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대우건설 매각이 결국 무산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외 부실들
대우건설은 지난해 지나칠 정도로 대규모 부실정리(Big-bath)를 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해외 부문에 무지한 호반건설이 겁먹는 게 당연할 정도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모로코 Safi IPP는 도급액 1조 9819억 원의 석탄화력발전소다. 이 프로젝트는 1, 2호기로 구분되며 올 7월 완공 예정으로 1호기 시운전 진행 중 고압급수가열기 튜브 손상이 발생했다. 대우건설은 기자재 재제작 등으로 인한 원가 3084억 원을 추가 반영하고 손실로 인식했다. 프로젝트 규모 대비 이번 손실액수를 감안할 때 상당히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카타르 고속도로 프로젝트의 손실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7개국이 카타르와 단교하면서 발생했다. 공기 지연으로 2017년 3분기 2520억 원의 손실이 이미 인식됐고, 4분기 다시 263억 원이 추가됐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초 카타르에서 다른 도로공사도 수주했지만 이 역시 정상 진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2017년 10대 주요 진행 해외프로젝트(도급액 10조 298억 원) 중 6곳(5조 8764억 원)의 원가율이 100%를 초과하고 있다. 이들 주요 공사는 가장 긴 곳이 2021년까지다. NICE신용평가는 “손실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원가율 상승의 주요 원인이 공기 지연에 따른 추가 공사비 지출인 만큼 실질 완공 시점까지 추가 비용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겁 먹은 호반건설
대우건설은 2016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주택과 건축부문에서만 1조 원이 넘는 매출이익을 거뒀다. 해외는 계속 손실을 봤다. ‘우물 안 개구리’인 호반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셈이다.
호반건설 지배구조
호반으로서는 최근 글로벌 금리인상과 지방 주택시장의 침체도 부담이 됐을 수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후분양제 등이 법제화되면 재무안정성이 중요해진다. 건설사가 직접 돈을 빌려 주택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반이 보유 현금에 빚까지 내서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신용도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대우건설이 해외부문에서 돈을 벌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못하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현재 대우건설은 국책은행이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그나마 높은 신용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김상열 회장은 ‘막판 포기’로 유명하다. 호반은 금호산업과 동부건설, SK증권 등의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됐지만 매번 막판에 발을 뺐다. 최근 호반이 성공한 인수합병은 울트라건설 정도다.
재계 29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47위인 호반의 순위가 19위까지 급상승할 수 있다. ‘30대 그룹’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각종 대기업 관련 규제를 모두 적용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호반은 김 회장 본인과 부인, 자녀 등이 최대주주인 ‘가족기업’으로서 일감몰아주기 등의 규제에 취약하다”며 “대우건설에서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 ‘벌집’만 건드린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의 패착들
2016년 8월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사장에 박창민 현대산업개발 상임고문을 임명한다. 해외 비중이 높은 대우건설에 해외 경험이 전무한 국내 주택 전문가를 임명하자 ‘최순실 입김’이란 소문도 돌았다. 박 사장 재임 기간 동안 ‘빅 배스’가 이뤄졌지만, 결국 제대로 때를 밀지 못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내와 해외는 공사의 종류도 달라 아예 다른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며 “평생 주택만 짓던 사람이 해외사업을 보면 ‘눈뜬 장님’과 같을 텐데 아마 박 사장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8월 취임한 송문선 대표 역시 해외경험이 없다. 평생 산업은행에서 근무하다 대우건설에서 7개월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한 게 전부다. 해외 사업장 사정을 정확히 알 리 없다.
산은은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정밀실사에 따른 인수가격 조정 폭을 3%로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증권을 미래에셋에 팔 때도 이 폭을 2.5%로 제한했다. 에누리 없이 팔려는 속셈에서다. 그런데 이번 해외부실 규모는 인수가의 20%가 넘는다. 호반이 포기할 명분이 충분했던 셈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산은으로서는 비금융회사 매각 방침에 따라 대우건설 인수가 3조 2000억 원의 반값에라도 일단 파는 거래였는데, 우발채무나 부실에 대한 안전장치를 넉넉히 제시했다면 호반으로서는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산은은 앞서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중국 더블스타에 인수가격 조정 폭을 제한하지 않았다. 심지어 “더블스타가 주식매매계약 체결 이후 실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실을 발견했을 경우 채권단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보전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취한 바 있다. 국내 기업에 매각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