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정원 개혁위 공보간사로 활동한 장유식 변호사.
―국정원 개혁위 활동은 어떻게 진행됐나.
“2017년 6월 19일 발족해 12월 21일까지 6개월 여간 활동하고 일단 종료가 됐다. 현재는 100일의 활동기간을 정하고 ‘개혁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개혁지원단은 민간 5명, 국정원 2명 등 7명으로 구성됐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개혁위 조직인가.
“아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 개혁발전위를 위에 놓고 적폐청산 TF와 조직쇄신 TF를 그 아래에 삼각형 형태로 그려놨었기에 그런 오해가 생겼는데, 조직적으로는 완전히 분리돼 있다. 적폐청산 TF는 국정원 조직이고, 개혁발전위는 외부민간인 11명에 국정원 2차장과 기조실장을 보태 13명으로 운영된 민간위원 주축의 자문기구였다. 적폐청산 TF가 개혁위에 보고하는 구조인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는 협력관계이다.”
―위원들 선정은 어떻게 했나.
“위원들마다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전직 직원(국정원) 3분은 국내 파트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부서장(1급 국장)을 했던 분이라고 하고, 정보학과 북한학을 연구한 교수들이 3분 정도, 외교 분야나 감사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2분 정도, 그리고 나와 이석범 변호사는 시민사회에서 국정원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왔던 인물이다. 나를 누가 추천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복수의 추천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국정원 적폐청산 과제는 어떻게 선정됐나.
“지난해 6월 19일 첫 회의를 하기 전에 국정원에서 12가지를 가져왔다. 국정원 감시 네트웍(약칭 국감넷)에서 14가지를 가지고 왔던 것 같다. 개혁위는 이를 놓고 논의했고, 공통적인 것이 11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11개를 포함해서, 국정원이 가져왔던 논두렁사건과 시민단체 쪽에서 가져온 세월호 부분이 과제로 선정돼 총 13가지가 됐다. 시민단체에서 가져온 것 중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류경식당(탈북여종업원) 건이었다. 이 건은 UN과 민변 쪽에서 계속 관여를 하고 있었고, 실제적인 관리는 통일부와 경찰이 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중국과 관계된 외교적인 문제가 있어 민감하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국정원의 요청을 받아 적폐청산과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됐다. 이렇게 선정된 13가지에 명진스님 건(사회주요인사 사찰) 등 2개가 추가돼 최종적으로 15가지가 됐다”
―논두렁사건에 대한 조사는 이뤄졌나.
“당시 논두렁이란 단어를 제일 먼저 쓴 게 SBS였다. 시계를 받았다라는 얘기는 피의자신문조서에 나오는 것 같은데, 논두렁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에서 공개를 안한 것인가.
“그렇다. 검찰에서도 피의자신문조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에 확인할 수가 없다. 논두렁이란 이야기를 누가 처음 붙였냐가 중요하다. 전직 대통령에게 모욕적인 정치공작을 한 것이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인데, 국정원에서 조사해보니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확인된 것은 국정원에서 당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을 만나 ‘불기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사실뿐이었다. 적당히 망신주고 불기소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부적절한 개입을 한 것은 확인이 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논두렁 이야기를 한 것은 전혀 확인이 안 되었다. 이인규 씨는 국정원 직원이 얘기 것이라고 해놓고 이후 입을 닫고 있다. 그리고 도피하듯 미국으로 가버렸고, ‘논두렁’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6개월 이라는 조사 시간이 짧지 않았나.
“우리가 직접 조사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민간인들이 국정원 서버를 들여다본다’면서 트집을 잡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감찰실장을 TF팀장으로 한 적폐청산 TF가 직접 조사했고, 3개조 6개팀으로 활동했다. 검사가 4명 포함돼 있었고, 국정원 직원은 20여 명이었다. 적폐청산 TF도 다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국정원 전산실 직원은 2~3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이들에게 키워드를 적은 공문을 보내면 전산실에서는 판단을 하지 않고 출력물을 엑셀 파일로 뽑아서 준다고 했었다. 엑셀 파일에는 제목과 내용 일부가 100글자 정도가 들어가 있는데, TF가 이것을 보고 원문을 봐야겠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어 다시 요청하면, PDF 파일로 변환된 원문을 뽑아 보내주는 것이다. 그것을 TF가 정리해 개혁발전위에 보고했다.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객관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검증하고 개혁의지를 신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감찰실장을 비롯해서 몇 명의 검사가 TF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만의 셀프조사는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산실에 보낼 공문에 키워드는 개혁위가 결정하나.
“아니다. TF에서 했다. 어떤 형태로든 민간위원들은 서버에 접근하지 못했다. 전산실에 보내는 공문에 무슨 키워드가 들어갈 것인지는 TF가 정했다. TF는 개혁위가 요구한 과제가 있으니 고의로 누락할 수 없다고 보고, 서로 믿고 했다.”
―서버에 있는 내용을 직접 보지 않고 페이퍼로 받는 경우, 서버에 있는 것과 페이퍼의 내용이 100% 일치한다는 보장이 있나.
“분명히 그럴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는 ‘축소되고 은폐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위원들이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사건은 유우성사건과 관련한 ‘가짜 사무실 수사방해사건’이다. 이 문제는 원래 적폐청산 세부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국정원 내부직원의 제보로 인해 추후에 밝혀진 것인데, 위원들은 ‘TF도 몰랐던 것이냐, 아니면 고의로 빼놓았던 것이냐’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TF장인 조남관 감찰실장이 ‘나도 몰랐다, 나도 당한 것이다’라고 펄쩍 뛰었다. 서로 민망한 장면이었다. 어쨌든 이 문제는 현재 추가 조사사항 7개에 포함되어 있다. 충분한 검증수단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서버에 제대로 키워드를 넣었는지, 제대로 출력을 받은 것인지, 빼먹은 것은 없는지, 축소·은폐한 것은 없는지 검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내용을 철저히 검증하고,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기관에서 운영했던 개혁위와 비교하면 국정원이 가장 빠르고 가장 활발했다고 자평한다. 국정원 자체가 과거의 악습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대통령과 원장의 입장도 확고했기 때문이다. 위원들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적폐청산과 국정원개혁에 매진했다.”
―메인 서버엔 기밀 사항이 많은가.
“서버 안에는 기밀과 기밀이 아닌 것이 섞여 있다. 기밀 지정권자가 기밀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판례도 기밀로써 가치가 있어야 기밀이라고 했으니, 개인 사찰을 기밀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문건 자체는 기밀로 분류되어 있을 수는 있다. 우리는 그 자체를 직접 보지 않았다.”
―국민들의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사이버 외곽팀이 실체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구속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회의에서 MB를 목표로 그런 식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전혀 없었다. 개혁위 활동이 시작될 무렵 원세훈 씨 재판이 있었기에 적폐청산 작업이 검찰을 지원해 주는 형태가 됐다.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니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원세훈 씨의 개입은 명확히 확인된다. 모든 부분에 원장이 언급돼 있기도 하고 안 되어 있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형태로 원장이 보고받았거나 원장이 지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는 충분했다. 다만 청와대에 대해서는 BH(청와대)의 요청, BH의 지시, BH의 보고 말씀이라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BH가 뭐냐는 것이다. 대통령이냐 비서실장이냐, 민정수석이냐, 민정수석실의 비서관이냐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걸 문건에 남겨둘 리도 없고. 그래서, 대통령의 직접개입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키맨의 존재가 중요하다. 원세훈이나 군사이버댓글과 관련한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 등이 키맨이다.”
―국정원 적폐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내정보에 너무 접근해 있고, 대공수사는 물론이고 수사권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권력기관으로 군림해왔으니 그것을 고치는 처방을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권력자가 아무리 선해도 권력기관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힘이 모이면 남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을 잘 하도록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국정원은 정보기관이 아니고 권력기관이다. 이러한 국정원은 진짜 정보기관으로 만들어 주는 게 최선이다. 견제와 균형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통령은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줘서는 안된다.”
―대공 수사권까지 경찰에 이관되면 경찰이 너무 비대해 질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가는 것은 정해졌고, 남은 것은 속도다. 경찰은 수사와 행정경찰로 나누고, 다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눠 경찰의 비대화를 막아야 된다. 수사경찰은 국가경찰에 가깝고, 행정경찰은 자치경찰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수사경찰이 경찰의 실세가 될 터인데, 수사경찰이 검찰, 국정원과 서로 견제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찰이 대공수사와 대북공작을 국정원만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대공수사권이 넘어가면 한동안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경계도 불분명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대북공작은 국정원이 해야 한다. 대북공작을 하려면 첩보를 수집해 공작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있는데, 최소한 압수 수색이나 구속처럼 강제수사에서는 국정원이 손을 떼게 해야 한다. 물론, 대공수사권을 넘겨도 대북공작은 해야 하니 강제수사를 하기 전까지 첩보 수집과 관련된 국내에서의 조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부분은 명확히 정리되지 못했다. 공작은 법에 의한 통제인 ‘적법통제’가 필요한 부분이 아니니 법으로 규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다른 권력기관의 개혁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
“권력기관 중에서 국정원과 관련있는 곳은 검찰과 경찰이다. 검찰은 너무 비대해 있다. ‘검찰 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검찰은 덩어리가 너무 커져서 자기 식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무조건 분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공수처 신설이 제일 큰 과제가 된다. 수사권 조정은 경찰이 목을 매고 있다. 수사권 조정을 하고 나면 경찰이 비대해진다. 권력기관 사이에는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지금 비대해 있고 적폐가 쌓여 있는 부분을 정리하다 보니까 경찰로 힘이 많이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경찰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경찰도 근본적인 개혁들이 필요하다. 국정원의 대북·해외 정보력은 확실히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사이버 부분은 쟁점이다. 국정원에서는 수사권을 넘기고 국내파트를 포기하는 대신 사이버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
고진현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