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묘한 인연과 우정
이종욱이 NC와 2013년 계약을 맺을 때는 4년간 총액 50억 원(계약금 28억, 연봉 5억, 옵션 2억)이었다. 손시헌은 4년간 총액 30억 원(계약금 12억, 연봉 4억, 옵션 2억)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4년 뒤인 2017년, 상황이 뒤바뀐다. 이번에는 손시헌이 2년 총액 15억 원(계약금 5억, 연봉 5억)으로, 이종욱은 1년 총액 5억 원(계약금 3억, 연봉 2억)에 각각 도장을 찍었다. 손시헌은 FA를 앞두고 자신보다 이종욱의 계약에 더 신경을 썼다. 지난 시즌 주전보다는 백업 멤버로 활약했던 터라 손시헌으로선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두산 시절, (이)종욱이랑 이런 얘길 했었다. 우리가 FA 계약을 했을 때 둘의 계약 기간에 차이가 났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이 2년하고 다른 사람이 3년 하면 2년 계약한 사람이 3년 한 사람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겠느냐면서 말이다. 두산에서 NC로 팀을 옮겼을 때는 종욱이가 나보다 더 앞서 가고 있었기에 저도 더 힘을 내서 달렸다. 올 시즌에는 종욱이가 더 앞서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종욱이랑은 서로 밀고 당겨주면서 같은 시기에 은퇴하고 싶다. 그게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이종욱도 손시헌과의 아름다운 은퇴를 꿈꿨다.
“운명의 장난 같지만 우린 서로 비슷하게 잘했던 적이 없었다. 한 사람이 힘들어할 때 다른 한 사람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서로 자극을 주고받았다. 한때는 골든블러브를 같이 수상하자는 꿈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약속은 이루지 못했다. 서로 똑같은 시기에 은퇴하기를 바라지만 현재 시헌이보다는 내가 더 준비 많이 해서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시헌이는 팀과 2년 계약을, 난 1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종욱은 손시헌이 군에 입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난 현대에 입단하자마자 상무에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두산에서 시헌이를 군에 보낸 후 혼자 지낸 시간들이 정말 힘들었다. 시헌이가 없는 동안 참으로 시간이 더디 흘렀다. 그 또한 운명의 장난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 베테랑으로 산다는 건
NC 다이노스에서의 손시헌은 주전 유격수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2015 시즌에는 35세의 나이에 140경기에 출전하며 건강함을 증명했고, 2016 시즌에는 생애 첫 3할 타율도 달성했다. 2017 시즌에는 124경기 출전해서 타율 0.350 안타 122개 등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지난 4년이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크고 작은 위기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가장 최근에 겪은 위기가 2017 시즌을 맞이하기 전이었다. 세대교체를 천명했던 김경문 감독이 이호준, 이종욱, 손시헌 등이 포함된 베테랑 선수들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 몸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몸이 건강해야지 감독님에게 ‘그게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스프링캠프 명단에선 제외됐던 게 오히려 몸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감독님이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만 젊은 선수들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그 기회는 베테랑들한테 오기 마련이다. 미리 좌절할 필요도,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에 겨울 내내 쉬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었다.”
손시헌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김경문 감독은 2차 스프링캠프 때 손시헌을 캠프에 합류시켰다. 당시 손시헌은 팔 통증도 없었고, 컨디션도 최상으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올 시즌 FA 재계약을 맺을 때도 그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구단과의 협상에 임했다.
“나이 먹은 선수를 젊은 선수들처럼 대우해주길 바라는 선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FA 협상 때는 올 시즌 성적에 대한 기대보다 역할 부문에 초점을 맞췄다. 주장을 맡아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제2의 유격수를 발굴하는 데 적극 돕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즌 주로 백업 멤버로 출전하며 새로운 경험을 했던 이종욱. 불규칙한 경기 리듬으로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야구에 대한 절실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백업 멤버로 뛰었던 건 정말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솔직히 잊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워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1군에서 시합에 나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이전에는 당연시했던 부분이 어느 순간부터는 소중해진다는 걸 배운 것이다.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 영원한 은인, 김경문 감독
손시헌과 이종욱은 ‘김경문 감독을 사랑하는 선수’들이다. 두산을 떠나 NC로 온 것도 김 감독 때문이었고 NC에 남아 베테랑 선수로 제 역할을 하며 선수들을 리드하는 것도 김 감독의 팀이기 때문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김경문 감독님은 지도자의 롤 모델이다. 난 계속 김경문 감독님 밑에서 야구하고 싶고, 다른 팀으로 갈 마음도 전혀 없고, NC에 올인할 것이다. 때론 선배로, 때론 고참 선수로, 그리고 때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NC가 명문팀으로 가는 데 힘을 보태겠다.”
이종욱도 두산과의 FA 계약이 결렬된 후 다른 팀이 아닌 NC를 택한 유일한 이유는 김경문 감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이유가 전부였다. 다른 건 안 들어왔다. 감독님만 보고 NC를 선택했다. 두산은 이종욱이란 선수를 있게 해준 팀이고, 김경문 감독님은 선수 이종욱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나로선 그런 분 밑에서 다시 야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지금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다. 감독님이랑 NC 우승을 일구는 것이다. 그 목표가 내 야구 인생의 전부이다.”
이종욱은 두산 시절의 김경문 감독과 NC에서의 김 감독을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두산에서는 정말 무서운 감독님이셨는데, 지금은 자상함과 배려가 넘쳐난다.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웃음). 그래도 나는 감독님이 항상 어렵고 감독님 앞에선 긴장감이 배가된다.”
손시헌과 마찬가지로 2017시즌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됐던 이종욱. 그는 “감독님이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뒤를 돌아볼 시간을 주신 것 같다”면서 “결국 그건 더욱 분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며 김 감독의 의중을 헤아렸다.
그래서일까. 이종욱은 올 시즌 NC와 1년 계약을 맺은 데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올 시즌 FA 시장이 침체된 상태에서 1년이라도 야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솔직히 계약 못할까봐 걱정한 면도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해라 스프링캠프를 임하는 각오도 남다른 것 같다.”
# 야구에 미치고 싶은 1980년생들
손시헌은 올 시즌 ‘미쳐서’ 야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 왜 자신은 야구에 미치지 못할까를 놓고 고민한 적도 있었단다.
“다들 야구에 미친 것 같은데 나만 맨 정신으로 야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가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이전에는 내가 실책했던 영상을 감히 다시 보질 못했다. 심리 상담 후엔 그런 영상들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도망치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그 속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는 조언이 큰 힘이 됐다. 올 시즌에는 이런 노력들이 야구 성적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이종욱은 오히려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너무 잘하려다 행여 부상이라도 당할까 싶어 많이 내려놓고 가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 그에게 손시헌이란 어떤 친구일까.
“세상에서 제일 편한 친구이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싸우는 친구이기도 하다. 서로 성격이 정반대이다. 시헌이는 꼼꼼한 반면에 난 단순한 편이다. 난 어떤 일이 생기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면 시헌이는 신중하게 생각을 많이 한다. 서로 다른 성격이라 오랫동안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손시헌은 이종욱을 향해 ‘영혼의 콤비’라고 말했다. 같은 길,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친구의 우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