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만 새 시즌을 준비하느라 힘든 게 아니다. 코치들 역시 캠프 내내 선수들 곁에서 호흡하며 함께 땀을 흘린다. 정해진 스케줄만 소화하면 쉴 수 있는 선수들과 달리 코치는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관리하느라 더 바쁘기도 하다. 선수들보다 일찍 하루를 열고 늦게 하루를 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도 10개 구단은 2018시즌을 함께할 코칭스태프를 재정비하고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 가운데는 지도자로서 첫 캠프를 맞이하는 코치도 있고, 새로운 팀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코치도 있다. 특히 올해는 선수만큼이나 많은 주목을 받는 스타 코치들이 여럿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 모두 선수들만큼이나 단단한 각오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병규 코치. 사진=LG 트윈스 홈페이지
유독 해설위원에서 코치로 변신한 ‘초보 코치’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LG 이병규 코치, 두산 조성환 코치, KIA 서재응 코치다. 이들은 모두 은퇴 후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까지 유니폼을 벗고 마이크를 잡았다. 더그아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시야를 넓혔다.
과거 한때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더 이상 현장에서 설 자리가 없는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처럼 보였다. “한번 해설위원이 되면 현장에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편견도 뿌리 깊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프로야구 전 경기가 생중계되는 시대가 오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스타 해설위원이 속속 등장했고, 오히려 프로야구 감독이나 코치의 등용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 야구인은 “요즘에는 오히려 해설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게 지도자들에게 좋은 경험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세 코치 역시 같은 길을 택했다.
이병규 코치는 LG의 대표적인 레전드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자신의 등번호 9를 영구결번으로 남기고 2016년 말 은퇴했다. JTBC에서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중계를 맡아 해설자로 데뷔한 뒤 스카이스포츠와 계약해 1년간 야구장을 누볐다. 지난해 말 LG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고 지도자로 돌아오기로 했다. 이 코치는 LG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가운데 한 명이었다. 현역 시절 내내 정교한 타격으로 이름을 날렸다. 아직 정확한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1군 타격 보조코치나 2군 타격코치 자리가 유력하다. 현재 스프링캠프에 동행해 선수들과 함께하고 있다.
조성환 코치는 롯데에서 ‘영원한 캡틴’으로 불렸을 만큼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로 정평이 났다.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롯데에서만 뛰다 은퇴했다. 3년간 KBS N스포츠에서 야구 해설자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언젠가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품었다. 때마침 두산이 조 코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해 코칭스태프 가운데 세 명이 한화로 이적하면서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던 참이다. 선후배와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조 코치를 새 수비코치 적임자로 낙점했다. 조 코치는 두산의 탄탄한 내야진과 호흡을 맞춰가는 중이다.
조성환 코치. 사진=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 돌아온 레전드들, 갓 은퇴한 샛별들
한화는 모처럼 익숙한 얼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용덕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레전드 코치들도 돌아왔다.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롯데로 팀을 옮겼던 장종훈 코치와 KBS N스포츠 해설자로 활약했던 송진우 코치다. 한화에 각각 35번과 21번을 영구결번으로 묶어 놓고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들이다. ‘연습생 신화’의 원조인 장 코치는 이승엽이 나타나기 전까지 KBO 리그 홈런 관련 기록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던 원조 홈런왕이다. 송 코치는 말이 필요 없는 역대 최다승(210승) 투수이자 유일한 200승 투수다. 이들은 영구결번으로 묶여 있던 자신들의 등번호를 다시 달고 선수들을 지도한다. ‘레전드의 힘’을 직접 눈앞에서 보여주면서 한화 선수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우겠다는 계획이다. 한화의 유일한 우승을 함께한 강인권 배터리코치도 한 감독과 함께 두산을 떠나 친정팀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한화의 젊은 포수들과 함께 새로 출발한다.
삼성은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를 5년 만에 복귀시켰다. 오치아이 코치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 투수코치를 맡았다. ‘투수 왕국’으로 불리던 삼성 마운드를 뒷받침하면서 많은 투수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가 지바롯데 코치로 일하다 다시 삼성과 손을 잡았다. 다만 현재 삼성 마운드는 오치아이 코치가 떠나던 시기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에이스 윤성환처럼 오치아이 코치와 호흡이 잘 맞았던 투수들이 일부 남아있지만, 삼성은 지난해 팀 평균자책점 최하위에 그쳤을 정도로 마운드가 허약하다. 오치아이 코치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다.
장종훈 코치.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 사단형 코치 왜 사라졌나
그동안 코치들은 대부분 특정 감독의 거취에 변동이 생길 때마다 함께 움직이는 ‘사단형 코치’들과 선수 시절 간판스타로 군림한 뒤 자연스럽게 구단에 남아 지도자 생활을 하는 ‘프랜차이즈 코치’들로 나뉘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단형’ 코치들보다 ‘프랜차이즈형’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구조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점점 코치와 선수 사이의 소통과 교감 능력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인맥으로 자리를 꿰차는 ‘철밥통’ 코치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또 하나는 ‘사단’을 구축할 만한 감독이 아직 많지 않다. 10개 구단 감독 가운데 KBO 리그에서 2개 팀 이상을 지휘한 감독은 김경문 NC 감독, 류중일 LG 감독, 김기태 KIA 감독, 김진욱 kt 감독뿐이다. 이 가운데 감독 경력이 5년 이상인 사령탑은 김경문 감독과 류중일 감독이 전부다.
조원우 롯데 감독, 김한수 삼성 감독, 장정석 넥센 감독은 첫 팀을 맡은 40대 지도자이고, 한용덕 한화 감독은 올해 처음 프로 감독으로 출발한다. 코치 인선에 감독이 절대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아직 어렵다.
물론 스타플레이어 출신 코치들이 무조건 유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역 생활이 화려했던 선수들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속설도 존재했다. 탁월한 재능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던 코치들이 백업 선수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해 KIA를 우승으로 이끈 김기태 감독처럼 이 속설을 깨버린 지도자도 적지 않다. 현역 시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연봉을 받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뭉친 코치들이 더 많다. 결국 지도자로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달려 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외국인 코치가 줄어드는 까닭? 선수들 멘탈 관리 ‘말이 통해야 하지’ 올해도 외국인 코치들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다시 돌아온 오치아이 코치와 장수 외국인 투수 출신인 넥센 브랜든 나이트 투수코치를 비롯해 두산의 고토 고지 타격코치, KIA의 쇼다 코우조 타격코치 등이 모두 팀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외국인인 트레이 힐만 감독이 지휘하는 SK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퀄리티 컨트롤 코치(Quality Control Coach·QC 코치)라는 보직을 두고 라일 예이츠 코치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있다. 미국프로풋볼(NFL)에 처음 등장한 QC 코치는 영상과 통계 분석을 통해 코칭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한다. 예이츠 코치는 국제 스카우트 경험을 살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에도 관여하고 있다. KIA 쇼다 코우조 타격코치. 사진=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사실 올 시즌은 과거에 비해 외국인 지도자가 많지 않은 편이다. 불과 3년 전인 2015년만 해도 전 구단 외국인 코치 수가 두 자릿수를 넘었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일본인 코치 다섯 명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또 일본 프로야구 타점왕이나 요미우리 에이스 출신처럼 경력이 화려한 코치들이 KBO 리그와 손을 잡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올해는 외국인 코치가 아예 없는 팀도 많아졌다. 지금 남아있는 코치들은 이미 KBO 리그에서 선수나 지도자 경험을 거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코치는 1984년부터 6년간 롯데에서 지도자로 일한 도이 쇼스케였다. 1990시즌 도중 김진영 감독이 해고된 뒤에는 감독대행으로 24경기 지휘봉을 잡고 8승1무15패를 기록했다. 또 1985년 OB 사노 요시유키 수석코치, 1986년 MBC 미즈다니 노부히사 투수코치가 차례로 한국에 들어와 2년간 코치로 일했다. 1990년에는 삼성이 최초로 미국인 지도자인 고든 마티 코치와 계약했다. 1991년에는 조 알바레스 코치가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다. 알바레스 코치는 쌍방울(1991~1992년)에 이어 롯데(1993~1996년)와 LG(1997~1998년)를 거쳤고, 2012년 SK의 부름을 받고 1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외국인 코치 수가 늘어난 것은 역시 김성근 감독이 2007년 SK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뛰었던 선동열 감독도 삼성과 KIA 사령탑 시절 일본인 투수코치와 트레이닝코치를 선호했다. 실제로 외국인 코치들이 국내 야구 발전에 기술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마티 코치는 한국에 투심패스트볼과 파워커브를 전수한 인물로 꼽힌다. 여전히 많은 구단이 스프링캠프 때 외국인 인스트럭터를 고용해 선수들의 지도를 맡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갈수록 외국인 코치 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국내 코치들로만 1·2군 코칭스태프를 꾸린 한 감독은 “코치는 선수들을 기술적으로 지도하는 게 아니라 멘탈이나 생활을 관리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아무래도 그런 면에선 말 통하는 국내 코치가 낫다”며 “이젠 실력 있는 국내 지도자들도 많아졌다. 능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한국 코치들에게 기회를 줘서 좋은 지도자를 육성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다고 본다”는 소신을 밝혔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