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선 기자 =인천 중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극장인 애관극장
“인천외리에 ‘애관’이라는 활동사진 상설관에 변사로 있는 ‘강성렬’이라는 서방은 돈 500~600백 원을 횡령해 ‘송죽’이란 아씨와 뺑소니를 했다...”
이는 지난 2월 6일 만난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도시역사관 관장이 기자에 제공한 1926년 4월 30일자 <동아일보>의 한 기사다. 내용인 즉 애관이라고 하는 극장에서 강성렬이란 변사가 근처 권번의 한 기생과 눈이 맞아 극장 돈을 훔쳐 도망갔다는 것이다. 애관과 얽힌 흥미로운 스캔들 기사였다.
약 100년 전 기사에 등장하는 이 극장. 놀랍게도 지금도 영업 중이다. 그것도 예술극장이나 실버극장 등 공익극장도 아닌 염연히 개봉관으로서 현역이다. 바로 인천의 구 도심지 중구 경동 싸리재 골목에 자리한 애관극장이 그 곳이다.
배성수 관장에 따르면 애관극장은 1985년 정치국이란 조선인에 의해 ‘협률사’란 이름의 실내극장으로 개관한 것을 시초로 한다. 다만 명확한 사료가 없어 정확한 시기는 어림잡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구전에 따르면 애관극장은 1926년 김윤복이란 친일파 사업가가 인수한 뒤 최고의 변사들을 캐스팅해 전성기를 맞았고, 그 이후엔 일본계 경영단체로 넘어가 관리를 받기도 했다.
배 관장은 “신문기사 상 애관극장이 등장한 것은 1920년대부터다. 이때부터 선전영화 등 활동사진을 틀었다고 기록돼 있다”라며 “원래 인천은 도시 규모에 비해 예부터 영화관 밀집도가 높았다. 그 도시 역사에서도 애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애관은 명실상부 1류 극장이었으며 중심지에 위치한 최고 극장이었다. 그 만큼 인천사람들 사이에서도 애관은 각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인천은 해방 이후 한때 30개가 넘는 극장이 성업하며 서울을 제외하곤 가장 극장 밀집도가 높았다. 애관을 비롯해, 미림, 중앙, 인영, 현대, 키네마 등 기라성 같은 극장들이 관객을 맞이 했었다. 지금 살아남은 것은 애관과 이제는 실버극장으로 활용되는 미림 두 곳 뿐이다.
1924.03.20 <매일신보>에 실린 애관극장 관련 기사. 사진=배성수 관장 제공
기자가 애관극장을 찾았을 때 지금은 보기 드문 실외 매표소에서 여전히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엔 비록 작은 규모지만 여느 극장처럼 팝콘과 나쵸, 츄러스 등을 파는 카페테리아가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상영관 1관 내부는 역시 지금은 보기 어려운 복층 구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이 애관극장의 ‘매각설’이 나돌았다.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 결국 극장주가 극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 부터였다.
이 소문이 난 뒤 시민들이 움직였다. 올 초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을 비롯해 자발적으로 애관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수백 명의 온라인 서명운동이 전개 됐다. 급기야 이렇게 모인 시민 및 지역 인사 100여 명은 ‘애관극장을사랑하는시민모임(애사모)’를 조직했고 1월 14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성명서를 냈다.
임준선 기자=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애관극장의 실외 매표소
이희환 연구위원은 “애관극장은 인천의 근대역사의 상징성과 더불어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라며 “극장 철거는 안 된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알렸는데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호응을 해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들 모두 SNS를 통해 과거 애관과 얽힌 추억들을 공유하고 관심을 가져 주셨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이 지역 토박이라 소개한 장회숙 선생은 “이 지역에 90세 되신 한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 분은 어려서부터 애관을 다니셨다고 한다. 예전엔 북을 메고 영화를 홍보한 분들도 계셨다”라며 “애관이 없는 ‘싸리재’는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주민들도 애관극장 영화보기 모임 등을 계획 중이다. 얼마 전에도 주민들과 영화 ‘1987’을 함께 보며 과거 애관과 얽힌 각자 에피소드를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애관극장의 매각설이 나돌고, 급기야 인천시는 한 언론을 통해 ‘매입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다행히 극장주는 이 같은 매각설과 인천시의 ‘매입의사’에 대해 “당분간 애관극장을 매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한 시름 놓은 상황이다.
임준선 기자=‘애사모’를 이끌고 있는 이희환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희환 연구위원은 “아직 애사모 안에서도 애관에 대해 ‘시에서 매입해 공공극장으로 역할을 해야한다’ ‘극장주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영화보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등 의견이 나뉜다”라며 “다만 확실한 것은 애관이 민간 건설사에 매각돼 철거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성수 관장은 “동인천 지역(인천은 근대 개항지였다) 곳곳엔 애관 이외에도 근대 유산들이 자리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선 관광을 위한다고 오래된 건축물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드는 등 난개발 논리에 따르고 있다”라며 “민간에선 오히려 스토리텔링을 입혀서 이 같은 자산을 활용하고자 하는데 실제 지자체 움직임은 전혀 다른 셈이다. 애관 역시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 애관이 이 지역에서 갖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의식을 넣어줘야 한다”며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역의 오래된 한 영화관을 지켜야 한다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 만큼 애관극장이 지닌 가치와 의식은 크다는 얘기기도 하다.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나올 때 즈음 지역 여고생 세 명이 상영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인천 싸리재에 고즈넉이 자리한 애관극장에 희망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인천=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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