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청소년들의 놀이 장소였던 롤러장. 사진=영화 ‘품행제로’ 스틸컷
[일요신문] 오락실, 롤러장, 콜라텍, 피씨방…
과거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놀이 공간은 꾸준히 존재해왔다. 청소년들이 시간을 보내고 친구를 만들던 이 같은 공간은 때론 어른들의 우려 속에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청소년 클럽 메뉴판 일부. 사진=청소년 클럽 페이스북 캡처
‘청소년 전용 클럽’을 표방한 화제의 클럽이 개장한 날짜는 지난 1월 26일 금요일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인 개장 직후 주말부터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이 클럽이 여타 클럽과 차별화 되는 점은 철저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문을 여는 시간이 평일 오후 5시, 주말 오후 3시로 빨랐다. 폐장 시간은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오후 10시다. 이 클럽의 입장료는 5000원. 내부에서 술과 담배는 금지되며 제공되는 음료는 탄산음료, 에너지 음료 등 알코올 성분이 없는 것들이다. 일정 금액에 콜라 여러 병이 제공되는 구성의 클럽 메뉴판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찬반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소년의 새로운 놀이문화라는 의견과 일탈을 조장한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김포 풍무고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권다정 씨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좋은 취지라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검색을 하고 나니 걱정스러워졌다. 물론 그 클럽이 없다고 해서 청소년 일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어른들의 문화를 아이들에게 일찍 접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우려를 표했다. 반면 서울 암사동 소재 국제교육기관 SIE에서 작문, 스피치 등을 가르치는 미국 출신 제니 씨는 “새로운 시도에는 언제나 비판이 따를 수 있다”면서 “아이들이 잘 관리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안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클럽 휴업에 이어진 헛걸음
학생들의 목소리와 현장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월 30일 클럽이 있는 홍대 인근을 찾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클럽 문은 닫혀있었다. 입구에는 ‘전기 점검으로 휴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이날 헛걸음을 한 이는 기자만이 아니었다. 일부 학생들이 기대감을 갖고 클럽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당황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여학생 두 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변 친구가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인천에서부터 왔다. 클럽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핫’한 이야기 주제다. 꼭 다음에 다시 오겠다”
휴업일에 클럽을 찾아 헛걸음을 한 학생.
수원에서 왔다는 4명의 남학생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중 한 학생은 “우리도 주변에 친구가 와봤다고 하기에 궁금해서 왔다. 도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주와 흡연 등 일탈에 대한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는 솔직한 견해를 드러냈다.
“솔직히 이 중에 담배를 피우는 애도 있고 술을 잘 마시는 애도 있다. 하지만 여기(클럽)에서 못하게 한다면 굳이 억지로 해서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다. 그런 건 수원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들은 30분 이상 이어지는 기자와의 대화 도중 한두 명씩 인근 골목 안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어른인 기자의 눈을 피해 흡연을 하는 듯 했다. 실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건물에서 주민 분이 나와서 ‘클럽에서 왔냐’고 물어봤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미 인근 주민들로부터 클럽은 ‘문제의 장소’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개학 앞두고 성황
이튿날인 31일 다시 개장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클럽을 찾았다. 전날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겨울방학 종료를 앞두고 마음이 급한 학생들이 클럽을 많이 찾은 듯 했다.
클럽 입장을 기다리는 청소년들
클럽 주변으로 경찰차 세 대도 눈에 띄었다. 현장을 둘러보던 경찰은 “너무 화제가 돼서 왔다. 클럽에서 철저히 관리한다고 하고 아직까지 드러난 문제는 없어서 우리도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를 지켜보는 클럽 인근 유명 맛집 운영자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쓰레기도 많아지고 소음 문제도 많다. 주민들이 불만이 많다”면서 “일부 세입자는 이사를 가겠다고 집을 내놓는다고도 하더라”라고 말했다. 클럽이 위치한 곳은 상점과 주거지가 혼재된 골목길이었다.
입장을 대기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각각의 얼굴마다 기대감, 긴장감, 오랜 기다림에 따른 지루함 등을 엿볼 수 있었다. 클럽 사정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입장이 늦어지며 일부 학생들은 추위에 떨기도 했다. 일반 클럽에서 볼 수 있듯 망사 스타킹이나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끊임 없이 클럽 주변을 맴돌던 순찰차
클럽 휴업 일처럼 경기도 지역에서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왔다는 5명의 학생은 자신들의 목표가 “남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짙은 화장과 성숙해 보이는 복장을 착용한 이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의정부에도 클럽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도 남겼다.
단순 호기심에 클럽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왔다는 5명의 학생들은 “궁금하기도 했고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왔다. 하지만 지금 좀 긴장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클럽에 간다는 사실을 부모님께도 당당히 밝히고 왔다고 했다.
30분 이상이 지연된 끝에 드디어 입장이 시작됐다. 클럽 관리자들은 입구에 다다른 학생들에게 남녀가 따로 줄을 설 것을 요청했다. 남학생들은 남성 관리자가, 여학생들은 여성 관리자가 몸을 더듬으며 소지품 검사를 했다. 이들은 클럽 내에서 흡연을 방지하기 위해 담배와 라이터를 압수했다.
#학생증을 챙긴 자, 챙기지 못한 자
현장을 찾았지만 클럽 내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클럽 측은 철저하게 학생증을 소지한 이들만을 입장시켰다. 학생증이 없어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입구에서 발을 굴렀다. 이들 중 일부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들의 ‘클럽 입장 인증’. 팔찌와 도장은 입장권, 손등의 숫자는 보관함 번호.
경기도 오산에 사는 이들은 6명 중 2명이 학생증을 가져오지 않아 입장이 막혔다. 또 다른 2명은 이미 클럽 개장 2일차에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지난 27일 클럽을 방문했던 A 학생은 “너무 재밌어서 일, 월, 화 휴업이 끝나자마자 또 왔다”면서 “그런데 그 사이 클럽에서 관리가 더 철저해졌다. 지난번엔 소지품 검사도 안했고 2명 중 1명만 학생증이 있으면 입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학생증을 챙겨오지 않은 B 학생은 다른 친구의 학생증을 제시했지만 클럽 관리자에 의해 발각이 됐다. 또 다른 학생 C는 학생증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둔 사진을 보여줬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생증을 모두가 챙길 필요 없다’는 A 학생의 말만 듣고 왔던 이들은 클럽에 입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서로 책임을 물으며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이들과 기자의 대화시간이 길어지며 학생증을 챙겨온 4명은 나머지를 남겨두고 잠시 클럽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들은 클럽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확실히 했다. A 학생은 처음엔 “춤추는 게 즐거워서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솔직하게 말할 것을 수차례 요구하자 “잘생긴 남자 보러 왔다”면서 “놀러 온 건지 클럽에서 일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페북스타(페이스북 내 유명인)’도 있더라. DJ도 너무 잘생겼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클럽 내에서 남녀관계가 발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멀리서(경기 오산)와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맘에 드는 사람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클럽 내부
일부에서는 흡연이나 음주 외에 클럽 내 성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폐쇄된 공간이 있다면 그 곳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클럽에 다녀온 D 학생은 “어른들이 가는 클럽에는 ‘룸’도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못 봤다”고 말했다. 또한 어렵게 연락이 닿은 클럽 종업원도 “룸이 없는 클럽”이라고 밝혔다.
청소년 클럽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클럽 내 교복을 입은 듯 한 남녀가 입을 맞추는 사진이 함께 돌아다녀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진에 대해 ‘청소년 클럽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어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자료를 모두 믿을 수는 없다”며 “그 사진은 청소년 클럽이 아닌 것 같다. 지금 클럽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다들 큰마음 먹고 여길 온다. 그런데 그런 학생 같은 옷을 입겠나. 기자님이 보기에도 그렇고 여기 그런 옷 입고 오는 애들 없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 기간인 현재 교복을 입고 클럽을 찾는 학생을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오산에서 온 이 학생들은 일부 학생들의 ‘과한 의상’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이들은 자신들도 이날만큼은 더 열심히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는 등 ‘상상 속의 클럽 룩’으로 홍대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노출이 과한 다른 학생의 의상에 대해서는 “너무 심하다”는 의견을 나눴다. 이들이 언급한 부분은 배나 어깨, 가슴 일부가 노출된 의상이었다.
티슈 던지기, 호루라기 불기와 같은 문화, 스테이지나 봉 등 일반 클럽의 문화나 구조가 상당 부분 유사하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몰리며 오는 부작용은 없을까. A 학생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부에서 이동이 어렵다”면서 “그래도 말로만 듣던 ‘부비부비(남녀가 몸을 밀착시키고 추는 춤)’는 못 본 것 같다. 어깨에 손을 올리는 정도는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오랜 시간 지속됐던 오산 지역 학생들과 작별하고 청소년 영업이 종료되는 오후 10시 경 다시 클럽 앞을 찾았다. 끊임없이 학생들이 클럽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아직 흥이 가시지 않은 듯 일대를 떠나지 않고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일부는 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클럽 입구를 지키던 관리자는 골목골목을 돌며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클럽은 정확히 10시가 되면서 청소년들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클럽에서 걸어 나온 한 학생은 “10시가 되면 음악이 끝나고 ‘모두 퇴장하라’는 안내가 나온다. 사람이 많아서 사고 나지 않게 천천히 나가란 말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10시 이후 클럽에서 나온 청소년들
격한 춤으로 여전히 숨을 몰아쉬던 한 학생은 “오늘 두 번째로 온 거다. 이렇게 춤을 추고 나오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말했다. 친구로 보이는 또 다른 학생도 “춤추는 게 좋아서 저도 오늘이 세 번째”라고 거들었다. 친분을 과시하던 이들에게 거주지를 물었더니 각각 경기 남양주와 서울 잠실로 거리가 있었다. 둘은 지난번 방문에서 이미 친해졌고 오늘 또 만났다고 털어놨다. 클럽은 새로운 동성친구를 만드는 기능도 하고 있었다. “친해진 이성은 없냐”고 묻자 잠실 인근에서 온 학생은 “여자 애들과는 ‘안녕’하며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클럽은 10시 이후엔 성인들이 드나드는 일반 클럽으로 변모한다. 지난해 12월 오픈한 이 클럽은 이전까지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픈 약 1개월 만에 낮 시간과 사람이 덜 몰리는 오후 10시까지는 청소년에게 개방됐다. 실제 청소년들이 모두 빠져나간 11시 이후로도 클럽은 열려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운영진도 그대로였다. 다만 평일 밤인 만큼 낮 시간과 같은 인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