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본부는 최태민, 전두환, 이명박 전 대통령, 재벌 등의 부정재산을 환수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운동본부는 플랜다스의 계를 통해 돈을 모아 다스 주식을 구입하고 다스 실소유주를 규명하고자 했다. 상법에 따르면 3%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는 주주총회 소집 요구와 함께 회계장부 열람, 회사의 업무·재산상태 검사를 위한 검사신청 청구권 등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10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운동본부는 이자율 0%, 대여기간 3년을 조건으로 모금을 시작했다. 플랜다스의 계는 폭발적인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모금을 시작해 3주 만인 12월 21일 다스 지분 3%에 해당되는 150억 원의 모금을 완료한 것이다. 참여자는 3만 6477명에 달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부부는 9600만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운동본부의 첫 사업은 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사회가 지난 1월 25일 다스 주식을 매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스스로를 플랜다스의 계 계주로 칭하며 사업을 주도했던 안원구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안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사회가 소집된 사실을 사무국 직원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집행위원장 모르게 열리는 이사회가 어디에 있느냐”며 “그동안 몇 차례 이사회가 있었지만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언론 보도 후 문자메시지로 간략한 통보만 있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무국 직원들이 죽을 고생을 했다”면서 “다스 주식을 살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사무국의 의사를 물어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사회 측이 다스 주식 구입을 불허한 이유는 자칫 구입한 주식의 가치가 폭락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 측은 “다스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다스는 순자산만 3000억 원에 달하는 회사”라며 “당장 부도가 나도 평균 주가가 100만 원씩은 된다. 그런 회사가 문제가 있어 부도가 나고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반박했다.
모금에 참여했던 운동본부 지지자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지지자들은 운동본부 게시판에 500건 이상 항의 글을 남겼다. 한 지지자는 “다스 주식을 애초대로 매입하라”면서 운동본부 앞에서 1인 시위도 시작했다. 지지자들은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스 주식을 매입하라”며 원금포기 동의서를 모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운동본부 이사들이 큰 모금액에 욕심이 생겨 모은 돈을 다른 곳에 유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운동본부 측은 다시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이사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운동본부가 매입하려는 다스 주식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공매물건으로 나와 있는 기획재정부 소유의 주식이다. 이 주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정 씨가 사망하자 부인이 상속세 대신 물납한 것이다.
캠코 공매는 매년 일정한 기간에만 이뤄진다. 지난 2016년의 경우 12월 10일부터 공매가 시작됐다. 그러나 물납된 다스 주식은 그동안 계속 유찰되어 왔다. 운동본부 측은 당초 2월 중순쯤 매각 공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매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운동본부 측은 1월 중 입장문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입장문 발표도 무기한 연기됐다. 운동본부 측 관계자는 언제쯤 입장문이 발표될 예정이냐는 질문에 “현재로선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추가로 질문을 이어가려 했지만 이 관계자는 “플랜다스의 계와 관련된 질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다스 주식 매입 불허 결정을 내린 이사들도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개별 이사들과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 이사는 “플란다스의 계 때문에 전화가 많이 오는데 지금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이사들은 할 말은 많지만 자칫 내부 갈등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언론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렵게 설득한 한 이사는 플랜다스의 계가 처음부터 잘못된 사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이사는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해서 반대했다”면서 “주식 3%만 사면 엄청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비상장 주식 3%를 산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상장 주식도 아니고 비상장 주식 3% 샀다고 내부 장부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내부 장부를 보려면 대주주하고 추가로 법정싸움을 해야 한다. 이미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우리가 보려는 자료들은 모두 검찰이 확보하고 있을 텐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 이사는 “손실이 생겨도 상관없으니 다스 주식을 매입하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하면 기부금이 되고 기부금법에 걸린다. 모은 돈의 원금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 처음부터 저는 법적으로 문제가 많으니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문제제기를 무시하고 막 그냥 지르더라”면서 “이사회가 집행위원장을 배제하고 이번 일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실무자가 의사결정 체계를 무시하고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있나. 참여했던 국민들만 상실감을 안게 됐다”고 비판했다.
모은 돈의 향후 사용처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이사회가 모은 돈을 유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럴 일은 절대 없다”면서 “모은 돈은 다시 입금자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이사는 “다만 지금까지 말한 것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며 “이사회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현재 운동본부 이사회는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운동본부 관계자는 “다스가 탄탄한 회사라고 하지만 150억에서 1%만 손실이 발생해도 1억 5000만 원이다. 10% 손실이 나면 15억이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면서 “면밀한 검토 없이 너무 즉흥적으로 추진된 사업”이라고 말했다.
플랜다스의 계를 주도한 안 위원장은 이 같은 이사회 측의 주장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추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입장을 재차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