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SNS 계정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AP/연합뉴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팔로어 1명 늘리는데 10원…팔로어 숫자가 뭐길래”
실재하지도 않는 누군가가 내 이름과 ‘셀카’ 사진을 내걸고 날 사칭하는 것은 물론 내 프로필까지 베끼기 일쑤다. 이뿐만이 아니다. 때론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로 된 광고를, 낯 뜨거운 포르노 게시물을 ‘리트윗’한다. 유명인들이 올린 게시물에 떼를 지어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가짜 SNS 계정을 판 A 업체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 영향력을 키워주겠다”는 문구로 SNS 이용자들에게 접근한 뒤 실존 인물의 개인 정보를 도용해 만든 가짜 계정을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 이용자들에게 팔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 업체가 최근 몇 년간 판매한 가짜 트위터 계정만 2억 개로, 이 기간 동안 벌어들인 돈만 600만 달러(약 64억 원)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 업체가 유통시킨 350만 개의 트위터 계정 중 5만 5000여 개는 실제 인물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 주소지를 그대로 따오는 등 개인정보를 도용해 생성됐다는 점이다. 가짜 계정은 이미 주요 SNS 계정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트위터는 전체 이용자의 15%인 4800만 개의 계정이, 페이스북은 6000만 개의 계정이 가짜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고객은 연예인과 운동선수, 정치인은 물론 기업과 유명 목사 등이었다. A 업체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팔로어를 1만 명 늘리는 데 64달러(약 6만 8000원)을 받는다. 또 유튜브 동영상 1건당 평균 2만 7586번의 가짜 조회수를 만들어준다. 구매자가 글을 올리면 자동으로 특정 메시지를 반복하거나 반응하는 ‘봇(bot)’ 계정이 ‘좋아요’를 누르고 무한 공유를 시작한다. 이런 사례는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언론매체 신화는 A 업체로부터 수천 개의 가짜 트위터 팔로어를 구입해 정책 선전 수단으로 이용했고, 에콰도르에서는 대선 여론전을 가짜 트윗 계정으로 펼쳤다. 기업인은 많은 팔로잉 수를 이용해 고객에게 신뢰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수십만의 가짜 팔로어를 가진 유튜브 스타는 광고 수익을 부당하게 챙기기도 한다.
한 데이터 분석업체에 따르면 10만 명의 팔로어를 가지면 매달 약 2000달러(약 213만 원)의 수익을, 100만 명이 넘어가면 월 평균 2만 달러(약 2140만 원)의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팔로어가 많을수록 영향력이 커진다고 보는 SNS 특성상, 가짜 팔로어 문제는 심심치 않게 지적돼 왔다.
“가짜 계정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개입”…국내서도 댓글부대 논란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SNS=AP/연합뉴스
특히, 이들 가짜 계정들은 이른바 ‘댓글부대’로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와 반대자들 모두 A 업체에서 계정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국내도 국정원 댓글조작 의혹 사건 등 정치적인 댓글부대와 가짜 계정의 밀접한 상관관계에 대한 지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는 지방선거와 다가오는 각종 선거 때마다 가짜 계정에 대한 시비가 끊이질 않을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이들 가짜 계정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법망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SNS 업체들이 자체 규정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책임을 따지기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역시 가짜 계정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번호를 도용해 계정을 만들면 불법이지만 프로필이나 이름을 내거는 등 단순한 사칭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사칭한 계정으로 명예훼손 등 불법 행위를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해 케이스별로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면서 “아직 SNS 계정 거래를 단속할 수단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도용한 신원정보를 바탕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어 사고파는 행위는 명백한 사기죄에 해당하지만 피해에 대한 소송이나 문제제기 없이는 처벌이 쉽지 않다”며, SNS 계정에 대한 피해 확산을 우려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치적 선전이나 불법광고 등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 트위터 측은 가짜 팔로어 대책을 조만간 내놓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움직임이 없다. 물론 트위터의 가짜 계정 봇 상당수가 사라지면서 자발적인 제재에 나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예전부터 가짜 계정 봇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트위터가 가짜 계정 봇을 전부 없앤 것이 아닌 플랫폼에서 사용자 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가짜 계정 봇만 삭제한 점은 석연치 않다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더구나 트위터 측은 “누가 가짜 팔로어 구매에 책임이 있는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가짜 팔로어를 구입한 사용자에 대해서 별도로 제재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에겐 이용자의 피해보다 가짜 팔로어 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