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 도중 중단된 아하브병원의 비상탈출시설.
[일요신문] 최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참사로 인해 병원 등 의료시설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부산북구청이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행정을 펼쳐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자체마다 단체장이 나서 화재에 대한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하고 화재 예방을 독려하는 것과는 거의 정반대인 행태를 보여 거센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화재가 빈번해지자 병원들마다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지자체도 다르지 않다. 지자체 존립의 가장 기본적인 이유와 목적이 주민 보호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행보로 여겨진다. 저마다 대책회의를 갖고 강도 높은 관리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북구청은 이런 흐름에서 완전히 비켜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병원 옆 소방로 문제를 방치하는가 하면, 병원이 획기적인 비상대피시설을 마련키로 하자 딴죽을 걸어 이를 무산시킨 것이다.
# 대형병원 화재대피로 불법 점유에 ‘나 몰라라’
우선 부산북구청은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인 구포시장과 바로 인접한 구포성심병원 사이 구간이 화재 발생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을 넘어, 우범지대로 변하고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
구포시장은 끝자리수가 3과 8이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5일장이 들어선다. 이때가 되면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은 노점상들이 몰려와 술과 음식 등으로 장사를 한다. 때문에 길거리에 LPG가스통을 세워두고 화재에 대한 대비도 없이 음식을 조리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구포시장과 구포성심병원이 서로 접한 구간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이 구간이 노점상들에게는 가장 목이 좋은 이른바 ‘황금상권’이 되고 있어 오히려 더욱 심한 편이다. 폭 4~5m에 길이가 대략 50m에 이르는 이 좁은 골목길은 구포성심병원의 서남쪽 방향을 둘러싸고 있다.
해당 구간에는 장날만 되면 마치 각기 정해진 자리라도 있는 듯이 고정된 장소에 특정인이 늘 영업을 한다. 이 구간이 구포시장 내에 영업 중인 다른 노점상들에 비해 더욱 심한 것은 대부분이 직접 현장에서 취사하고 술도 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인근 건물에 입주한 다른 상인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구포성심병원 주변은 5일장이 들어서면 노점상들이 몰려와 장사를 한다.길 한복판에 탁자를 펼쳐놓고 술과 음식을 파는 모습(왼쪽)과 취객이 노상방뇨를 하는 장면(오른쪽).
한 건물주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직접 나간 지난 3일의 골목길 상황은 듣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여기저기에서 술판이 벌여졌으며, 골목과 맞닿은 으슥한 좁은 뒷길에는 방뇨하는 취객들이 줄을 이었다. 취객 가운데 일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 길 한복판에 드러눕기도 했다.
골목길은 여러 위험요소를 안은 것으로 보였다. 우선 상인들이 화재에 취약한 LPG가스통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어 일차적인 위험이 상존한다. 또한 혹시 모를 화재 발생 시 병원 서남쪽으로 진입하려는 소방차의 진입이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분과 초를 다투는 위급상황이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요인이 될 게 분명하다.
이런 현실을 대하는 북구청의 태도는 의아했다. 세종병원 화재 등이 발생하자 해당 구간 일대의 안전을 염려한 건물주 A 씨는 북구청에다 관련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북구청은 제기된 민원에 대해 지난 6일 오전 “전통시장 특성상 노점상을 완전히 근절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문제가 된 병원 인근의 노점상 음식 위사 및 판매에 대해서는 계도를 통해 최대한 시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사실상 구청의 단속의지가 없다는 게 전해지자, 인근 건물주와 병원 등은 현재 자구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강력한 단속을 펼쳐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게 아니라 계도를 통해 최대한 시정하겠다는 말은 관이 민원을 제기한 쪽에 보내는 일반적인 수사라는 것은 이미 상식화된 얘기다. 북구청 관계자는 8일 가진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당장 철거는 어렵다. 지금 관련 부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 병원의 자체적인 비상대피시설 조성에 이행강제금 물려 중단시켜
부산북구청의 이해하지 못할 행정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구청은 관내 만덕동에 있는 아하브병원이 화재 발생에 대비해 획기적인 비상대피시설을 조성하려고 하자, 이를 허가해주지 않고 오히려 억대의 이행강제금을 물렸다. 병원은 결국 이행강제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공사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아하브 병원은 환자 안전을 위해 화재 발생 시 탈출 용도로 경사로시설을 증축키로 했다. 병원은 2013년부터 해당 시설 건립을 준비하다가 이듬해인 2014년 21명이 숨진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소식을 접하자 같은 해 6월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
7층 높이의 병원 건물 양옆에 세워지는 비상탈출시설은 위급상황 시 바퀴 달린 침대를 통째로 1층으로 내려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병원 측은 해당 시설이 소방법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환자를 빨리 대피시킨다는 차원에서 15억 원을 들여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해당 시설은 왼쪽 부분의 골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인 2015년 1월 북구청 건설과로부터 불법건축물로 적발됐다. 구는 병원 측에 무단증축을 했다는 이유로 이행강제금 3억 4000만 원을 부과했다.
병원은 환자 안전이 우선이라고 판단, 이행강제금을 낸 뒤에 다시 건축허가 절차를 밟아 5개월 만인 2015년 10월 드디어 건축허가를 받았다. 이행강제금을 내기 전에는 1년이 넘도록 나지 않던 건축허가가 이번에는 재신청한 지 5개월 만에 통과된 것이다.
하지만 허가 이후 시설 건립은 순탄치 않았다. 병원은 전체 사업비인 15억 원의 20%가 넘은 이행강제금을 내는 등 재정 부담이 커지자 마지못해 공사를 중단했다. 아하브병원 관계자는 “북구청이 늑장 행정을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건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는 환자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라며 “수억 원의 이행강제금을 낸 뒤에는 공사 진행에 차질이 생겨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북구청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병원업계 한 관계자는 “환자 안전을 위해 자체 예산으로 건립하는 시설마저 편협한 잣대로 규정지어 막은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전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