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세계적인 명감독 올리버 스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당시 할리우드의 핫 이슈였던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기자들은 그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스톤의 입장은 원칙적이었다.
“난 법적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론 몰이를 해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난 그와 일한 적이 없고 그를 잘 모른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면서 온갖 끔찍한 이야기들을 들어왔지만, 그런 가십들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난 일단 기다리면서 관망하겠다. 그게 적절한 태도다.”
하지만 이후 그는 자신의 태도를 좀 더 명확히 했다. 며칠 동안 계속 여행을 다니며 바빴기에 와인스틴 사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에서야 그간의 상황을 살펴보았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드러낸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와인스틴 컴퍼니에서 제작하기로 한 TV 시리즈 ‘관타나모’의 메가폰을 잡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안티 와인스틴’ 전선에 합류했다.
하지만 미국 시간으로 10월 13일, 모델 출신이며 배우인 캐리 스티븐스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렸다. 하비 와인스틴이나 올리버 스톤이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표현한 스티븐스는 1991년 자신이 어느 파티에서 겪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당시 22세였던 신인 모델이자 무명 배우로, 할리우드의 파워 프로듀서 중 한 명인 테드 필드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 필드가 스톤을 위해 연 파티로, 당시 승승장구하던 스톤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북적거렸다. 이때 파티 장소로 들어가던 스톤은, 홀로 서 있던 스티븐스의 가슴을 만지고 지나갔다. “난 아직도 자신이 뭔가 대단한 놈인 척하는 그 자만심에 찬 웃음을 기억한다.” 스티븐스는 할리우드 거물이었던 스톤은 자신의 힘을 믿고 멋대로 행동했으며 자신 말고도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 했다. 스티븐스는 “스톤은 유치원에 가서 아무 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 배워야 한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그녀가 이런 글을 올리게 된 건, 스톤이 와인스틴을 비판하고 그와 작업하지 않겠다며 마치 의식 있는 감독처럼 구는 것이 역겨웠기 때문이었다.
캐리 스티븐스의 주장에 스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때 두 명의 배우가 나섰다. 먼저 멜리사 길버트가 ‘도어즈’(1991) 오디션 때 일을 털어놓았다. 앤디 코헨의 라디오 쇼인 ‘라디오 앤디’에 출연한 길버트는 처음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괜히 밝혔다간 후환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자신도 성적 모욕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이야기를 이어가며 머뭇거리던 그녀는, 결국 이야기했다. 짐 모리슨의 전기 영화 ‘도어즈’에서 모리슨의 애인 파멜라 코슨 역에 수많은 여배우들이 오디션을 보았다. 결국 멕 라이언에게 돌아갔는데, 길버트도 후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디션은 그녀에게 끔찍한 기억이었다. 길버트에 의하면, 올리버 스톤은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며 오디션 대본을 건넸다.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며 “섹스해 줘, 자기”라고 애원하는 신인데 스톤은 자신을 대상으로, 육체적 접촉을 하며 연기하라고 요구했다. 길버트는 거부했고, 결국 치욕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리며 오디션 장소를 나갔다.
길버트의 주장에 스톤은 이미 배우들에게 선정적 요소가 있는 영화라고 밝혔던 상황이라고 맞섰고, 오디션을 위해 영화에 없는 장면을 새로 쓴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어즈’엔, 이후 편집에서 삭제되었는지는 몰라도, 스톤이 길버트에게 오디션에서 요구했던 그런 장면은 없었다. 한편 당시 캐스팅 디렉터였던 리사 브라몬 가르시아는 배우들 모두 자발적으로 온 것이며, 그 어떤 배우도 강압적 분위기에서 오디션을 치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때 패트리샤 아퀘트가 나섰다. 그녀는 ‘올리버 스톤의 킬러’(1994) 시사회 때 일을 털어놓았다. 당시 ‘트루 로맨스’(1993)로 청춘 스타덤에 오른 아퀘트에게 스톤은 캐스팅 제안을 했고, 두 사람은 만나서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우 노골적이며 성적인 영화였다. 며칠 후, 아퀘트에게 스톤이 보낸 커다란 꽃다발 배달이 왔다. 뭔가 싶었지만 그녀는 그냥 넘어갔다. 이때 스톤 쪽에서 꽃을 받았는지 확인 전화를 했고, ‘올리버 스톤의 킬러’ 시사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녀는 당시 연인인 니컬러스 케이지와 시사회장을 찾았는데, 이때 스톤은 왜 남자친구와 함께 왔느냐며 아퀘트에게 화를 냈다. 그녀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스톤과의 영화 작업은 없던 일이 되었다. 과연 스톤은 그날 왜 아퀘트가 혼자 오길 바랐던 걸까?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로웠던 걸까? 미스터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