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2가에 위치한 YBM어학원 종로센터. 최준필 기자
2018년 1월 28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의 청원자 A 씨는 “갑질 규정으로 취업준비생을 두 번 울리는 토익 주관사 Y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해달라”며 “토익은 전회차 시험의 성적 발표일 이전에 다음 회차 시험 접수를 마감한다. 취업준비생들은 성적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로 다음 회차 시험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접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YBM의 ‘갑질’을 고발한 청원글의 추천수는 최근 약 3만 건을 돌파했다. 순식간에 ‘토익 갑질을 향한 여론이 들끓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YBM을 상대로 예비조사를 실시했다. 한국토익위원회는 “성적 처리기간을 단축한다. 현재 시험일로부터 16일째 발표하고 있는 시험성적을 단축해 차기 시험의 접수 마감 전에 발표할 예정이다”고 개선방안을 서둘러 내놓았다.
그러자 공정위는 최근 YBM에 대한 예비조사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예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YBM 측이 자체적으로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제 더 이상 조사는 진행하지 않는다. 추가 조사 여부는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다”라고 답변했다. YBM의 개선안 발표로 공정위가 ‘역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YBM을 향한 수험생들의 불만은 여전히 상당하다. 대기업 입사를 위해 매달 5번의 토익 시험을 치른 B 씨는 “YBM이 정답을 공개하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한 적이 많았다. 시험을 보고 나면 성적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답을 모르니까 채점을 할 수 없다”며 “토익 강사들이 올린 정답 복원본은 정확하지 않다. 특정 문제에 대해 정답 시비가 항상 일어난다”고 밝혔다. YBM 측이 정답을 ‘비공개’하기 때문에 수험생의 불안감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토익 수험생들은 정답을 모른 채 성적발표일까지 무려 ‘16일’을 기다려야 한다. 매달 정기 토익이나 추가 토익 시험이 끝나면, 수험생들은 ‘문제와 정답의 복원본’을 얻기 위해 각 학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는다. H 학원 온라인 게시판에는 “Ture 동의어 찾는 문제 복원 좀 해달라” “111번 복원 부탁한다” 등 정답 복원 문의가 쇄도한다. YBM 측이 문제와 정답에 대해 ‘비공개’ 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험생들은 토익학원 강사나 회원 일부가 올린 ‘정답 복원본’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낀다. 복원본에 오류가 있거나 정답 시비가 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수험생 C 씨는 “한국토익위원회가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토익은 여전히 최악의 시험이다”며 “시험을 보고나면 정확한 정답이 없어 애를 먹은 경우가 많다. 정답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불안감을 이용해서 최대한 돈을 벌어먹으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있는 토익 문제집. 최준필 기자
이에 대해 한국토익위원회는 “토익 시험의 문제와 정답은 ETS의 창작물(지적 재산)로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다”며 “토익을 시행하는 150개 국가 모두에서 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 TEPS, G-TELP등 국내 다른 시험들 또한 문제와 정답을 공개 안한다”고 반박했다.
미국 민간 재단인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는 문제 출제를 전담하고 국내에서는 YBM이 대행을 맡아왔다. YBM 산하 한국토익위원회는 토익시험 전반을 운영하는 곳이다. 한국토익위원회는 시험 시행 후 정답과 오답의 구분없이 수험자의 답안을 그대로 스캔한 데이터를 ETS로 전송한다. 이를 토대로 ETS에서는 정답 개수 산출과 통계 작업을 거쳐 성적환산표를 만든다. 최종 성적은 성적환산표에 의해 처리되어 응시자에게 통보된다.
하지만 YBM과 ETS 그리고 한국토익위원회는 ‘배점기준’에 대해 철저히 비공개 방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수험생들이 불편을 겪는 또 다른 원인이다. 토익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배점을 둘러싸고 온갖 ‘썰’들이 난무하고 있다. 2월 11일 추가 토익시험이 끝난 직후, H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파트 5보다 파트 7 배점이 훨씬 높다던데 파트별로 배점이나 가산점이 다를 수 있나”라고 묻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다른 회원도 “같은 개수를 틀렸는데도 점수 차이가 꽤 나는 경우도 있다. 쉬운 문제를 틀리면 10점 넘게 점수가 깎인다”라고 주장했다.
토익 시험은 듣기(LC)와 독해(RC) 각각 100문제로 구성된다. LC는 사진묘사(Part 1), 응답률(Part 2), 회화문(Part 3), 설명문(Part 4)으로, RC는 문법·어휘(Part 5), 틀린 문장(Part 6), 독해(Part 7)로 구성돼 있다. 문항 당 5점씩 계산해 990점 만점이다. 하지만 배점과 채점이 ‘상대평가’로 이뤄진다는 점만 확실할 뿐, 파트별 배점이나 문항별 배점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대박달’ 또는 ‘쪽박달’이라는 정체 모를 용어가 돌고 있다. 대박달은 수험생이 실력에 비해 점수를 후하게 받는 달이고 쪽박달은 점수를 짜게 받는 달이다. 토익 수험생 대다수는 같은 실력으로 시험을 봐도 점수가 오르내릴 수 있는 시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공무원 준비생들이 몰리는 12월은 대박달, 취업 시즌을 위해 상위권 응시자가 몰리는 2월과 8월은 쪽박달로 여겨진다. 그만큼 수험생들이 토익시험에 대한 ‘난이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토익위원회는 “토익은 150개 국가에서 시행되는 시험이다. 시행처는 국가별로 다르지만 문제 개발과 채점은 ETS에서 일괄적으로 한다”며 “배점 기준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파트별, 문제별 배점이 어떻게 되는지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험생들은 ‘불친절한’ 성적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위해 토익을 준비해온 D 씨는 “성적표를 봐도, 몇 개를 틀렸고 몇 점이 깎였는지는 세부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부족한 점을 알 수 없어 시험 대비를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토익위원회에서 발급하는 성적표는 종합점수, LC·RC 각각의 점수와 Percentile Rank(백분위), Proficiency Description(취득한 점수에 따른 강점과 약점 진단 정보), Abilities Measured(각 부문별 능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성적표를 참고해도 파트별 배점이나 문항별 배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의 B 씨도 “토플(TOEFL) 성적표를 보면 영어 발음에 대해 약한 부분이 나와 있다. 토익은 점수만 알려준다”며 “전체 수험생 중에 내가 어디쯤 위치한다는 정도의 정보만 주기 때문에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토익위원회는 “TOEIC 시험의 출제, 문제공개, 채점 등은 ETS의 글로벌 정책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에 개선안을 내놓은 것처럼, 수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지속적인 검토를 통해 제도를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그럼에도 일부 수험생들은 토익 시험이 수년간 이어온 일방적인 시험운영 방식에 미뤄 효율적인 개선안이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을 드러내는 눈치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