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웹툰 플랫폼에서 유료 성인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 A 씨는 불법 웹툰 복제 사이트 이야기가 나오자 분통을 터뜨렸다. 유사한 피해를 입은 다른 작가들과 함께 플랫폼 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별 다른 답변을 얻지 못한 탓이다. 플랫폼은 물론, 유관기관까지 입을 모아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문제의 불법 웹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웹툰 복제사이트 ‘밤토끼’의 메인화면. 네이버웹툰의 프레임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 유료 성인웹툰을 게시하고 있으나 네이버, 카카오 웹툰의 인기작도 불법 복제돼 게시된다. 사진=밤토끼 화면 캡처
지난해 11월, 웹툰업계는 한 목소리로 불법 웹툰 복제 사이트 근절과 유관기관 차원에서의 강력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016년~2017년 급속도로 성장한 불법 웹사이트 ‘밤토끼’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거론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2016년 10월 개설된 ‘밤토끼’는 한국 웹툰업계의 양대산맥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물론,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탑툰 등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모든 장르의 웹툰을 불법으로 복사해 게시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각 플랫폼은 저작권 보호를 위해 웹툰 페이지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 클릭(다른 이름으로 전체 사진 저장)’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키보드를 이용해 페이지 전체를 캡처해 저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불법 웹툰 복제 사이트는 이런 맹점을 노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밤토끼 월 방문자가 6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모바일 웹사이트 페이지뷰는 1억 3709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네이버 웹툰의 페이지 뷰(1억 2081만 건)를 넘어선 수치다. 고작 1년 사이에 불법 웹사이트가 거대 포털사이트를 압도할 정도로 성장한 것.
웹사이트 접속자 통계를 분석하는 ‘시밀러웹’에 따르면 밤토끼의 방문자 수는 매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기준 3650만 명에서 5개월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방문자들은 대부분 웹사이트 주소를 직접 입력해서 방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부분의 불법 웹사이트는 인지도가 높은 다른 웹사이트에 광고 게시물을 올려 이용자들이 우회적으로 방문하도록 한다.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어 실제 주소를 직접 게시하는 것은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토끼는 이미 주소를 알고 있는 다수의 방문자들이 직접 방문할 만큼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밤토끼의 홈페이지 접속자와 방문자 수 분석 결과 국내 웹사이트 가운데 14위로 확인됐다. 포털사이트 네이트(15위)와 쇼핑사이트 지마켓(17위)보다 높은 순위다. 밤토끼와 유사한 다른 불법 사이트에 비해서도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기존에 있던 또 다른 불법 웹툰 복제 사이트 ‘어른아이닷컴’의 이용자들까지 흡수해 불법 사이트 가운데 명실상부 이용률 1위 자리를 거머쥔 상황이다.
밤토끼 이용자 트래픽 현황. 2017년 7월에 비해 2017년 12월 5개월 간 약 1.5배 이상 증가했다. 사진=시밀러웹
밤토끼는 이미 포털사이트나 유료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웹툰을 캡처해 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 특히 네이버 웹툰의 경우 무료로 연재 중인 웹툰의 다음 화를 결제해 볼 수 있는 ‘미리 보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미리 보기 웹툰마저 밤토끼에 게시된다. 이렇다 보니 밤토끼가 존재하는 한 웹툰 이용자들로서는 굳이 돈을 내고 포털사이트나 유료 플랫폼을 방문해 유료 웹툰을 봐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종이책으로 출판된 작품도 밤토끼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현재 일요신문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시즌 3가 동시 연재되고 있으며 이미 시즌 1, 2가 출판된 ‘롱 리브 더 킹’의 경우도 현재 밤토끼에 실시간으로 게시되고 있다.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인기작으로 드라마화를 앞두고 있는 ‘우리사이느은’ 역시 전편 밤토끼에 게시된 상황이다. 그 외 다음웹툰 ‘곱게자란 자식’, 빅툰의 성인 웹툰 ‘신의 접착제’, 탑툰의 ‘청소부 K’ 등이 불법 제공되고 있다.
네이버 웹툰 카테고리 방식을 그대로 베낀 밤토끼는 요일별, 장르별로 완결 작품과 미완결 작품, 유·무료 작품을 전부 메인 화면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굳이 여러 포털 사이트나 웹툰 플랫폼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
이미 웹툰협회가 2016~2017년 1년간의 피해액을 산정한 것만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유료 결제 이용자들이 감소한 것을 산정한 것으로, 그 외 종이책으로 출판된 완결 웹툰의 구매 감소나 신규 이용자 유입의 감소 등을 종합하면 피해액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1월 31일 기준 네이버 수요웹툰에 업데이트된 작품 ‘고수’가 밤토끼에도 게시돼 있다. 현재 네이버웹툰에는 2부 30화까지 게시됐으나 밤토끼는 미리보기 유료분인 2부 31화까지 일주일 전 게시했다. 사진=밤토끼
소규모 웹툰 플랫폼의 피해는 이보다 더욱 심각하다. 장르별로 다양한 웹툰을 구비하기보다는 이용자들이 쉽게 결제할 수 있는 성인 웹툰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탓이다. 같은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불법 웹사이트가 대체재로 존재한다면 이용자들은 굳이 원래 플랫폼을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
앞선 A 작가는 “밤토끼가 개설된 후 이용자들의 유료 결제율이 눈에 띄게 급감했다고 들었다. 성인 웹툰은 독자를 모으기에도, 단시간에 매출을 올리기에도 가장 적합한 상품이라 소규모 플랫폼이 주력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이런 식으로 악용된다면 작가도 플랫폼도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호소했다.
이미 피해를 입은 작가들 가운데 일부가 연대를 결성해 지난 1월 10일 밤토끼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저작권특별사법경찰대에 수사를 추가 의뢰할 방침을 밝힌 상태다. 저작권특별사법경찰은 2016년 9월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 발매된 웹소설을 불법 스캔, 게시하는 방식으로 수억 원 상당을 받아 챙긴 웹사이트 ‘벚꽃 도서관’의 운영자를 검거한 바 있다.
벚꽃 도서관의 경우는 운영자가 이용자들에게 문화상품권을 받아 환전하는 과정에서 꼬리가 밟혀 검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벚꽃 도서관과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불법 사이트의 경우, 국내에서 수사 착수는 물론 운영자의 검거도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만화를 불법 스캔, 게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웹사이트 ‘마루마루’의 경우 이용자들에게 별도의 이용료를 요구하지 않고 만화 페이지에 광고 배너를 다는 것으로 수억~수십억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유관기관에 불법 행위에 대한 신고가 들어가더라도 국내에서 접속을 막는 것 외에 운영자에게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거나 수사에 착수할 수 있을 만한 단서를 잡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밤토끼 역시 이용자들에게 별다른 금전을 요구하지 않고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 불법 토토, 야동 사이트, 성인용품 사이트 배너를 달아 광고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피해를 입은 포털사이트나 플랫폼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민·형사적 조치에 앞서 유관기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유관기관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운영자에 대한 수사를 착수할 수 없는 현재로서는 불법 웹사이트 접속 차단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 그런데 이마저도 우회 접속이 가능해 원천 차단의 실효성이 전혀 없는 데다가 현행법상 차단 조치까지 이르는 데도 최장 3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린다.
현재 불법 복제 사이트를 차단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최단 일주일로 줄일 수 있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같은 차단 조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 전에 불법 사이트가 서버 주소를 이전하는 식으로 수사망을 피하면 국내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운영자에 대한 법적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수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유관기관들이 이미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지 못하고 미온적인 입장만 고수해 피해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네이버 웹툰 김준구 대표는 “(밤토끼와 같은)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유료 서비스는 폐지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웹툰 업계에 남은 시한은 2년 남짓”이라며 신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력했다. 이미 피해 플랫폼에서는 자체적으로 웹툰 불법 복제 사이트에 대한 모니터링과 법적 조치를 실행할 수 있는 전담팀까지 마련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한 웹툰 플랫폼 관계자는 “불법 복제 사이트 하나가 ‘성공’하면 유사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마련이다. 개별 플랫폼의 전담팀만으로는 피해 사실을 취합하는 것도 벅차다. 해외의 우리나라 웹툰 불법 번역 사이트로도 피해가 막심한데 국내마저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결국 업계 전체의 종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