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행) 채용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가 털어놓은 수사 뒷얘기다. 특정 지원자를 채용시키기 위해 은행 인사팀과 수뇌부가 조직적으로 나선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해당 은행들이 오히려 특혜 채용된 이들을 지키기 급급하다는 것. 실제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일부 은행들은 금융감독원, 검찰 수사 등으로 일부 명백한 특혜 채용이 드러났음에도 아무런 인사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은행-하나은행 등 금융권 채용비리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금감원은 하나·국민·대구·부산·광주은행 등에서 채용비리 의심사례 22건을 적발했다며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기고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해당 5곳의 은행을 모두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됐던 우리은행은 이보다 앞서 검찰 조사를 통해 만연한 특혜 채용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해 말 시작된 서울 북부지검 형사5부(부장 구자현) 수사 결과 드러난 우리은행 내 채용 비리는 치밀하게 이뤄졌다. 이들은 외부 청탁자와 우리은행 내부 친인척 명부를 관리했다. 이 명단에 있는 자녀들은 서류전형 또는 1차 면접에서 불합격권 들었음에도 최종 합격 처리됐다. 이렇게 ‘부정’하게 채용된 인원은 2015년엔 10명, 2016년엔 19명, 지난해엔 8명에 달했다. 검찰은 이를 지시한 이광구 전 은행장과 함께 채용비리를 저지른 남 아무개 전 부행장, 인사 담당자 4명을 업무 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인사 조치는 없었다. 이광구 전 은행장처럼 기소된 당사자들이 스스로 회사를 떠나거나 징계를 받았을 뿐, 인사 청탁으로 원래 합격했어야 하는 사람 대신 앉아서 일하고 있는 부정 합격자들은 아무런 인사 조치를 하지 않았다.
부산은행 역시 비슷했다. 금감원에서 부정 채용으로 보인다며 검찰에 고발한 부산은행 사례는 2건. 부산은행은 지난 2015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예정에 없던 인원을 늘려 국회의원 자녀와 전 부산은행장 가족 등 2명을 부당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금감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이들 중 한 명은 명백하게 성적이 낮았음에도 최종 합격했다. 부산은행은 1차 면접 전 인사부 관계자가 비공식적으로 지원자를 만나 특이사항을 인사담당 임원과 은행장 등에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챙겼다.
부산지검 특수부가 부산은행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부산은행 역시 부정 채용된 이들을 지키기 급급했다. 인사 조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 수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의혹으로 수사를 받게 되면 회사를 위해 스스로 나가거나 회사에서 뭔가 조치를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없는 걸 보고, 오히려 이들을 지키려고 은행들이 나서는 걸 보고 뻔뻔한 태도에 놀랐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의 현장검사로 은행들의 채용비리 정황이 드러났다. 사진은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을지로 신사옥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채용비리 규탄 집회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 은행들 역시 ‘추가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정한 채용인지 법원에서 확인이 된 뒤에 조치를 할 수 있지, 지금은 그럴 명분이 없다는 것. 앞서 거론된 은행 관계자는 “검찰에서 기소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재판에서 부정 채용이 맞다고 판결이 나온 게 아니지 않냐. 인사 규정에 따라 ‘기소’된 사람들만 징계 등을 했고 채용된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인사 조치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오히려 “검찰에서는 수사 내용을 놓고 드러났다고 단정짓지만, 우리는 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며 “법원에서 부정 채용이 맞다고 하면 그때 뭔가 조치를 할 것이고 그것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붙었어야 했지만, 부정 청탁에 밀려 불합격된 이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든 은행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 업계에서는 은행들의 이런 뻔뻔한 태도가 ‘좋은 직장’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만연해졌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방은행들 일부는 신입직원 채용 때 임직원 자녀 우대를 하는 부분이 있었을 정도다. 임직원 자녀라는 이유로 지원 때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가산점을 받고 시작하는 것인데, 채용 비리 조사와 함께 이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최흥식 금감원장은 “가능하면 하지 않도록 은행들에 권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은행 내부에서는 ‘사람 뽑는 것까지 수사 기관이 관여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 은행도 다 민간 기업인데 왜 채용을 가지고 이렇게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며 “기업이 자기 마음대로 사람 뽑는 걸 ‘업무방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더 웃기다. 삼성전자에서 누군가를 특별 채용해도 이렇게 문제삼고 수사할 거냐”고 비판했다. 관치금융의 한 맥락이라는 반발도 나왔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는 사람을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으로 내려보내는 건 문제 삼지 않고,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걸 채용 비리라고 몰아가며 수사로까지 연결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박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여기도 빽 좋은 자녀 많은데 왜 수사 안하나” 국책은행·제2금융권 내부 비판 고개 금융감독원이 검찰에 고발한 은행은 모두 5곳. 하지만 이번 조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곳들이 있다. 산업·기업·수출입·씨티·SC제일 등인데 산업과 기업, 수출입은행은 국책은행이라는 이유에서(공공기관 채용 실태 점검 대상), 씨티와 SC제일은행은 외국계라는 이유로 금감원 조사를 받지 않았다. 은행 외에 카드사, 보험사 같은 제2금융권은 아예 조사 가능성이 거론되지 않았을 정도다. 자연스레 이들 회사 내에서는 “우리 안에도 채용 비리로 추정되는, 빽 좋은 자녀들이 많은데 왜 조사를 안 하느냐”는 비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국책은행 내 분위기는 일반 은행들과는 다르다. 자체적으로 치르는 입사 시험에 대한 신뢰도가 있기 때문. 점수로 면접 대상을 거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합격’이 확정된 케이스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과정인 면접을 놓고는 ‘빽’이 더 세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해당 은행 내부 관계자들의 하나된 의견이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우리 은행 안에만 5명이 넘는 전 은행장, 부행장들 자녀가 다니고 있고, 국회의원 자녀도 몇 명 있다”며 “이들이 당연히 시험을 잘 봤으니 면접을 보게 됐겠지만 면접 때 당연히 약간의 도움을 받지 않았겠냐”고 지적했다. 해당 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국회의원 자녀라는 게 입사 후에 소문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그런 부분이 입사 후 인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동기 중에 정치인 자녀가 있다는 얘기가 있어, 본사에 물어보니 쉬쉬하더라”며 “누구의 자녀라는 걸 숨기는 게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카드사를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카드사가 금융업계의 숨은 ‘알짜 기업’이라는 것. 카드사는 차츰 지점 운영을 줄이는 은행과 달리, 실적 압박 등이 없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신용카드를 통한 결제 시스템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바뀔 게 없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은행에 비해 약한 것도 장점이다. 그러다보니 ‘자녀를 뽑아달라’는 부정한 청탁이 많은 곳이 카드사라는 것.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권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절대 자녀를 은행이나 보험사에 보내지 않고, 카드사에 꽂는다는 얘기가 있다”며 “비슷한 연봉에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이 좋은 것이 명백하게 장점”이라고 귀띔했다. 카드 발급 같은 실적 개념이 거의 없다 보니, 부정 채용을 설명할 명분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는 “우리 회사에도 계열사 임원의 자녀 누가 다닌다더라 같은 얘기가 돈다”며 “채용 비리 수사를 하면 ‘청탁’을 받은 케이스가 꽤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최흥식 금감원장 역시 이를 고려했는지, 최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카드사 등의 채용비리 적발은 위한) 2금융권도 신고센터 만들었다”면서도 “아직 초기다”라며 제보가 많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은행권 채용비리 결과가 나오면, 채용 기준 모범안을 만들어 적용시키는 방법으로 은행권은 물론, 제2금융권의 채용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언급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