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성보기 부장판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화와 고려 법인에 각각 벌금 1억 원과 5000만 원을 지난해 12월 14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양수 전 한화그룹 화약부문 대표와 최경훈 고려노벨화학 대표는 벌금 3000만 원, 심경섭 전 한화 화약부문 대표는 벌금 2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한화와 고려노벨화약의 산업용 화약 담합이 13년간 이어져왔으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한화 빌딩. 고성준 기자
검찰이 최양수·최경훈 대표에게 각각 징역 1년을 구형하자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할 것이라고 점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법원은 관례적으로 검찰의 징역 1년 구형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정도를 선고하는 데 비해 낮은 수준인 벌금형에 그치는 선고를 했다. 법조계에서는 판결을 두고 독과점 체제 두 기업의 사업을 고려해 봐주기식 선고를 내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45조 및 5조에 의하면 회사 임원이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 사업허가 취소사유가 된다. 판결이 벌금형에 그치며 한화와 고려는 사업취소를 가까스로 면할 수 있게 됐다.
산업용 화약 담합은 퇴직자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내부 고발을 한 것이 단초가 됐다. 이 때문에 영업 담당 임원 간의 합의 내용이나 비밀유지 방법 등 구체적인 담합 과정이 드러나 655억 원의 강도 높은 과징금이 부과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임원 간 담합을 적발하고도 두 회사 법인만 2015년 4월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공정위보다 사안을 더욱 엄중하게 다뤘다.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 도입 이후 두 번째로 고발요청권이 행사된 사건일 정도다. 수사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이준식 부장검사)는 두 회사 임원이 치밀하게 담합을 기획실행한 사실을 파악했고, 이에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은 심 전 대표 등 임원들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공정위가 두 회사 법인만 고발한 데 대해 임원들까지 고발하라고 요청한 것.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이 있으면 공정거래위원장은 반드시 해당 사건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한화와 고려는 공정위와 공정거래법에 강점을 보이는 변호인단을 꾸리며 검찰에 맞섰다. 한화는 법무법인 광장의 안용석·박정원·주현영 변호사를 변호인단으로, 고려는 율촌의 박성범·이충민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삼았다. 특히 한화 변호인단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안용석 광장 대표변호사는 공정위 외부 자문위원을 하며 공정위와 인연을 맺었다. 삼성전자 심결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유명한 박정원 변호사는 1994~2006년 공정위에 몸담으며 심결지원 2팀장을 지냈고, 주현영 변호사 역시 2006년부터 4년 동안 공정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고려 대리인을 맡은 율촌의 박성범 변호사는 공정위 경쟁정책자문회의 카르텔조사국 자문위원과, 1999년 공정경쟁연합회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 위원을 지냈다.
한화는 우리나라 산업용 화약시장의 선두주자로 7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나머지 30%는 고려가 차지하고 있다. 산업용 화약은 터널이나 도로 공사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필수 자재다. 이 때문에 산업용 화약사업의 가격 담합은 결국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전가돼 죄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총장이 고발요청권까지 발동한 사안인데 검찰 구형의 절반 정도를 깎는 관례적 판시 범위를 벗어난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며 “기간산업 특성상 시장지배적 두 기업을 퇴출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벌금형에 그쳤다는 뒷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화와 고려는 13년 동안 가격 경쟁을 회피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인상과 시장점유율을 합의했다. 1952년부터 한화가 독점해오던 화약 시장은 1993년 고려가 진출하며 복점체제를 유지해왔다. 두 기업은 1999년 처음 제품의 공장도가격 인상 문제를 합의하고 이후 13년 동안 1999년 15%, 2001년 8%, 2002년 7.5%, 2008년 9%씩 공장도가격을 인상했다. 특히 2001년 19% 가격인상을 담합했으나 건설업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2001년과 2002년 나누어 인상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나아가 신규 사업자의 시장진입도 체계적으로 막았다. 2002년 산업용 화약시장에 세홍화약이 신규진입하자 한화와 고려는 영업활동을 방해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두 기업은 세홍화약이 공급하는 현장에 저가공세를 통해 물량을 빼앗았다. 또 세홍화약의 제품을 쓰는 수요처에는 현장에서 필요한 여타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압박해 세홍화약 제품 사용을 포기하도록 했다. 결국 세홍화약은 2007년 시장에서 퇴출돼 고려에 인수되는데 당시 인수비용을 한화와 고려가 나눠 부담했다.
재판부는 담합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두 회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의 피해가 국내 모든 화약 수요업체에 미치는 점, 피해기간이 길고 부당 공동행위로 인한 매출액이 큰 점에서 무거운 책임을 부담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두 회사로 인해 거래 상대방인 건설업체는 인위적으로 높게 책정된 가격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피해를 입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에 따른 매출액을 1조 4563억 원으로 산정해 두 회사에 총 655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에 항소한 한화는 2심에서 패소하고, 법무법인 화우로 변호인단을 바꿔 공정위 과징금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