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우드 클래식’ 실버 영화관 전경. 고성준 기자
55세 이상 실버 세대에게 영화 한 편을 2000원에 제공하는 극장이 있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 클래식’이다. 허리우드 극장 3개 관 가운데 한 곳을 임대해 어르신 전용 극장으로 탈바꿈했다. 하루에 10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허리우드 클래식을 운영하는 김은주 ㈜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는 “단관 극장들이 문을 닫거나 주차장이 되거나 호텔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스카라 극장과 화양극장을 운영했는데 모두 성공을 거뒀었다. 그러던 2008년 허리우드 극장에서 먼저 ‘여기를 살려보지 않겠냐’는 요청이 와서 호기롭게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허리우드 극장은 어떻게 실버 세대를 위한 영화관으로 변신하게 됐을까. 김 대표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하는 걸 또 할 필요가 없었고, 굳이 젊은이들을 위한 극장으로 변모시킬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스카라 극장이나 화양극장은 시사회 전용관으로 탈바꿈시켜 호응을 얻었다. 허리우드 극장은 300석 밖에 되질 않아 시사회 극장으로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지리적 특성까지 고려해 실버 세대를 위한 극장을 개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은주 ㈜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 고성준 기자
허리우드 클래식에선 주로 국내외 고전 영화를 상영한다. 상영될 영화는 영화관을 찾는 어르신들에 의해 결정된다. 김 대표는 “한 달에 한 번 관람객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 응모를 한다. 또 미국 사이트에서 연도별로 순위권 영화를 뽑아 상영한다. 역시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사운드 오브 뮤직> <벤허> <십계> 등 고전 명작”이라고 귀띔했다.
극장 곳곳에 배치된 시설관리 요원도 실버 세대다. 한 시설 관리 담당자는 “일거리가 있어 좋다. 여기서 봉사하는 게 낙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관람객들 가운데 채용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 계셔야 관람객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이고 모두 극장 개관할 때부터 함께 했던 분들이다. 영사실 관계자는 10년 째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실버 영화관 시설 또한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영화관 입구부터 극장 내부엔 어르신들을 위한 손잡이가 설치 돼 있다. 자막도 멀티플렉스 영화관보다 크고 높이 배치 돼 있다. 김 대표는 “자막이 너무 작아 어르신들을 위해 자막을 키웠다. 또 퇴장할 때 갑자기 밝아지니 삐끗하는 어르신들이 많더라. 그래서 극장 내부에도 손잡이를 설치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입소문을 타더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세심하게 배려하다 보니) 어르신들에겐 ‘이게 내 극장이다’라는 사회적 소속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허리우드 클래식에선 극장 인근에서 ‘추억 더하기’도 운영하고 있다. 음식과 식음료 등을 판매하고 있다. 3000원 짜리 잔치국수와 2000원에 마실 수 있는 커피가 대표 메뉴다. 추억의 DJ도 있다. 카페 관계자는 “하루 손님이 100여 명 정도 찾는다. 대부분 극장에서 오는 손님”이라고 말했다.
허리우드 클래식을 찾은 한 어르신은 “양평이 집이다. 일부러 여기까지 왔다”면서 “종로3가는 노인들이 모이는 유일한 장소다. 그런데 요새 중국 관광객이 넘쳐나서 오갈 데가 없어졌다. 친구를 통해 영화관을 알게 돼 요샌 이곳에서 자주 모이고 영화도 관람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여긴 만남의 장소다.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씩은 극장에 꼭 들른다. 젊은이들 있는 곳에 가봐야 시끄럽기만 하고 환영받지 못한다. 영화는 한 달에 한 편 씩은 본다”고 했다.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는 “노인들의 에티켓이 아쉽다. 관람객들이 내 안방처럼 극장을 이용했으면 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추억 더하기’ 전경. 고성준 기자
김 아무개 할아버지는 “우연히 여기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보게 됐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생전에 다시 보게 되다니…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좋다. 여기 오는 맛에 산다. 친구들한테도 극장을 많이 홍보했다. 이런 극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허리우드 클래식을 방문한 2월 8일(목)엔 유독 할아버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주중엔 할아버지 관람객이 많이 오신다. 주말엔 할머니 관람객이 주를 이룬다. 할머니들께선 주중에 손주 보시고 집안 일 하시느라 주말에 나오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처럼 휴일이나 명절엔 관람객이 배로 증가한다. 김 대표는 “젊은이들이 가는 극장과 똑같다. 주말이나 연휴 땐 관람객이 훨씬 많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1시부터 3시까진 5층 공연장에선 특별 공연도 펼쳐진다.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김 대표는 “매주 공연이 매진될 정도”라면서 “송해 선생님, 전원주 선생님 등이 출연했다.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너무들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했던 ‘광화문 1번가’에서도 허리우드 클래식은 화제가 됐다. 전국 각지에서 어르신들이 ‘정부에서 허리우드 클래식을 운영하라’ ‘지원을 해달라’고 민원을 넣은 것. 김 대표는 “실제 문체부에서 민원이 접수가 됐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조만간 이뤄지길 소망한다”고 했다. 이어 “후원하시겠다며 땅 문서를 갖고 오시는 어르신도 계셨다. 매표소엔 사탕, 떡 등을 넣어주신다. 그 마음이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허리우드 클래식은 2009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아 정부로부터 매달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또 여러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SK케미칼에선 7년 동안 극장 임대료의 50%를, 유한킴벌리에선 광고 후원을 받았다. 서울시에선 ‘실버 영화관 필름료 지원 사업’에 지원해 보조금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또 2년 째 SK그룹에서 ‘사회성과 인센티브’를 받고 있다. 사회성과 인센티브는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이에 비례해 보상하는 제도다. 김 대표는 “사회성과 인센티브를 받게 돼 ‘1년 동안 멋진 일을 했구나’라는 자긍심이 생겼다. 이런 제도가 사회적 기업에게 큰 용기를 준다. 앞으로도 많이 생겨야 된다고 본다. 사회적 기업이 자기 가치에 대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나한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적자도 나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경쟁자가 없지 않나. 단관 극장을 실버 영화관으로 살렸다는 무한한 자긍심과 자신감이 있다. 관객만을 보고 갈 것이다. 어르신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푸는 게 내 소명이다. 하나씩 풀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 종로=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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