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벌써 권 회장이 남은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포스코는 민간기업임에도 이른바 ‘오너 없는 회사’인 까닭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휩싸였다. 역대 포스코 회장 가운데 임기를 정상적으로 끝낸 회장은 단 1명도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포스코 등 민간기업 인사 개입을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잘못된 부분까지 묵인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며 “정부가 기다리기에 2년(권 회장 잔여임기)이란 시간은 너무 길지 않느냐”고 말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올해 안에는 (권 회장의 거취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권 회장 취임 후 포스코는 내부 체질개선을 통해 실적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포스코는 지난 1월 24일 공시를 통해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60조 6551억 원의 매출과 4조 621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4.3%, 영업이익은 62.5%가 각각 증가한 수치다. 권 회장은 또 첫 임기(2014~2017년) 동안 포스코 국내외 계열사 80여 개를 청산 또는 매각하고, 150여 개 사업을 정리했다. 권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3년 반 동안 (기업) 구조조정을 100% 초과달성했다”고 자평했다.
실제 권 회장이 취임한 2014년과 연임을 시작한 지난해의 재무상황을 비교하면 자본이 소폭 늘고 부채가 대폭 줄어든 것으로 확인된다. 2014년 연결 기준 포스코의 자본은 45조 3000억 원, 부채는 39조 9000억 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에는 자본 47조 5000억 원, 부채 32조 4000억 원으로 10조 원 가까이 재무건전성이 개선됐다. 권 회장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 배경이다.
포스코는 이달 개최될 이사회 일정과 오는 3월 9일 예정된 정기주주총회 안건 등과 관련해 장고를 거듭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달 예정된 포스코 이사회가 쉽사리 일정을 잡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안다”며 “최근 진행 중인 KT 수사 등 정권의 움직임과 의중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사정에 밝은 한 인사도 “권 회장이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자신의 권력을 나눠 오인환 포스코 사장(철강부문장)에 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큰집’(청와대)이 탐탁지 않아 한다”며 “내가 알기로 청와대는 지금껏 포스코에 아무 사인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포스코 투자자 포럼(posco investors forum)에 참석한 권오준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2014.05.19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권 회장은 다른 재계 총수와 달리 대통령 해외 순방에 잇달아 불참하며 ‘중도퇴진설’에 휩싸였다. 지난해 6월 미국 순방,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순방에도 권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중국 경제사절단에는 오인환 사장이 참석했다. 재계 일각에선 ‘권오준 패싱’을 우려해 오 사장이 대리 참석했다는 말도 나왔지만 포스코 측은 “중국 현지를 잘 아는 전문경영인이 참석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사실이 아닌 얘기를 자꾸 언론에 흘리고, 그 얘기가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퇴진설은) 전혀 실체가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권 회장의 퇴진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배경에는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있다. 최순실 특검 당시 포스코는 최순실 인사 개입 의혹 등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자료 일부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안팎에선 현 경영진 비리를 주장하는 전직 임원 등이 더불어민주당 A 의원실, 검찰 등과 접촉해 제보를 하고 다닌다는 말이 나온다. 대기업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한 간부는 “검찰이 포스코 관련 일부 사건을 조만간 일선 부서에 배당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도 “서울중앙지검 한 부서가 관련 첩보를 입수해 검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포스코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자체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올 초에는 사장단 인사를 건너뛰고 내부 임원 인사만 실시했다. 포스코 사정에 밝은 복수의 인사는 “사실상 청와대 시그널을 보고 사장단 인사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포스코 안팎에선 이달 개최될 이사회 일정이 잡히지 않는 것도 사장단 인사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코 내부에선 이미 차기 회장 후보군이 하마평에 오르고, 일부 후보의 경우 ‘옹립’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장인화 포스코 부사장(철강생산본부장)은 권 회장과 같은 포스코기술연구소 출신으로 차기 회장 후보군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장 부사장은 지난 ‘정준양 체제’ 당시 작성된 ‘경영 비리 문건’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인환 사장도 권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권 회장의 ‘후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서울대 출신이자 재무·전략통으로 두각을 나타낸 이영훈 포스코켐텍 사장, 호남 출신인 윤동준 포스코에너지 사장도 ‘다크호스’로 불린다. 특히 윤 사장은 문재인 정부 역점 과제 중 하나인 신재생에너지 사업 경험이 있고, 포스코 내 병폐로 지목돼 온 ‘서울대 파벌’에서 무관하다는 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 포스코 등기이사이자 부산대 출신인 최정우 포스코 사장은 PK(부산경남)의 지지를 얻고 ‘옹립’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의 포스코 사정에 밝은 인사는 “포스코는 회사 자체적으로 차기 회장 문제를 매듭짓고 싶어 하는데 만약 이번에도 권력이 개입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만큼은 포스코 경영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재 상황만 보면 언제든 손을 대겠다는 신호가 읽힌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장의 거취 문제가 나오는 악순환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