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
현재 여권 기류는 청와대의 ‘고’(go) 사인에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서서히 ‘정운찬 거품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000만 원 소액 용돈 발언 한 방으로 대권 도전은 이미 물 건너갔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정 후보자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 결과 충청 민심 이반에 따른 선거 무용론, 도덕성 추락으로 중도층 확보 실패 가능성, 카리스마 부족에 따른 공무원 장악 의문 등 ‘3대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정 후보자의 역할은 대권 레이스의 ‘페이스메이커’ 정도에 그칠 것이란 섣부른 예상도 나오고 있다. ‘정운찬 거품론’이 몰고 온 후폭풍을 따라가 봤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접한 여권의 대체적 기류는 ‘개념 없는 자기관리’와 ‘어설픈 변명’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아직 총리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무한도전’은 남아 있지만, 이틀 동안의 청문회를 통해 정 후보자의 전력이 거의 드러났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히 여당 일각에서는 “정 후보자는 정무적 판단 능력, 도덕성, 정책 추진력이 없는 ‘3무 정치인’이다. 대권후보군으로선 끝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라는 극단적인 평가마저 내놓고 있다.
이번 총리 청문회를 거치면서 여권 관계자들이 특히 놀란 부분은 정 후보자가 아무리 교수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정무적 판단과 정치적 센스가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다. 사실 총리실의 청문회 준비 수준은 정부부처 내에서 최고다. 정치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총리실의 ‘매뉴얼’만 충실히 따르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는 게 총리실 주변의 분석이다.
총리실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부처는 그동안 인사청문회 준비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나름대로 곤혹스러운 질문에서 빠져나오는 노하우를 알고 있다. 청문회팀에서 (답변)하라는 대로만 하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번 정운찬 후보자를 보니 그런 노하우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교수 출신에 솔직한 성향 때문인지 답변을 너무 순진하게 하는 것 같더라. 그것마저 우리가 일일이 가르쳐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여당 일각에서는 “저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릴 때부터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그게 제 자부심이었다”라는 정 후보자의 답변을 ‘워스트’로 지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여당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버티면 되는데 그런 순진한 말을 뭐 하러 하는지 모르겠더라. 오죽했으면 강운태 민주당 의원이 ‘뭐가 잘못됐는지, 뭐가 오해인지는 설명도 안 하고 그냥 무조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숨긴 게 없다고만 하니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누가 바르게 안 살았다 그랬나’라고 쏘아붙였겠느냐. 정치적 감각, 설득력, 대중적 감각 등이 떨어지고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방법도 나이브하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정무적 능력 부재가 교정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자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비쳤던 도덕성도 이번에 많이 훼손됐다.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역 면제 의혹, 위장전입, 소득세 탈루, 논문 중복 게재에다 금품수수 의혹까지 어느 항목 하나 예사로 넘길 수 없는 ‘악성 의혹’들을 남겼다. “서울대 총장까지 하고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 저렇게 개념 없이 자기관리를 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올 법도 하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그가 노무현 정권에서 발탁이 되지 않았던 것은 병역문제 등의 인사검증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상대적으로 흠이 있더라도 정부요직에 발탁된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 총리 내정에 응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 후보자의 도덕성을 훼손할 만한 의혹이 완전히 ‘클리어’되지 않아 향후 민주당의 공세 강도에 따라 그가 더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먼저 정 후보자가 Y 모자 회장으로부터 ‘소액의 용돈’ 1000만 원을 받은 것을 시인했는데 다른 ‘형님’들로부터 더 큰 ‘용돈’을 수수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자칫 낙마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은 “정 후보자의 수입과 지출, 금융자산을 분석한 결과 3억 6200만 원의 별도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세청을 방문해 정 후보자의 세무자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 후보자가 지난 2006년 대권주자로 나설 것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A 그룹의 모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지원을 제의받았다’는 미확인 소문도 여의도에 퍼져 있는 상태다.
한편 여당에서는 청문회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정운찬 후보자가 과연 공무원 사령탑으로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지도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이럴 경우 총리의 정책 추진력 저하로 이어져 이명박 정권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관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 후보자가 ‘형제와 같은 사이’인 Y 모자 회장으로부터 1000만 원의 용돈을 받은 것을 두고 스폰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의 관계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한테 50만 원만 받아도 그 공무원은 직위해제 된다. 1000만 원의 용돈을 받은 총리가 부하직원들에게 스폰서 받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 할 거요 말 거요?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이 9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세종시 공사현장 사진을 들어보이며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그런데 문제는 정 후보자에 대한 ‘3무론’이 ‘3무용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먼저 정 후보자가 세종시 재검토 발언을 한 뒤 충청 민심이 극도로 악화돼 ‘각종 선거용’으로 특채된 정 후보자의 역할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충청지역의 지역 언론들은 연일 정 후보자를 ‘배신자’로 규정하며 비판 논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기류는 10·28 재선거 지역구 가운데 하나인 충북 진천·증평·괴산·음성의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세종시 원안 관철을 연일 언급하며 지역 민심을 달래고 있지만 정 후보자가 이 문제를 직접 핸들링하겠다는 뜻을 드러내면서 향후 지방선거에서 그의 존재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 후보자의 영입으로 중도개혁성향 세력을 아우르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략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열혈 지지층인 원조보수층은 웬만한 대외 변수에도 그 열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도개혁성향 지지자들은 도덕성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권이 이번 청문회 정국 과정에서 그동안 쌓아온 점수를 다 까먹었다며 정운찬 후보자를 살리는 대신 다른 후보 1~2명을 낙마시키는 빅딜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향후 이명박 정권의 중심 지지세력이 될 중도세력을 당연히 의식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도성향의 한 시민단체 회원은 이에 대해 “중도성향 개혁세력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제대로 서는 것을 중요시하고 그런 지도자를 원한다. 공인의식, 도덕성, 윤리의식, 청렴성, 국민계도 책임의식이 보이지 않는 정 후보자를 과연 누가 지지할지 모르겠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정 후보자의 대권주자 견제론도 무용론으로 바뀌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 후보자 영입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대표의 대항마로서의 일정 역할을 그에게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를 거치면서 정 후보자가 오히려 두 주자의 위상을 높여준 꼴이 됐다. 친박 진영 내부에서는 “이번 정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도덕성을 새삼 다시 보게 됐다. 박 전 대표가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독한 검증을 견뎌낸 것도 있지만, 당시 논란이 된 것과 정 후보자의 ‘의혹’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같다. 이번 청문회는 ‘역시 대권 주자는 박 전 대표만 한 사람이 없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 후보자의 ‘견제 무용론’은 정몽준 대표의 입지와 위상을 상대적으로 강화시키는 ‘풍선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정운찬 후보자가 청문회 후유증으로 대권주자로서의 행보에 차질을 빚게 되면 자연히 정몽준 대표에게로 ‘차기의 무게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운찬 후보자를 두고 ‘정무적 감각, 도덕성, 정책 추진력이 없다’는 3무론에 이어, ‘각종 선거, 대권주자 견제, 공무원 조직 장악 등에서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3무용론이 벌써부터 여권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은 ‘껍데기’에만 열광하는 천박한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하지만 “청문회가 입시보다 1000배는 더 힘들다”라며 정치와 대학입시를 비교하는 ‘순진한 학자’ 정 후보자의 ‘속’도 그리 준비된 상태는 아닌 듯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