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쪽을 방문하고 평양에 귀환한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 고위급대표단과 만나 이들의 활동 내용을 보고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13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고위급대표단으로부터 방남 결과를 보고받으며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
필자는 오래전 김정은의 당 중앙위원장 서기실(당 서기실) 산하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특별한 성격의 조직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최근 복수의 내부 관계자를 통해 그 새로운 조직의 실체에 대해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김정은 시대 들어 기존 김정일 당 서기실은 조직 개편을 겪었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책봉된 뒤 기존의 서기실과는 별개로 김정은을 전담하는 별도의 서기실 조직이 신설됐다. 그리고 김정은 시대 들어 이 두 개의 서기실 조직은 그대로 국무위원회(구 국방위원회) 서기실과 당 서기실로 이분화돼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 서기실은 대부분 고위 간부들의 비리와 동향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조직으로, 국무위원회 서기실은 주로 국정운영을 위한 정책부서 성격으로 판단된다.
이 와중에 들어선 ‘의문의 새로운 조직’, 이른바 이전에는 없었던 ‘여론조사 전담팀’이다. 참고로 이 부서를 두고 북한 내부서 칭하는 ‘여론조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여론조사(Public Opinion Poll)’ 의미와는 다르다. 일반적인 여론조사는 표본을 뽑아 각각 인구비례에 맞추어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전담팀을 두고 칭하는 ‘여론조사’는 그것보단 ‘여론동향 파악’에 더 가까운 의미라 할 수 있겠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여론조사 전담팀은 김정은이 막 집권한 2012년 2월부터 팀원 구성을 위한 간부사업(인사를 배치하고 그에 맞게 교육·육성하는 사업)을 거쳐 그 해 4월 처음 신설됐다.
인사는 각 주요 기관 및 주요 지역 시도당에서 차출됐다. 평양시, 나선시, 남포시, 개성시 등 주요 광역도시와 각 도당 간부 출신 10여 명, 농업, 경공업, 군수공업, 무역, 재정, 군,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각 부문 출신 간부 10여 명, 여기에 해외 무역회사 및 대사관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간부 서너 명과 이를 진두지휘하는 김정은 최측근 고위급 간부 서너 명 등 총 30여 명이 배치됐다.
물론 그 검증은 매우 엄격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출신과 토대는 물론 각 부문에서 최소한 10년 이상 사업경험을 쌓은 인재 중 능력이 검증된 이들을 추려냈으며 최종적으론 김정은이 직접 선발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역할은 앞서 언급했듯 일선 조직과 지역의 ‘여론동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팀에 배치된 인사들은 주로 본인이 차출된 기관 및 지역을 전담한다.
전담 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북한 각 지역 및 부문에서 보고되는 정보와 각 당 조직들에서 올라오는 신소실(정보 및 문서 취합 부서) 관련 자료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특별한 조짐이 감지되거나 비중이 비교적 큰 사건사고가 터질 경우, 김정은을 대신해 직접 현지에 내려가 정보를 취합 및 확인해 상부에 보고한다. 특히 전담팀은 북한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정부 관련 행태나 조짐에 대해선 더욱더 예민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은 전담팀 구성원들에게 직접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라도 다 들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당 서기실에 이 조직을 신설한 것일까. 혹자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이미 북한은 악명 높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군 보위국 등 3대 거대 정보기관이 있다. 게다가 최고지도자가 직접 관장하는 조직지도부와 군 총정치국 등 핵심조직들의 정보수집 활동 망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여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서기실 내에 별도의 여론조사 전담 조직을 둘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결국 핵심은 김정은의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은은 선친 김정일과 비교해 조직 장악력은 물론 체제 장악력이 약할뿐더러 국정운영과 현장경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평양 주민. 요즘 많은 평양 주민들은 아침 기상 이후 그날 환율을 알아본다고 한다. 연합뉴스
이는 김정일 집권 말기부터 조짐이 있었다. 김정일 스스로 이 같은 간부들의 거짓보고 때문에 “혁명을 망친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결국, 김정은 스스로 자신의 조직 장악력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업을 조직한 경험 있는 조직지도부를 비롯한 주변 고위급 간부들의 충고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은 내부관계자가 언급한 여론조사 전담팀의 최근 보고 사안 중 일부다. 지난해 내내 북한 내부에선 ‘핵전쟁’이 언급될 만큼 외부와의 무력충돌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한다. 이 시기에 일선 간부들은 위기의식 속에서 각자 보유 자산들을 해외로 빼돌리는 세태가 빈번하게 벌어졌다고 한다. 이 같은 동향을 전담팀이 직접 김정은에 보고했고, 상당히 놀랐다는 후문이다.
인민들의 일선 동향 파악도 전담팀의 보고 사안 중 하나다. 최근 평양시 주민들의 아침 기상 이후 행동이다. 요즘 대다수 주민들은 가까운 지인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오늘 환율은 얼마인가’를 알아보는 게 첫 일과라는 게 그 내용이다. 원래 북한에서 주민이라면 일어나서 김일성-정일 부자 초상화를 손수 닦고 충성 맹세를 하면서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당의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평양 주민들은 ‘당적 지도’보단 ‘금전’에 더 치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세한 동향 파악도 전담팀을 통해 김정은이 보고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당 서기실에 별도의 여론조사 전담팀을 두고, 상부에 올라온 일선 동향 정보를 재차 체크하는 과정을 거친다거나 아예 별도의 동향 파악 보고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간부들을 선별해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김정은 시대 들어 이러한 조직 장악력 약화는 자연스레 체제 장악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 비해 체제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그와 비슷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고, 김정은 입장에선 이러한 여론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이 전담팀이 생겨난 이유기도 하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