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여고생을 연기한 배우 최리는 거물 배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톡톡히 알렸다. 임준선 기자
“수정이는 진태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친구예요.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착한 친구죠. 그런 캐릭터여서 저한테 더 매력적으로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진태’와의 케미 덕일까. 최리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진태의 피아노 연주”라고 단숨에 말했다. 보는 내내 실제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박정민 선배님이 피아노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걸 실제로 보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그 장면에서 진태에 대한 감정도 그렇고, 선배님이 진태를 위해 노력하신 게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와서 정말 펑펑 울게 되더라고요. 그 촉촉한 마음이 집에 가서까지도 계속 됐어요(웃음).”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막내였던 최리는 현장의 귀염둥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까마득한 선배들도 막내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지원 방법은 제각각이었지만 말이다.
“현장에서 다들 예뻐해 주셨어요(웃음). 박정민 선배님은 저 때문에 리허설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아예 현장에서 리허설을 같이 해주시면서 저한테 ‘이렇게 연기를 하면 어떨까’하는 식으로 아이디어도 저보다 더 많이 내주시기도 하고, 말씀하시는 걸 제게 모두 공유해주셨어요. 반면에 이병헌 선배님은 딱히 지시를 하시거나 따로 말씀을 하시는 것보다 제가 그냥 연기를 하면 그걸 다 받아주시는 식이었어요. 일단 제가 연기를 하는 걸 먼저 지켜보시고, 그 다음에 방향을 잡아주셨죠. 그렇게 두 분이 좀 다르셨어요(웃음).”
함께 일한 배우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그다. 특히 대중들 사이에서는 영화 속 ‘신스틸러’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개봉 후 최리의 인기는 그전에 비해 어느 정도로 높아졌을까? 혹여 쏟아지는 광고 세례에 신음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최리는 “아, 눈물 좀 닦고…”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눈물부터 닦아야 할 이야기인데…(웃음) 광고가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하지만 보시는 분들이 즐거운 거라면 다 할 수 있어요. 최근 유행했던 ‘트로피카나’ 댄스라도 시켜주시면 다 합니다. 하하”
입소문을 탄 만큼 이번에 스크린으로 최리를 처음 마주한 대중들은 ‘수정’의 역할로만 그를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 나이 또래다운 상큼하고 발랄한 면모를 보여주는 그에게 다른 면모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정’은 최리가 맡은 최초의 ‘밝은 캐릭터’였다.
임준선 기자
“그때는 위안부 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했어요. 조금이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되어야 겠다라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연기 전공이 아니었는데도 ‘귀향’을 선택해서 영화를 찍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예요.”
그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나왔다. 영화 ‘귀향’에서 보인 무녀의 춤사위가 그린 듯이 자연스러웠던 것도 그 덕이었다. 무용을 자신의 길로 생각했던 만큼 영화 ‘귀향’이 무사히 개봉되고 나면 연기를 그만두고 다시 무용의 길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이 흔들리게 된 건 스크린에 등장한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 순간부터였다. 인간 최리가 아니라 ‘귀향’의 무녀로서 자신의 모습을 본 최리는 그 순간을 “희열”로 표현했다.
“무용의 길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순간, 제가 저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로 나오는 것에 너무 놀라기도 했고 희열마저 느꼈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인물로 계속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그 감정을 바탕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길을 바꾸니 눈도 달라졌다. 앞으로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최리는 진지한 얼굴로 “사람의 인생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운을 띄웠다.
“밝은 역할이든 무거운 역할이든 어떤 역할이든지 저한테 매력있다고 느껴지면 거부감은 없어요. 저는 연기를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발전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제가 나이가 들고 나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그렇지만 지금 마음먹은 일을 가지고 더 발전해서 살았으면 해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