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강제퇴직 사건이란 김대중 정부가 영남지역 출신 직원들을 내쫓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제퇴직을 종용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 500여 명이 강제퇴직을 당했다. 당시 강제퇴직당한 국정원 직원들의 출신지는 영남 47%, 수도권 23%, 충청 17%, 호남 3%, 기타 10%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정부 국정원이 법원 지휘부와 접촉해 재판에 개입하려했다는 내용이 담긴 조사보고서.
김대중 정부에서 강제퇴직을 당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 강제퇴직자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위원회(국강투)’를 구성하고 현재까지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2008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새로운 증거와 증언들이 수집되면서 국강투는 2015년 다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본지는 지령 1332호 ([단독] “노무현 정부 국정원도 증거조작” 기사 참고)를 통해 김대중 정부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직원들을 내쫓고, 노무현 정부 국정원이 이와 관련한 소송에서 증거를 조작했다는 내용이 담긴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진술서를 공개한 바 있다.
이번에 추가로 입수한 ‘1998년 강제퇴직 진상규명 조사활동 소명자료’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은 증거조작뿐만 아니라 법원 지휘부와 직접 접촉해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국정원은 2004년 4월 23일 1심 소송에서 패한 이후 4월 28일 재판대책위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2005년 3월에는 소송 승소기반 마련을 위한 ‘원(국정원) 관련 현안소송 대처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 지휘부는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대규모 후속 소송 제기 등으로 막대한 예산상 문제가 수반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담당 재판부를 접촉해 소송 승소기반을 마련하라고 실무자들에게 지시했다.
국정원은 실무자들에게 서울고등법원 및 중앙지법 지휘부를 OO단 OO를 통해 접촉하고 원 관련 소송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또 담당 재판장을 법무법인 OO의 행정팀장 임OO 변호사를 통해 접촉해 원 관련 소송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라는 등 매우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소송에 관여하려 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밖에도 OO과에서는 이OO OOO장이 직접 연수원 동기생인 담당 주심 판사 이OO을 사적으로 접촉해 국강투 소송과 관련한 원 입장 설명 및 협조당부를 병행하고, 원 고문변호사인 임OO 변호사에게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출신지, 출신학교, 연수원 기수 등 신원사항을 전달해 재판부를 접촉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정원의 이 같은 재판 개입이 누구의 지시로 결정되고 실행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방위 재판 개입을 결정한 회의에는 손OO OOO장, 이OO OOO장, 문OO OOO장, 홍OO OO단 OOO장, 이OO OOO장, 소O OOOOO실 검사 등 6명이 참석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번 자료는 재판과정에서 공개됐는데 정보기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보고서에 등장한 인물들의 성을 제외한 이름은 물론 당시 직책까지 블라인드 처리가 되어 공개됐다.
재판 개입 시도 사실은 당시 고영구 국정원장에게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에는 실무자들이 원 관련 재판대책위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결과를 고 전 국정원장에게 구두로 보고했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강투 관계자는 “단순한 의견전달이라고 하더라도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재판관들과 만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행위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며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재판관들과 접촉한 것이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 적폐청산을 위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국정원 직원 강제퇴직 사건과 관련한 수사나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구 전 국정원장의 후임인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지난해 7월 제출한 진술서에서 ‘고 전 원장은 2005년 8월 항소심에서 승소하기 위해 인사 관련 담당 간부들로 하여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순화 담당관’ 운영 및 명예퇴직 강압사실을 부인하는 등 위증토록 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또 ‘국정원의 당시 강제퇴직 조치는 국가와 조직이 저지른 범죄행위’라면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적었다. 이 같은 진술서 내용이 보도된 후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노무현 정부 때도 심각한 적폐가 있었다는 것이 김만복 전 원장의 진술서를 통해 밝혀졌다”면서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앞서의 국강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러 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해봤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보수정권의 잘못만 파헤치고 진보정권의 잘못은 덮는다면 적폐청산이 아니라 정치보복일 뿐”이라며 “당시 국정원 최고 책임자인 김만복 전 원장이 스스로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는 진술서까지 제출했음에도 조사조차 안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