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롯데면세점
신동빈 회장은 지난 13일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과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받으면서 법정구속됐다. 이번 판결로 롯데는 사상 초유의 오너 공백 사태를 맞았을 뿐 아니라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사업권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국정농단 사태 연루로 오너가 실형을 선고받으며 경영 투명성 강화 및 브랜드 가치 제고를 꾀하겠다던 뉴롯데 비전도 그 빛이 바랬다.
관세청은 롯데의 뇌물죄 유죄 판결에 대해 관세법에 따라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취소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관세법 제178조 제2항에 따르면 특허신청 업체가 거짓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특허취소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판결 내용을 분석해 위법 내용 및 정도를 확인하고 법리검토를 거쳐 특허 취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현재 담당 부서인 수출입물류과에서 신속히 진행 중이지만 취소 여부 결정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롯데월드타워점 특허가 취소될 경우 롯데면세점의 업계 1위 입지는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는 이미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4개 중 주류·담배 사업권(DF3)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사업권(DF1, DF5, DF8)을 반납키로 결정했다.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공사와 임대료 조정 협상에 실패하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사업권 일부를 반납키로 했다. 면세업계에서는 업계 1위 롯데가 두 주요 면세점을 동시에 잃을 경우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생각은 다르다. 롯데면세점 측 관계자는 “인천공항의 경우 높은 임대료로 영업이 어려워 철수를 결정했지만 개선된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시내점이나 인터넷 면세점, 해외점 등을 공격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라며 “우리 매출은 줄어들지라도 업계 순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은 또 월드타워점의 특허도 취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의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뇌물죄는 최종심이 난 것이 아니라 지켜봐야 할 문제”라면서도 “설령 뇌물죄가 인정된다 할지라도 월드타워점 특허 취득 심사 과정에서 위법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타워 전경. 고성준 기자
# MB정권 ‘특혜 의혹’에 발목 잡힌 제2롯데월드
롯데는 이명박 정부의 ‘제2롯데월드 특혜 의혹’에도 발이 묶인 상황이다.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에게 제2롯데월드 건설은 40년간의 소공동 시대를 접고 잠실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뉴롯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군사적 이유로 막혀 있던 제2롯데월드 건설 사업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됐으며, 2009년 3월 건축 허가가 확정되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9일 감사원은 MB정부 당시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를 두고 제기된 의혹에 대한 감사를 실시키로 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와 시민이 참여한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박 의원은 국민감사청구 동참 캠페인을 주도해 378명의 시민과 함께 지난해 12월 5일 ‘제2롯데월드 국민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한 바 있다.
감사원은 국민감사 청구에 따라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를 열고 국민감사 청구된 6개 안건 가운데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행정협의조정’과 ‘롯데가 부담할 시설·장비 보완비용 추정 및 합의사항 이행’ 등 2개 분야에 대해 감사를 결정했다. 참여정부는 2007년 7월 행정협의조정위에서 “비행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 의견을 수용해 롯데월드타워의 건축을 불허했다. 그러나 MB 정부가 들어선 뒤 2009년 3월 행정협의조정위는 서울공항 비행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건축허가를 확정했다.
박범계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에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한 기업의 이권 충족을 위해 군사분계선에 가장 가까운 공군기지로서 성남비행장이 갖는 군사 안보상 이익을 헌신짝처럼 버린 반역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 형제간 경영권 분쟁 불씨 여전
지난 21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는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 안건을 승인했다. 이로써 한일 롯데를 모두 이끌며 ‘원 롯데’를 바라던 신동빈 회장의 바람이 무너졌다. 롯데그룹조차 “한일 양국 롯데의 협력관계는 불가피하게 약화될 것”이라고 한 만큼 신동빈 회장이 그린 ‘뉴롯데’의 구상이 흐트러질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이 최근 신동빈 회장이 일본 광윤사 관련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등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또 다시 움직이면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되살아난 것도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에게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 구속 다음 날인 지난 14일 일본 광윤사 대표 자격으로 입장 자료를 내고 신 회장의 사임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오는 6월 예정된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앞서 물밑작업을 하며 경영복귀를 노리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번번이 뒤로 미루었던 호텔롯데 상장이 신 회장 구속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 사임으로 아예 무기한 연기된 것도 문제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를 상장함으로써 한일 롯데의 연결고리를 끊고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던 의지가 꺾였기 때문이다. 한국 롯데의 독립경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임은) 일본법상 이사회 자격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 대표권을 반납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황각규 부회장을 비롯한 비상경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양국 경영진이 긴밀히 상의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