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지하철 5호선 ‘방화차량기지’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5호선 연장을 추진하면서 인근에 있는 건설폐기물 처리장을 함께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지하철 유치경쟁에 뛰어든 경기도 고양시와 김포시는 적극 반발 중입니다. 건설폐기물 처리장은 비산먼지와 소음, 매연, 악취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두 지자체는 ‘차량기지 이전’만을 전제로 유치를 추진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건폐장’ 끼워넣기 카드를 새로 꺼낸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전찰남’ 기자는 서울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갑툭튀’ 폐기물처리장이라니…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서울시 건페장 끼워팔기 논란’을 추적했습니다.
5호선 방화차량기지. 고성준 기자
위쪽 사진은 ‘방화차량기지’의 모습입니다. 올림픽대로와 강서한강공원과 인접한 방화차량기지는 방화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소속 5000호대 전동차 일부가 정비를 받는 장소입니다. 5호선 ‘심장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화차량기지를 향해 오랫동안 지역 민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데다,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소음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차량기지는 ‘지하철역’이 아닙니다. 주변 시민들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역세권이 아니란 뜻입니다.
‘방화차량기지’ 이전은 강서구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지속적인 민원 발생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울시는 2017년 2월경, 5호선 연장을 조건으로 차량기지 이전을 검토하는 타당성 용역을 진행했습니다.
지하철 노선도. 네이버 캡처
경기도 김포시와 고양시가 ‘차량기지 이전’을 수용하겠다면서 유치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김포시는 차량기지를 통진읍이나 하성면 일대에 세우고, 검단신도시를 경유해 한강신도시까지 가는 루트로 5호선 연장을 추진해왔습니다.
반면 고양시는 방화차량기지를 행신역 ‘경의중앙선’과 통합한 뒤 5호선을 1차적으로 행신역까지 연장하고 나중에 3호선 지축기지와 통합하는 방안을 강조해왔습니다.
각 지자체는 물론 정치인들도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김포시는 5호선 연장선 유치를 위해 시장, 국회의원에 시·도의원까지 합세한 선출직공직자협의회를 구성했습니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김포을)은 정치 생명까지 걸었습니다. 고양시는 시·도의원을 중심으로 서울시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5호선 연장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왔습니다.
방화역 인근에 있는 건설폐기물 처리장. 약 30개 업체가 몰려 있는 장소다. 고성준 기자
그런데 이게 웬걸! 김포시와 고양시가 최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2017년 12월말, 서울시는 올해 1월로 예정됐던 방화차량기지 이전 대상지 사전타당성용역결과 발표를 6월로 연기했습니다. 동시에 차량기지와 함께, 인근에 위치한 건폐장 이전을 5호선 연장의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김포시와 고양시 분위기는 격앙됐습니다. 정치권의 반발도 상당합니다.
정하영 더불어민주당 김포을 지역위원장은 1월 16일 SNS를 통해 “건폐장과 5호선 차량기지 연결 이전은 서울시가 인접 지자체와의 동반성장 관점이 아닌, 서울에 있는 혐오시설을 타 지자체로 옮기려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홍철호 의원도 최근 “건폐장을 안 받으면 지하철 5호선을 유치할 수 없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본말이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5호선은 5호선이고, 건폐장은 건폐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홍철호 의원은 5호선 유치에 실패할 경우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홍철호 의원실 관계자는 “고양이든, 검단이든, 김포든 ‘건폐장 가져가라’고 하면 ‘5호선 안 받겠다’고 하는 입장은 똑같다. 서울시가 슬쩍 간을 보는 것 같다. 방폐장을 누가 좋아하겠나, 발암물질이 나오는데…”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일맥상통합니다. 서울시가 지역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혐오시설인 건폐장을 차량기지와 함께 ‘패키지’로 묶어 ‘끼워팔기’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전철남 기자는 ‘팩트’가 궁금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 교통정책과에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끼워팔기는 절대 아니다. 건폐장을 김포나 고양으로 떠넘기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차량기지 일대 부지 개발 방안은 처음 용역을 맡길 때 원래 포함된 사안이었다. 차량기지 이전에 대한 타당성 분석을 하면서, 건폐장을 그대로 두고 개발 구상을 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건폐장 이전’이 5호선 연장 조건에 포함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폐기물 처리 장비가 길 한 쪽 편에 방치된 모습. 고성준 기자
그렇다면, 건폐장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1월 31일 오전 10시경 기자는 건폐장 인근을 찾았습니다. 기자가 탑승한 택시의 운전기사는 “널려 있는 크레인 중장비가 많다. 언제나 더럽고 악취가 난다. 여름에 비오면 진창이라 다닐 수도 없다. 손님이 가자고 하면 좋아하는 기사는 없다.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좁은 길을 따라, 폐기물 처리업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폐기물을 산더미처럼 쌓은 덤프트럭이 오갈 때마다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쿵쿵, 애애앵”하는 굉음이 들릴 때마다 땅이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폐기물 처리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였습니다.
건페장에서는 폐기물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오가고 있었다. 고성준 기자
폐기물 처리업체 측도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폐기물처리업체 관계자는 “서울시가 이전 계획을 세웠다는데 우리는 모른다”면서 “서울시에 나오는 폐기물들을 여기서 다 처리한다. 큰 사업장들이 여기 전부 몰려있는데, 어떻게 가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운반비는 어떻게 맞추겠나. 보상해줄 것도 아니고…”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기본적으로 건폐장은 혐오시설이다. 우리가 가면 김포나 고양시민들도 전부 싫어할 것이다. 자기 소유지에서 폐기물처리하는 업체는 보상을 전부 받아서 좋겠지만 우리처럼 땅을 임차해 처리장을 운영하는 업체는 다르다. 일터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건폐장 인근에 있는 S 아파트 전경. 고성준 기자
그렇다면, 건폐장이 내뿜는 먼지는 어느정도일까요? 건폐장 인근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수년동안 괴로움을 겪어왔다고 호소했습니다. S 아파트 주민은 “폐기물 때문에 먼지가 말도 못 한다. 바람이 부는 날은 냄새도 난다”며 “특히 눈에 안 보이는 석면이 문제다. 바람이 불면 이쪽으로 전부 날아온다. 트럭이 수시로 오가서 도로에 먼지도 쌓여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주민은 “아무리 지하철 연장이라고 해도, 고양 김포 사람들이 건폐장을 받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몇 년 전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천식 걸리는 아이들이 점점 생기면서 전부 이사를 갔다. 요즘 ‘집값이 싸다’며 노인들이 멋도 모르고 이사를 많이 왔는데 큰일이다”고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5호선 연장을 건폐장과 묶어버린 서울시의 입장. 과연 옳은 것일까요? 이에 대해 서울시는 “단지 타당성 조사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폐장을 어떤 시민들이 환영할지 의문입니다. 지역 민원과 5호선 연장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운용의 묘’가 절실해 보입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전철남-지하철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친숙한 교통수단입니다. 시민들의 발이지요. 하지만 친숙한만큼 각종 사고와 사건, 민원들이 끊이지 않기도 합니다. ‘일요신문i’는 자칭 지하철 덕후 기자의 발을 빌어 그동안 궁금했던 지하철의 모든 것을 낱낱히 풀어드립니다. ‘전철남’의 연재는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