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주범은 지위와 권한을 최순실에게 넘겨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어 사익을 추구한 최순실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재판부, 선고 당일)
“최순실은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초래했다. 엄중처벌이 불가피하다.” (최순실 1심 재판부, 13일 오후)
검찰과 법원(이재용 재판부)에서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순실 씨. 재판 내내 불신감을 표출했던 최 씨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가 내린 결론은 징역 20년이었다. 벌금도 180억 원이나 선고됐다. 검찰이 징역 25년을 구형한 것에 비해서는 적지만, 15년 안팎을 예상했던 법조계에서는 ‘예상 밖 중형’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재판부는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보고 이들의 공모관계를 대부분 인정하며, 최 씨에게 적용된 18개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둘러싼 청탁은 인정하지 않았다.
최순실 씨가 자신의 재판 증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빨리 불러달라고 해 눈길을 끈다. 지난 1월 25일 오후 체포영장이 집행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며 소리치는 최순실 씨. 사진=최준필 기자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부분에 대한 판단. 이 부회장이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최순실의 혐의도 가벼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최순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부와 달리, 삼성 측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제공한 말 3필의 소유권 역시 최 씨에게 속한다고 봤다. 이런 판단 때문에 이 부회장 뇌물 혐의 유죄 인정 금액(36억 원)보다 최 씨의 범죄 혐의 인정 금액(70억 원 상당)이 훨씬 많아졌다.
재판부는 엄격했다. 최 씨의 그 외 혐의들도 모두 박 전 대통령의 공모로 이뤄진 범죄로 봤다. ▲포스코 스포츠팀 창단 요구(직권남용 및 강요) ▲하남시설 지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면세점 부정청탁 ▲하나은행 인사청탁(강요) ▲SK에 85억 제3자 요구(뇌물) 등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며 “최 씨가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초래했다”고 꾸짖었다.
법조계에서는 최 씨는 사실상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평이 나온다. 최 씨는 이 재판과 별개로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시비리 혐의에 대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기 때문. 대형 로펌 관계자는 “지금 최 씨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무기징역’이나 다를 바 없다, 검찰도 그런 점을 감안해 무기징역 대신 징역 25년을 구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기소된 이들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징역 6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안 전 수석은 검찰이 구형한 그대로를 적용받았고, 신 회장은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신 회장은 그대로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특히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도 증거로 인정했다. 이 수첩은 최 씨의 태블릿PC,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휴대전화 녹음파일과 함께 국정농단 3대 증거로 꼽혔던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이 부회장 항소심에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며 다른 판단을 내렸다.
이제 관심은 자연스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도 어느 정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기 때문.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단단한 연결 고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이지 않나. 이번 1심 재판의 양형(징역 20년)이 박 전 대통령에게 그대로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유죄 금액(36억 원)과 최 씨의 삼성 뇌물 수수 금액(70억 원 상당)이 다른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부와 최순실 1심 재판부의 판단이 다른 것은 박 전 대통령의 각종 혐의를 감안할 때, 작은 부분 중 하나”라며 “박 전 대통령 재판에는 최 씨에 대한 판단이 더 우선적으로 영향을 주고 둘의 공모 관계에 대해 엄격한 판단을 내린 게 의미가 훨씬 크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