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지난 16년 동안 한국에서 엄청난 현금을 인출해가면서 회사를 껍데기만 남겼다. 하지만 아직 남은 알짜자산이 있다. 땅이다. 한국GM이 가진 토지는 담보로도 설정되지 않아 수조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GM은 이 땅으로 엄청난 현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일 베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등이 국회를 방문, 대책 논의에 앞서 여야 지도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2002년 말 군산공장과 창원공장 토지의 장부가는 각각 1172억 원, 1609억 원이었다. 당시 두 공장 부지의 공시지가는 1177억 원, 1273억 원이다. 2005년에는 부평공장까지 인수하는데 공시지가 5892억 원짜리 토지를 장부가 6849억 원으로 평가했다. 2005년 말 한국GM이 보유한 토지의 장부가는 1조 931억 원, 공시지가는 9936억 원이다.
2016년 말 한국GM의 재무제표에 부평공장, 군산공장, 창원공장 토지 장부가는 6832억 원, 1184억 원, 1610억 원이다. 11년 동안 가치변동이 없었던 셈이다. 2016년 말 이들 토지의 공시지가는 각각 1조 202억 원, 1301억 원, 3660억 원이다. 한국GM이 보유한 토지 전체로 따지면 장부가는 1조 847억 원이지만, 공시지가로는 1조 7162억 원에 달한다. 공시지가가 72.7% 오르는 동안 장부가는 제자리에 머문 셈이다. 공시지가 상승률을 장부가에도 적용하면 1조 9000억 원에 육박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통상 토지 공시지가는 실거래가의 50~60%를 반영한다. 주택 공시지가가 70%가량을 반영하는 것과 큰 차이다. 한국GM 보유 토지가치가 3조 원에 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장 주변은 교통이 발달돼 있다. 특히 부평공장과 창원공장 인근은 모두 아파트 단지다. 배후수요가 충분해 개발잠재력이 크다. 정비사업소의 경우에도 고객 접근성을 위해 주거지 인근이 많다. 익명의 회계전문가는 “한국GM이 보유 토지에 대한 자산재평가를 실시, 공시지가로만 장부가를 올려도 7000억 원 가까운 재평가 차익이 발생한다. 자본잠식을 회복하는 데 상당히 유용하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GM은 왜 지금까지 토지재평가를 실시하지 않았을까. 한국GM에 토지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담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아서다. 담보제공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인데, 한국GM의 경우 주주 85%의 찬성이 필요하다. 17%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공장부지를 담보로 제공할 경우 GM이 막대한 차입을 일으킬 수 있다.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면 사실상 판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GM은 최근 산업은행과 협상에서 출자전환을 통한 유상증자와 공장부지의 담보제공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이 공장부지의 담보제공에 동의하면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이 가능해진다. 토지의 유동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산업은행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주목할 부분이 유상증자다. GM은 신규 자금 투입이 아닌, 본사에서 빌려준 돈 27억 달러를 주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산업은행은 지분율만큼 현금을 넣고 신주를 받아가라는 한다. 산업은행은 이를 사실상 거절했다. 주식은 회사가 망하거나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휴짓조각이 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GM은 2009년에도 단독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산업은행 지분율이 28%에서 현재의 17%로 낮아졌다. 이번에도 단독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하면 산업은행 지분율이 15% 미만으로 떨어진다. GM 단독으로 토지담보 제공뿐 아니라 매각까지 결정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산업은행은 유상증자 참여 대신 신규투자에 대한 자금지원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출자가 아닌 지원, 즉 돈을 꿔주겠다는 것이다. 한국GM의 미래가 불투명한 만큼 산업은행이 돈을 빌려주려면 ‘담보’가 필요하다. 한국GM으로서는 산업은행을 상대로 토지 유동화를 이뤄낼 수도 있는 셈이다.
GM이 빌려준 돈 27억 달러로 주식으로 바꾸면 손해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GM의 유동성은 이미 바닥났다. 어차피 당장은 회수가 어렵다. 공장부지만 유동화할 수 있다면 3조 원 이상의 현금을 만들 수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본사와 각종 거래 과정에서 자금을 빼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GM 본사가 일부 신차종을 투입해 부평과 창원공장 가동을 당분간 이어가려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공장이 돌아가야 돈을 빼가기 쉽기 때문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