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정오부터 서울 강남구 레진코믹스 사옥 앞에서 열린 웹툰-웹소설 작가연대 2차 시위는 지각비 폐지 등 레진코믹스에 대한 기존 요구사항에 이번 고소 취하 건을 추가했다. 레진코믹스 측에 피소된 작가는 레진코믹스 내 이른바 ‘작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주장한 미치 작가와 은송 작가다.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레진코믹스 사무실 앞에서 작가들이 블랙리스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레진코믹스는 지난 1월 25일 이들 작가에 대해 손해배상 소를 청구했다. 배상금액은 5000만 원이며 “향후 정확한 피해 상황을 종합 정산해 추가 배상금액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직후부터 두 작가에 대해서 계약을 해지하고 작품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레진코믹스 측은 이들 작가에게 명예훼손의 책임을 추궁했다. 허위사실의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과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을 모두 적용했다. 레진코믹스가 지목한 허위사실은 “레진코믹스의 불공정한 운영 방식으로 피해를 입은 작가가 많다” “레진코믹스가 작가의 돈을 횡령했다” 등 작가들이 주장해온 내용이다. 이런 주장은 작가들이 트위터 등 자신의 SNS를 통해 레진코믹스에 대한 비판의 글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것들이다.
작가들은 레진코믹스의 고소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은송 작가는 “그 SNS 게시글이 문제가 됐었다면 글을 게시한 당시에 문제를 삼았어야 했다”라며 “기존에 레진코믹스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을 때는 별 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 이번 지각비, 해외수익 미정산과 작가들 블랙리스트 관리 등 문제가 터지자 지금에 와서 고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이 SNS에 올린 레진코믹스의 비판글이 이미 대부분의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는 사실이나 레진코믹스가 일부 인정했다는 점이 고소장에 빠져있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결국 고소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
예컨대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되기 전까지 레진코믹스는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레진코믹스 내부 이메일에 “블랙리스트(?) 작가-앞으로 진행될 모든 이벤트에서 ‘은송’ ‘미치’ 작가의 작품은 노출하지 않습니다. 레진님(레진코믹스 한희성 대표를 회사 내부에서 지칭하는 호칭)이 별도로 지시한 상황입니다”라고 작성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레진코믹스 측은 “회사의 내부 이메일은 맞지만 이메일에 적힌 것처럼의 편파 운영은 없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미치 작가는 “소장에서 레진코믹스가 문제 삼고 있는 사안들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라며 “이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적었다고 해서 그것이 레진코믹스가 주장하는 피해로 이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진코믹스 사옥 앞 시위현장. 고성준 기자
레진코믹스가 작가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계약서 상 비밀 유지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작가들이 주장하는 바가 일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계약에 따라 외부 공개가 금지된 사항을 공개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레진코믹스 측은 작가와 플랫폼 간 정산 비율을 공개한 것도 문제를 삼고 있다. 비밀이 유지돼야 할 계약상의 내용이기 때문에 공개한 것 자체가 계약 위반이며 이 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라며 “그런데 이미 레진코믹스는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정산 비율을 꾸준히 공개해 왔고, 작가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레진코믹스가 정산 비율을 7:3(작가:플랫폼)에서 5:5로 말을 바꾸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고자 했던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레진코믹스가 업계에서 쌓아올린 병폐는 지상파 뉴스에도 뜰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안인데 이에 대한 책임을 작가, 그것도 연대 구축의 중심에 섰던 두 작가에게만 묻는다는 것 자체가 레진코믹스의 저의를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 레진코믹스는 작가들과 갈등을 조율할 의사가 전혀 없고 대형 법무법인의 힘을 빌려 찍어 누르기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고 짚었다.
레진코믹스는 이번 사태 이후 지난 1월 19일 작가들과 첫 간담회를 가져 지체상금 순차적 폐지와 MG(미니멈 개런티. 웹툰 서비스에서 보장하는 최소한의 수익 한도) 조율 등의 안을 내놨다. 그러나 웹툰 작가들은 ▲계약을 해지한 작가와 사측이 갑작스럽게 사업을 취소한 웹소설 분야 작가들도 간담회 자리에 부를 것 ▲계약서 상 레진코믹스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명확한 조항을 신설할 것 ▲레진코믹스의 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손해 본 작가들의 피해 보상을 할 것 ▲통일된 계약서와 시스템을 구축할 것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사측에 맞섰다. 결국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곧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던 2차 간담회도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이다.
레진코믹스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소송과 관련한 사안은 회사와 작가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소송 직후 공식 입장을 통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확산되고 있고 그로 인해 회사와 다른 작가들도 피해를 보고 있어 더 큰 피해를 막자는 것”이라고 소송의 배경에 대해선 제한적이나마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