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기간 중에는 통상 각 방송사들이 파일럿 예능을 대거 제작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체크한다. 향후 정규 프로그램 편성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파업 사태를 겪은 KBS, MBC는 상대적으로 동계올림픽 중계 여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준비가 더뎠다. KBS의 경우 파일럿 예능이 한 편도 없었다.
이는 방송사들의 치밀한 계산이 바탕이 된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리면 공들여 만든 타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연휴 기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메달 획득이 기대되는 주요 경기 중계방송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 어느 종목을 가장 많이 봤나?
당연히 금메달이 나온 경기의 시청률이 가장 높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조사했을 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종목에서는 동메달이 나왔다.
다름 아닌 17일 진행된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이었다. 이 종목은 준준결승에서 한국 선수 3명이 맞붙어 1명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상황까지 겪었던 터라 대중의 관심은 더 컸다. 결국 결승에는 서이라, 임효준 선수가 함께 올라갔다. 두 선수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금·은 메달 동시 석권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기대감이 작용해 지상파 3사 시청률 합계는 56.3%(KBS 2TV 23.7%, MBC 13.8%, SBS 18.8%)로 전체 경기 중 1위였다.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전. SBS 중계 화면 캡쳐
하지만 한국 선수 두 명이 동시에 넘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헝가리 선수인 샤오린 류 산도르가 실격 처리돼 서이라는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동시에 본 경기인 만큼, 아쉬움도 가장 컸다.
그 뒤를 이으며 시청률 고공 행진을 벌인 경기는 역시 17일 열린 여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전이었다. 이 경기의 결승에도 태극낭자인 최민정, 김아랑이 나란히 출격했다. 특히 최민정은 여자 쇼트트랙 500m 경기에서 2위로 골인해 은메달 수상이 유력했으나 비디오 판독 과정에서 충돌로 인한 실격판정을 받은 터라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 경기의 시청률은 KBS 2TV 22.1%, MBC 13.4%, SBS 19.9%로 3사 합계는 55.4%였다. TV 앞에 앉은 2명 중 1명은 이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는 의미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최민정은 아웃코스로 크게 돌며 상대 선수와의 충돌을 피하는 등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함께 출전한 김아랑은 4위를 기록해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으나 경기가 끝난 후 최민정을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 훈훈함을 전했다.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에는 명절을 쇤 가족들이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선수인 이상화를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모였다. 500m 결승전은 찰나에 경기가 끝나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일찌감치 채널을 고정한 시청자들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동계올림픽 3연패를 노리던 이상화는 최선을 다하며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 경기의 시청률은 KBS 2TV 21.3%, MBC 7.8%, SBS 15.6%로 총합은 44.7%였다.
# 의외로 시청률이 낮았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단연 스켈레톤의 윤성빈이다. 스켈레톤의 불모지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로 나선 그는 이미 앞선 세계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뽐내며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스켈레톤 경기는 15, 16일 양일간 열렸다. 15일 진행된 1, 2차 시기에서 윤성빈은 각각 50.28초, 50.07초로 1위를 달리며 금빛 전망을 밝혔다. 그래서 금메달이 결정되는 3, 4차 시기가 열린 16일 경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윤성빈은 3차 50.18초, 4차 50.02초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썰매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건 최초다.
4차 시기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 KBS 중계 화면 캡쳐
관심도는 톱(top)이었지만, 시청률은 톱이 아니었다. KBS 2TV 6.7%, MBC 8.2%, SBS 13.8%로 3사 중계 합계는 28.7%였다. 이는 16일이 설 당일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차례를 지내거나, 이동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TV 앞에 앉을 수 있는 이들이 적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윤성빈과 관련된 기사가 온라인에 도배됐고, 미처 경기를 챙겨보지 못한 이들이 스마트폰 등으로 하이라이트 영상을 돌려보며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20일 열린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경기는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목이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대회 때 처음 국내 선수들이 출연한 이래 이번 대회 전까지 6번 출전해 5번 정상을 밟았다. 이 중 심석희와 김아랑은 2014년 소치대회 때 이 종목 금메달의 주역들이었다. 두 사람은 최민정, 김예진과 힘을 합쳐 결국 이 종목 6번째 금맥을 캐냈다.
이 경기의 시청률은 KBS 2TV 12.1%, MBC 9.4%, SBS 14.1%로 총합은 35.6%였다. 전체 종목 시청률 중 4위에 해당된다. 금메달이 유력한 종목 임에도 이 정도 시청률에 그친 것은 평일에 열린 경기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종목 중에서는 차준환 선수가 개인 최고 성적을 낸 피겨 남자 싱글 경기 중계의 3사 합계가 19.9%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해당 경기에 대한 기대감과 차준환의 인기가 반영된 결과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