며 “이참에 기존 투자금을 강제로 존버(오랫동안 버티기)하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인증은 기존 가상 계좌 보유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빗썸 홈페이지 캡처
신규 계좌 개설이 까다로워졌지만 직장인의 경우 은행 계좌 개설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지난 1월 31일 NH농협은행 상담센터에 입출금 통장을 만들고 싶다고 문의하자 은행 관계자는 “급여 목적 통장이라면 신분증과 도장 외에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급여명세표 중 하나만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또 이체한도가 있어도 크게 상관없다면 신규 은행 계좌 계설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별도의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도 ATM, 전자금융 이체 시 출금한도가 하루 30만 원으로 제한되는 ‘금융거래 한도계좌’를 발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비대면 계좌’를 개설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 경우 해당 은행 전자금융 기존 이용고객이어야 하며 본인 명의의 휴대폰이나 공인인증서 등 인증수단이 있어야 한다.
시중은행은 은행 계좌 개설이 까다로워진 것은 가상화폐 실명제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IBK기업은행 서소문지점 관계자는 “가상화폐 실명제와 상관없이 2016년 초부터 대포통장, 보이스피싱 등 금융거래사기 예방 차원에서 통장 개설이 엄격해졌다”며 “가상화폐 거래는 통장 개설의 이유가 될 수 없지만 이와 별도로 본인의 상황에 맞게 서류를 준비하여 통장을 개설해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JB금융그룹 관계자는 “신규 계좌를 발급하는 시점 전후로 다수의 통장을 발급하였거나, 너무 어리거나 고령인 경우에도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가상화폐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든 거래소에서 신규 가상 계좌 발급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언제인지가 화두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가입 고객 전부가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가상화폐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 방침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많은 은행이 가상화폐에 뛰어들었고 대개 이미 실명확인 시스템은 갖춘 상태”라며 “다만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인 평가에 따라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먼저 시장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가상계좌 거래실명제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월 23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상통화 투기 과열 금융부문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가상계좌 신규 발급 결정은 은행 자율로 규정하고 있다. 앞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정말 보수적인 집단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에게 ‘스스로 판단해 진행하되 책임도 지라’는 식으로 나오면 제도를 시행하기 어렵다”며 “처음에는 거래소가 갑이었다면 정부의 규제 강화 이후 요즘은 거래소가 은행과 협약을 맺기 위해 노력 중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 자체에 대해 굉장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거래소와의 실명제 거래 관련 계약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