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문 대통령 평양 초청 의사’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따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합성.
#문재인-김정은, 언제 만날까
이제 막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 의사를 밝힌 단계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을 내놓긴 아직 섣부른 시점이지만, 벌써부터 그 성사 가능성과 특히 ‘시기’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체적인 시기를 예측하기엔 현실적으로 미국의 강경노선 등 암초가 너무나 많은 상황이다. 다만 ‘이벤트’의 시기에 유난히 집착하는 북한 당국의 특성상 기존 남북관계와 관련된 특정 기념일을 즈음하여 열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북한은 ‘꺾인 해’를 중시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날짜를 특정 이벤트 거행일로 계획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CNN>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및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는 6월 15일 안팎을 예상했다. 올해 18주년을 맞이하는 6·15공동남북공동선언은 과거 남북 정상이 직접 내놓은 결과물이란 점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란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6·15기념행사를 남북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남한 내 움직임과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북측의 미온적 반응에 따라 무산된 바 있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6·15기념행사가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장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8·15 광복절 역시 예상 시기로 거론된다. 남북이 역사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념일로 가장 적절하다는 평가다.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차 남북정상회담일도 후보로 거론된다.
반면 이 같은 특정 시기와 무관하게 몇 가지 장애물만 해결된다면, 예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성사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남북 모두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 일정과 의제 설정 등을 조율하는 사전 단계에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의 대북라인 상당 부분이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회담을 경험했거나, 관여한 인물들이 포진된 상태다. 경험과 노하우 면에서 이 같은 사전 단계 진행은 시간적·물리적으로 상당 부분 단축될 여지도 많다.
#정상회담 테이블에 뭐가 오를까
만약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여기에 오를 의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보수 정권 집권기 동안 사실상 남북관계는 차례로 중단의 과정을 거쳤고, 박근혜 정부 시절 말기는 단절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3차 남북정상회담에는 남북 현안 대부분이 의제로 오를 수 있다. 여기에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백두산관광 등 남북 경협 문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3통(통행, 통신, 통관)의 핵심 과제인 5·24조치 해제 여부, NLL 지역의 공존 문제 등 군사적 부분까지 포함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북방경제협력’ 의제가 정면에 나선만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철도 및 가스관과 관련된 사안도 의제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비핵화 문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등 예민한 문제가 테이블에 정식 의제로 오를 지는 좀 더 지켜볼 부분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워낙 강경하기에 예민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현재 북한의 최대 고충인 석유 등 에너지 자원 지원 가능성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표면 위에서 논의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정은의 노림수
일단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한 쪽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먼저 손을 내민 데에는 북한 내부에서도 여러 계산이 있었겠지만,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 속에서 고립 탈피의 목적이 대단히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동안 외교가에서 김씨 가문 인사가 특사 등 공식무대에 행위자로 나선 케이스가 거의 없었던 만큼 이번 김여정의 방남은 북한 입장에서도 일종의 승부수일 수 있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이끄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더불어, 시진핑 정부 역시 이 같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여러 리스크를 감안하고 이번 평창 외교에 승부수를 띄운 까닭이다.
#너무나 많은 암초
실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까지는 여러 암초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시대의 한반도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김정은의 초청 의사에 ‘여건 조성’을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복잡한 국제적 상황이 문제다. 펜스 미 부통령은 평창 방문 후 개막식서 북한 대표단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으며 리셉션을 앞두고 불참을 통보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선 북-미 접촉을 중재한 문재인 정부에 불쾌함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미-일 동맹으로 보조를 맞춰온 아베 일본 총리는 10일 문 대통령에게 ‘한-미 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과 이를 위시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 분위기도 암초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 역시 국제사회는 결코 북한에 호의적이진 않았으나 이후 핵무장 행보를 강행한 지금의 북한은 사실상 국제사회의 최대 ‘불량국가’로 낙인찍혀 있는 상황이다.
앞서 문 대통령이 제시한 ‘여건’ 역시 북한의 비핵화, 최소한 이를 위한 단계적 노력을 북한이 보여주길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내 여론 역시 좋지 않다. 지난 1월 남북하키 단일팀 성사를 기점으로 여러 지표에서 나타나듯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간 고공행진을 무색하게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여정과 면담을 진행하던 10일 서울 곳곳에선 보수진영의 태극기 시위가 전개되는 한편, 중도 진영에서 조차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국내외에 산적한 암초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 빅 이벤트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