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 외관. 사진=광주극장 제공
광주 동구 충장로의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구도심에 위치한 ‘광주극장’. 일제강점기인 1935년 10월 1일 처음 간판을 올린 이래 83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현재는 국내 유일무이한 ‘단관극장(하나의 극장에서 하나의 스크린을 보유한 극장)’으로 알려졌다.
광주극장은 1935년 개관했을 때 최초 발성영화 ‘춘향전’을 상영했고, 무대를 활용해 판소리 공연, 문춘성 권투 시범경기(1948년) 등을 열었다. 또한 해방 이후 해방기념축하대공연이나 1946년 모스크바 3상 회의 지지대회,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의 연설 등 한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했다.
그러던 중 1968년 1월 광주극장은 화재로 건물이 다 타다시피 소실돼 위기를 맞았지만, 같은해 10월 다시 단장해 오픈하면서 극복했다. 현재 극장의 와관은 당시 재건축한 모습이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이사는 “1935년 개관 당시 건물 사진을 보면 현재 모습보다 좀 더 근대적 디자인에 가깝다. 그대로 유지됐으면 멋지고 화려한 유산이 됐을 것”이라면서도 “대신 화재로 다시 지으면서 튼튼하게 더 안정감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광주극장의 진짜 위기는 2000년대 초반 찾아왔다. 1998년 학교보건법상 정화구역 내 유해업소로 지정돼, 자진 이전하거나 2000년 12월말까지 폐쇄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러한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광주극장은 버텼고, 결국 이듬해 폐쇄명령 불이행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이에 광주극장은 광주지법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 2004년 헌재까지 가는 법적 분쟁을 겪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영화산업은 큰 변곡점을 맞고 있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멀티플렉스가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존 지역에 있던 단관극장들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 광주극장은 소송 등에 얽혀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화재가 나기 전 1940년대 광주극장 외관. 사진=광주극장 제공
현재 광주극장은 국내 유일무이한 ‘단관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김형수 이사는 “대구의 동성아트홀 등도 상영관이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동성아트홀은 100여석 규모의 소극장”이라며 “단관극장이라 하면 극장 단독건물을 가지고, 상영관 1000석 이상 규모인 경우를 말한다. 그런 조건을 갖춘 극장은 현재 광주극장 뿐인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극장은 과거 개관 당시에는 2층 1250명을 수용하는 좌석이었다가, 현재는 줄여 2층 856석 규모다. 참고로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아이맥스관’의 좌석수는 624석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상영관 규모가 무색하게 관객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관객수는 3만 7000여 명이라고 한다. 김 이사는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전환한 처음 5~7년 동안은 연 1만 명 수준이었다. 그러다 점점 늘어 3만 명을 유지하게 됐다. 지난해의 경우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 덕을 봐서 조금 더 늘었다”고 전했다.
관객수를 늘일 기회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동시에 고심도 깊어진다고 했다. ‘옥자’의 경우 한 번 상영에 200명까지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비긴 어게인’이나 ‘라라랜드’도 관객이 많았다. 하지만 두 영화는 입소문을 타면서 CGV 등 멀티플렉스에서도 상영관을 늘렸다. 이에 광주극장에선 두 영화를 금방 내렸다고 했다.
김 이사는 “직원들이나 영사기사들이 ‘옥자’나 ‘라라랜드’ 처럼 관객들이 많이 찾는 영화 상영시간을 늘리자는 의견도 냈다. 물론 하루 종일 ‘옥자’를 상영하면 관객수는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상영관을 잡지 못해 애를 먹는 독립영화들이 눈에 밟히더라. 우리가 전용관이라는 틀에 짓눌려 너무 경직되게 운영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광주극장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데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김 이사는 “1968년 화재가 나자 운영자들 중 일부에서 ‘이참에 극장 접자’는 말이 나왔다. 또한 2000년대 초반 멀티플렉스가 대세로 떠올랐을 때는 극장을 4개로 쪼개서 우리도 상영관을 늘리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사업을 하려는 부동산업자들이 찾아와 대지를 매각하라는 제안도 있었다”고 밝혔다.
광주극장 내부에 전시된 자료. 사진=민웅기 기자
극장 전체 수입의 35%를 차지하는 지원을 포기한 광주극장은 대신 관객들의 후원회를 모집했다. 김 이사는 “후원회 논의는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있어 왔다. 하지만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별도의 후원회비까지 받기가 미안해 진행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영진위의 지원 정책 변화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관객 후원회를 조직했다. 현재 400명 정도 회원이 있다. 극장 운영자 입장에서는 뒤에 지지자들이 있는 것 같아 든든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광주극장은 연 3만 명의 관객수와 후원회로는 적자 운영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김 이사는 “한때는 직원이 20명이 넘었는데, 현재는 직원과 파트타임까지 합쳐 8명이 일한다. 관객수가 1만 명으로 줄었을 때는 ‘괜히 예술영화전용관했구나’ 후회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에 극장 관객들의 관심을 모을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개관 79주년부터 매년 10월 진행하는 ‘광주극장 개관 영화제’였다. 고전부터 동시대 작품, 미개봉 작품 20여 편을 선정해 약 2~3주간 상영했다. 김 이사는 “80년 넘게 광주극장이 한 장소를 지키다보니 시민들도 광주극장의 존재를 잊고 산다. 광주극장의 역사와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영화제다. 영화 상영과 함께 간판실, 고전 자료 수장고 등 극장 투어도 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또 하나는 ‘영화간판학교’다. 광주극장은 붓으로 그린 영화간판을 아직도 거는 거의 유일한 극장이다. 1991년부터 광주극장에서 손간판을 제작하고 있는 박태규 화백의 간판실이 아직도 존재한다.
이에 광주극장은 간판학교를 기획, 관객들에게 에나멜페인트로 직접 간판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 이사는 “관객들도 다 처음으로 붓을 잡아본 거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박 화백의 지도 하에 워크샵도 몇 번 거쳤다. 다들 너무 열심히 했다. 1년에 2작품 정도는 관객들이 직접 참여한 손간판을 통해 전통 극장의 맥을 이어 가려 한다”고 전했다.
광주극장 외관에 걸린 손간판. 간판학교를 통해 관객들이 직접 그렸다. 사진=민웅기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예술영화 지원 사업에 대한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아직까지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이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영진위의 위원장을 비롯해 지도부가 새로 선임되는 등 전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으려 하고 있다”며 “아직 개선된 상황은 없지만, 기대감은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 이사는 “과거 존재했던 지역 고유의 단관극장들은 대기업 멀티플렉스로 인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전세계적으로도 이런 경우는 드물다”며 “그렇다고 이미 멀티플렉스가 장악한 상황에서 이제 와서 법을 통해 규제하기는 어렵다. 다만 각자의 개성을 담고 문화의 다양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극장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현상을 유지하는 노력을 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자체나 영진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광주=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한파 속 광주극장 영화 관람기 광주극장은 오전 11시쯤 첫 상영을 시작으로 오후 7시쯤 마지막 상영까지 5편의 각기 다른 영화를 선보이고 있었다. 기자가 광주극장을 찾은 지난 7일에는 ‘공동정범’ ‘탠저린’ ‘원더 휠’ 등을 상영했다. 이에 오후 7시 10분에 상영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원더 휠’을 보기로 결정했다. 단관극장이다 보니 매표소가 극장 입구에 있었다. 표를 끊고 안에 들어서니 따로 직원이 더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바로 옆에 간이매점이 차려져 있었는데, 매표소 직원이 매점일까지 같이 보고 있었다. 상영관 1층 입구문에는 ‘12월부터 3월까지 동절기에는 1층 상영관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는 “관객수는 적은데 상영관 공간은 워낙 크다보니, 난방을 열심히 해도 춥다. 그나마 열이 위로 올라가 겨울에는 2층 좌석만 이용하길 관객들에 부탁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위를 막기 위해 광주극장이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담요. 사진=민웅기 기자 2층으로 올라가려하자 직원이 “담요 챙겨가세요”라고 당부했다. 1층 대기실 한켠에 무릎담요가 차곡차곡 놓여있었다. 관객들은 계단에 올라가기 전 담요를 하나씩 들고 갔다. 광주극장 측에 따르면 평소 한 상영의 관객 수는 10명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평일 퇴근시간 이후라서 그런지, 세계적 거장인 우디 앨런의 신작 영화여서 그런지 관객이 12명 정도 있었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7시 10분 정시가 되자, 상영관 불이 꺼지고 바로 영화가 시작됐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예정 상영시간 후에도 10분 동안 봐야하는 상업광고 따위는 없었다. 이날은 한파가 다소 누그러진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한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상영관 내 온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부가 워낙 커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파카를 입고 목도리까지 둘렀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담요는 어느새 목 밑까지 끌어 올라와 있었다. 영화 중반부에 스토리가 늘어지면서 졸린 부분이 있었지만, 추위에 잠깐 졸수도 없었다. 2층 좌석에서 바라보는 상영관 스크린. 사진=민웅기 기자 광주극장의 스크린 크기는 가로 17m, 세로 8m다. 멀티플렉스 평범한 상영관보다는 훨씬 큰 편이다. 하지만 2층 좌석에 앉아 스크린과의 거리가 멀어서, 큰 스크린의 웅장한 맛은 그다지 살지 않았다. 앞서 김 이사는 “올해 한파가 워낙 심해서, 1월 관객이 최근 4~5년 사이 최저점을 찍고 있다”며 걱정을 했다. 그럼에도 광주극장은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거나, 독특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찾아가기 좋은 극장이었다. 기자 역시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한 번 광주극장을 찾아, 1층에서 옛 단관극장 큰 스크린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계획이다. [웅] |
[언더커버] 옛날극장 고군분투기3-실버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허리우드 클래식’ 이어짐
언더커버-언더커버는 <일요신문i>만의 탐사보도 브랜드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커버스토리를 넘어 그 안에 감춰진 안보이는 모든 것을 낱낱히, 그리고 시원하게 파헤치겠습니다. <일요신문i>의 탐사보도 ‘언더커버’는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