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의 텍사스 행에는 추신수의 역할이 컸다. 텍사스 레인저스 존 대니얼스 단장이 추신수에게 오승환 영입 관련 도움을 요청하자 추신수가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오승환도 추신수를 통해 텍사스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구단과 에이전트의 만남이 성사됐고,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주고받기에 이르렀다. 오승환은 2월 7일(한국시간) 오후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을 방문한 후 계약서에 사인했고, 8일에는 구단이 지정해준 병원에서 메디컬 체크를 받고 8일 밤 애리조나로 돌아왔다.
일요신문에서는 9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추신수를 만나 오승환과 추신수의 인연, 오승환과 함께 텍사스에서 뛰게 되는 추신수의 소감, 그리고 올 시즌 우승을 목표로 하는 추신수의 각오를 들었다. 그 내용을 정리한다.
지난 해 텍사스 레인저스 1번 타자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무리 투수로 만났던 추신수와 오승환.
“진짜 대단했어요. (백)차승이 형이 부산고 3학년일 때 전 1학년이었고 투수가 아닌 타자를 맡고 있었거든요. 그때 (오)승환이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한서고에 150km를 던지는 투수가 있는데 엄청난 위력을 자랑한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궁금했죠. 어떤 선수인지 직접 보고 싶기도 했고요. 2학년 때부터는 승환이 얘기가 들리지 않더라고요. 부상으로 야구 그만둘 줄 알았어요. 승환이를 다시 만난 건 고3 올라가서 대통령배 결승전에 경기고와 맞붙게 되면서부터였어요. 승환이가 2학년 때 경기고로 전학을 갔더라고요. 대통령배 결승전에서는 타자였던 제가 투수로, 투수였던 승환이가 타자로 만났습니다.”
투수 추신수는 2000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4전 전승을 달리며 평균자책점 1.74의 빼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승환은 팔꿈치 부상 여파로 추신수와의 맞대결에서 무안타를 기록했다.
“당시 승환이가 1번 타자로 나왔는데 제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체구가 작아서 놀랐어요. 워낙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린 터라 키가 꽤 클 줄 알았거든요. 좀 아쉬웠습니다. 승환이의 공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타자로 나오는 바람에 보질 못했으니까요.”
이후 추신수는 2000년 8월, 135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고, 오승환은 단국대 진학 후 수술과 재활을 통해 투수로 새로운 변신을 꾀하며 2005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게 된다. 추신수가 오승환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삼성 라이온즈 입단 후 화제를 모았던 ‘돌부처’ 오승환의 이미지였다.
“대학에서 다시 투수로 보직을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삼성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에 유튜브를 통해 승환이 영상을 찾아봤더니 정말 잘 던지더라고요. 이제 팔이 괜찮아졌나보다 했었죠. ‘돌부처’란 별명이 절로 생각날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타자를 상대하는 승환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운드에서 표정 관리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승환이는 잘하더라고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추신수와 오승환은 대표팀 선수로 해후했지만 별다른 친분이 없는 데다 투수와 야수 파트이다 보니 가깝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2016년 6월 18일, 추신수와 오승환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1번 타자로,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무리 투수의 신분이었다.
“사람 인연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들이었어요. 고교 시절 상대팀 선수로 만난 두 사람이 돌고 돌아 메이저리그에서 해후한 거잖아요.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승환이가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는 경기를 통해 만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현실로 이뤄지니까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했습니다. 6월 19일, 드디어(?) 오승환과 추신수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8회 세인트루이스가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2아웃 이후 추신수가 세 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오승환은 초구 느린 커브와 2구째 빠른 볼로 단숨에 2스트라이크를 만들었다. 3구째 공도 94마일의 빠른 볼이었는데 추신수는 이걸 놓치지 않고 중전 안타로 연결시켰다. 이 안타는 오승환을 급격히 흔들어놨고 2루타와 폭투가 이어지면서 추신수는 득점에 성공했다.
“승환이를 처음 상대하는 거라 경기 전 비디오를 보면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초구 빠른 볼을 노렸지만 예상과 달리 커브가 들어오더라고요. 아마 몰리나(세인트루이스 포수)가 변화구를 유도했던 것 같아요. 승환이의 빠른 볼이 굉장히 위력적이었습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비슷한 공이 들어오면 맞히자고 생각했는데 중전안타가 나오더라고요. 승환이는 투구폼이 좀 독특한 편이잖아요. 그래서 미리 타이밍을 잡고 가려 했었고, 그의 주무기를 파악했기 때문에 안타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2018년 1월 30일,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 존 대니얼스 단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랫동안 승환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승환이의 보직을 불펜이 아닌 마무리로 못 박으면서 오승환의 입장을 궁금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승환이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고요. 며칠 전 승환이의 텍사스 입단 소식이 알려지기 직전에 승환이로부터 전화를 받고 계약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구단 내 웨이트 트레이닝실에서 운동하다 전화를 받고 함께 운동 중이었던 로빈슨 치리노스(주전 포수), 엘비스 앤드루스, 루그네드 오도어 등한테도 그 소식을 전했었죠. 다들 반가워하더라고요. 2년 전 세인트루이스 소속의 오승환을 상대해봤던 선수들이라 승환이가 어떤 투수인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선수들이 승환이의 계약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절로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있는 텍사스 주의 포트워스, 알링턴, 달라스, 케롤톤 지역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특히 케롤톤에는 대형 한인 마트와 한국 음식점들과 한인 미용실, 각종 편의 시설들이 즐비하다. 오승환이 지난 2년간 몸담았던 세인트루이스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한인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 추신수는 오승환에게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게 될 경우 경험하게 될 생활의 편리성, 다양성, 친숙함 등을 주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친구와 함께 뛰기 위해 텍사스 레인저스의 ‘홍보맨’을 자처한 셈이다.
추신수는 미국에서 야구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한국 선수와 한 팀에서 뛰게 된다. 이런 사실이 추신수를 들뜨게 만드는 것도 사실. 인터뷰 말미에 “친구와 한 팀에서 만나 기분 좋으냐?”고 묻자, 추신수는 바로 “당연하죠. 정말 좋아요. 설레기도 하고요”라고 답한다. 무엇보다 오승환의 자신감이 추신수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2018 시즌 메이저리그는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뛸 오승환과 추신수로 인해 한층 재미와 기대를 더할 것만 같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오승환의 텍사스행 우려와 기대 ‘계약 내용 아쉽지만 마무리 보장 매력적’ 오승환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맺은 계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오승환의 선택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과연 오승환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까. 오승환의 텍사스행을 두고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KBSN스포츠의 대니얼 김의 의견을 들어봤다. 먼저 대니얼 김은 오승환이 추신수와 한 팀에서 뛰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했다. 야구도 그렇지만 야구 외적으로도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고. “오승환이 지난 시즌에는 2016시즌보다 성적면에서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구위가 떨어지거나 체력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2년차 선수들한테 흔히 나타나는 징크스였다는 생각도 든다. 2년차의 쓴맛을 제대로 본 선수이기 때문에 올 시즌 절치부심하며 시즌을 준비했을 것이고 자신감도 더해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텍사스와의 계약 기간이다.” 대니얼 김은 텍사스 레인저스가 오승환에게 1+1년을 제안한 것에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승환이 왜 1+1년 계약에 동의했는지 궁금하다. 내부 사정이 있겠지만 세인트루이스와 맺었던 계약 기간을 그대로 이어갔다. 차라리 1년만 계약하고 이후 FA를 다시 노렸다면 어떠했을까 싶다. 구단한테 유리한 조건이란 점이 아쉽기만 하다.” 송재우 위원도 오승환이 첫 해 275만 달러의 보장 금액을 받게 된 것과 관련해선 예상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시즌 성적을 놓고 오승환의 몸값의 많고 적음을 얘기하는 건 성급한 일이란 생각도 덧붙였다. “오승환이 텍사스와 2년이 아닌 1+1년 계약을 맺은 건 나이 때문일 것이다. 내년이면 37세가 되는 선수에게 구단이 선뜻 2년 계약을 안겨주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텍사스가 오승환에게 마무리 투수를 보장했다면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계약 기간의 아쉬움을 마무리 보장으로 던 게 아니었나 싶다.” 송재우 위원은 계약 기간이나 금액보다 앞으로 오승환이 상대하게 될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팀들의 높은 수준의 전력을 언급했다. “텍사스 홈구장은 타자친화적인 야구장으로 유명하다. 투수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오승환이 상대할 팀들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 오타니 쇼헤이가 포함된 LA 에인절스, 해마다 텍사스와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벌이는 시애틀 매리너스 등이다. 매서운 타력을 자랑하는 팀들이 같은 지구에 속해 있는 터라 세인트루이스 시절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해야만 한다. 지난 시즌 오승환은 슬라이더 구위가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6시즌에는 오승환의 슬라이더에 상대 타자들이 43% 헛스윙했다면 지난 시즌에는 헛스윙 비율이 20% 이하로 뚝 떨어졌다. 슬라이더의 제구가 불안해지면서 더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홈런이 많이 나오는 텍사스 홈구장에서 장타를 줄이기 위해선 빠른 볼과 슬라이더의 완벽한 제구가 우선시돼야 한다. 지난 시즌처럼 흔들린다면 텍사스에서의 마무리 자리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팀 리더 격인 선수가 친구 추신수 아닌가. 새로운 팀이지만 친구의 존재가 오승환에게 큰 위안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송 위원은 한 가지 걱정을 덧붙였다. 불펜 운영 관련해서 좋지 않은 점수를 받고 있는 제프 배니스터 감독 때문이다. 감독 경력이 짧은 지도자들의 공통점이 불펜 운영에 어려움을 보인다는 것. 송 위원은 “오승환이 감독과 어떤 궁합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세인트루이스 매서니 감독과는 또 다른 느낌의 배니스터 감독이 오승환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프링캠프 동안 오승환은 실력으로 보여주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올 시즌 오승환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