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과정에서 만난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 서울시 제공.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무공천 카드 시나리오가 부상한 것은 ▲현실성 낮은 선거연대 ▲인재영입 난항 ▲수도권 전패 위기론 등과 무관치 않다. 일단 현실적으로 통합은커녕 선거연대 자체가 쉽지 않다. 선거연대는 기본적으로 가진 쪽이 열세인 후보나 정당에 지분 등을 양보할 때만 성사한다. 감동 있는 선거연대만이 화학적 결합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선거 당시 50% 지지율을 기록한 안 전 대표가 5%에 불과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조건 없이 양보한 게 대표적이다. 반면, 2012년 대선 때 양보 없이 일방 통행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끝내 실패했다.
선거연대 명분도 명확해야 한다. 명분이 비교적 뚜렷했던 2010년 6·2 지방선거 때 범야권은 ‘반 MB(이명박 전 대통령) 프레임’을 고리로 진보적 어젠다 정책 추진에 나섰다. 당시 지방선거의 핵심 정책인 ‘친환경무상급식’이 대표적이다. 전략통으로 꼽힌 민주당 전직 의원은 “기본적으로 구도 싸움인 선거에서 상대진영을 갈라치는 가장 좋은 전략은 무상급식같이 정책을 정치화해 반대편에 균열을 내는 것”이라며 “무상급식으로 당시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이 진보진영에 얼마나 많은 표를 줬느냐”고 말했다. 반대로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에 지나지 않았던 지난해 5·9 대선 당시 반문연대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여러 차례 “선거연대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설 직전 당 기자간담회에서도 “(자민련과 힘을 합쳤던) 한나라당 이외에 단 한 번도 우리 힘으로 선거를 치렀지, 연대해서 선거 치른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철수·유승민’ 합작품인 바른미래당에 대해선 “일장춘몽”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도 “한국당은 우경화된 보수”라며 선거연대에 대해 선 긋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로 ‘묵시적 야권연대’인 무공천 카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홍 대표의 인재영입은 초반부터 삐걱했다. 서울시장 후보군이었던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말 공개적으로 “공직을 맡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며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이후 홍 대표의 인재영입은 ‘감감무소식’이다. 바른정당을 탈당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소득은 없는 상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60% 초반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수치다. 이대로라면 영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 특히 수도권에서 야권이 이기는 선거구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전국적인 선거연대는 아니더라도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만 무공천으로 묶어 ‘1 대 1’ 구도를 만들 것이란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는 수도권을 최소 공약수 삼아 한국당은 A 지역, 바른미래당은 B 지역만 후보를 내서 종국적으로 선거연대 효과를 노리는 전략이다. 서울시장은 안 전 대표, 경기지사는 남경필 경기지사로 묵시적 연대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야권의 수도권 무공천 시나리오는 최근 민주당 내부에도 공유됐다. 추미애 대표 등 당 지도부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이 1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야권이 결과적으로 묵시적 연대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복수의 서울시장 후보 캠프는 이미 야권의 무공천 카드에 대응하는 전략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공개적으로 안 전 대표를 향해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바른미래당도 ‘안철수 서울시장 카드’에 군불을 지폈다. 박주선 공동대표는 최근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50%를 넘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서울시장 인재영입 결과를 보고 유승민 공동대표와 상의 후 안 전 대표를 설득하기로 했다. 앞서 안 전 대표는 유 대표의 선거대책위원장 수락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의 플레잉코치 귀환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이에 대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도둑질도 너무 빠르다”고 힐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서울시장 출마 공식 선언이다. 당 내부에서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가 긍정적인 만큼, 안 전 대표의 최종 결심만 남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안 전 대표는 그간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 “당 결정에 따르겠다”며 백의종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안 전 대표는 이르면 3월 초 관련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최종 결심은 무공천 카드의 실현 여부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공학적 셈법으로는 매력적인 카드다. 지난해 5·9 대선에서 홍준표(20.8%)·안철수(22.7%)·유승민(7.3%) 후보가 서울에서 얻은 득표율은 50.8%였다. 문 대통령(42.3%)과 심상정(6.5%) 정의당 후보의 득표율(48.8%)을 웃돈다.
한국당이 제1야당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무공천 승부수를 던진다면,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 후보 vs 안철수’ 양자구도로 재편한다. 민주당 경선 결과에 따라 7년 만에 ‘박원순 vs 안철수’가 맞붙을 수도 있다. 이후 ‘양보 프레임’이 선거판을 뒤흔든다면, 박 시장이 의외의 일격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다. 민주당과 단번에 2파전 구도를 형성하는 데다, 당 최대 카드인 안 전 대표의 등판으로 당의 존재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안 전 대표 측근들은 서울시장, 서울 송파을로 나뉘지만, 명분 없는 후자보다는 실패해도 남는 전자를 택해야 한다는 기류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들은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절반을 넘었다”라고 말했다. 최근엔 안 전 대표 측이 서울시장 캠프 구성에 착수했다는 말도 들린다.
무공천 카드의 변수는 ‘홍심’(홍준표 한국당 대표 의중)이다. 제1 야당의 존재를 포기하는 승부수를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당 내부에 ‘홍준표로는 안 된다’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데다, 중진 의원들이 연일 연석회의를 요구하는 등 당 내부가 분열로 치닫고 있어 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2016년 4·13 총선 당시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도 극한 ‘친박(친박근혜) vs 비박(비박근혜) 갈등’ 끝에 무공천 카드를 던진 바 있다.
당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유승민 낙천’ 등 현역 의원을 줄줄이 배제하고 진박(진짜 박근혜) 후보를 공천하자, 이대로는 총선에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전략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홍 대표 역시 반문진영의 승리 및 당 공천 갈등 최소화 등 현실적인 명분을 담보해야만 무공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홍문표 한국당 사무총장은 선거연대에 선을 그으면서도 “군소정당이 살기 위해 정치적으로 어떤 요청이 먼저 들어온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설로 지방선거 전체 판이 커졌다. 이는 긍정적인 요소”라면서도 “안 전 대표의 당선 여부는 후보 구도에 달렸다. 다자구도면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 양자구도로 재편한다면 안 전 대표도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차기 국회의장 경쟁도 후끈…7선 이해찬 도전 여부 촉각 “포스트 정세균을 차지하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29일까지다. 다만 6·13 지방선거와 재보선 일정을 감안해 차기 국회의장 선출 시기는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121석)과 자유한국당(116석)의 의석수 차이가 5석에 불과, 현역 차출과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제1당이 뒤바뀔 수 있어서다. ‘여당이냐, 다수당이냐’는 국회의장 선출 때마다 불거진 해묵은 논쟁이다. 통상적으로 국회의장은 당 내부 경선을 통해 추천한 ‘다수당의 최다선 의원’을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추인한다. ‘야당 다수당’이 국회의장직을 차지한 선례는 정 의장 이외에도 있었다. 국민의정부 시절인 2002년 당시 ‘야당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박관용 전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추대했다. 현 민주당 내부에서 현역 의원 차출론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문희상·이석현(이상 6선) 박병석(5선) 의원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친노(친노무현)계인 문 의원의 강점은 ‘중량감’이다. 문 의원은 민주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비상대책위원장 후보 1순위로 거론됐다. 문 의원은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지난해부터 현역 의원들과 접촉면을 넓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현역 의원 가운데 80% 이상을 직접 만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장점은 ‘무계파 중도성향’이다. 관리형 리더십에 최적화됐다는 얘기다. 19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직을 무난히 수행한 점도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범주류인 박 의원의 강점은 ‘중재·타협’ 능력이다. 한중의원외교협의회장인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인 한중교류를 이끌 적임자라는 점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의 최대 변수는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7선)의 도전 여부다. 이 의원이 나설 경우 범주류의 표가 갈리면서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당은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서청원(8선), 김무성(6선), 심재철·원유철·이주영·정갑윤(5선) 의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이 중 서 의원은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 도전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 의원도 국회의장보다는 차기 대선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 국회 부의장인 심재철 의원과 직전 부의장이었던 정갑윤 의원 정도가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한 관계자는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의 방향타는 지방선거와 재보선 이후 각 당이 의석수 변화”라며 “각 당의 공천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각 당 후보군의 전략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