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야간경기만큼이나 강릉의 밤은 뜨거웠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을 펼치며 울고 웃는 올림픽. 하지만 세계인의 축제는 경기가 열리는 아이스링크나 설원에서만 뜨거운 것이 아니다. 경기를 마치고 축제를 찾은 이들은 여흥을 풀어야 한다. 먹고 마실 곳을 찾기 마련이다. 이에 ‘일요신문’은 빙상 종목 선수들이 주로 묵는 강릉 유천동 선수촌 일대에서 ‘올림픽의 밤’을 직접 온몸으로 체험했다.
#라운지바로 변신한 레스토랑
20세가 되기까지 강릉에서 나고 자란 기자에게 ‘유천동’은 어색한 지명이다. 이전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곳이다. 택지 개발과 올림픽 개최가 동시에 맞물리며 이곳에 선수촌이 건설됐다.
선수촌 부근은 이제 막 상권이 형성되는 시기다. 선수촌과 미디어촌은 아파트 형태로 건설됐다. 이들은 약 600m의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작은 상가들이 들어섰다. 심야시간 주류를 즐길 수 있는 점포는 6~7개 남짓이다.
지난 16일 새벽 2시경 선수촌 주변 상가에 도착했을 때 2~3개의 점포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울려 여전히 성업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강원도 강릉이 아니었다. 이태원 유명 라운지바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손님들도 외국인의 비율이 높았다. 약 50명의 인원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5명 정도였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술에 취해 상기된 얼굴로 일어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기도 했다. 손에는 맥주병이 들려 있었다.
올림픽 이전까지 레스토랑이었다는 주점은 이태원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했다.
종업원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의 영업 방침이 궁금했다. 이전까지 강릉에는 이 같은 라운지바 형태의 주점은 없었다. 종업원은 한마디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원래는 여기가 레스토랑입니다.” 짧은 대회기간 동안 외국인 손님들의 입맛에 맞춘 콘셉트 변경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보였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기에 바 주변을 서성이는 이들과 함께 어울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게를 둘러보니 테라스에도 천막과 난로가 설치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음악 소리가 작아 대화를 나누기도 편해 보였다. 2명으로 구성된 기자 일행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따로 재떨이가 놓여있지 않아 빈병 등에 재를 떨었다. 중간에 종업원이 찾아와 금연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알겠다는 대답만 할 뿐 연신 연기를 내뿜었다.
카운터로 찾아가 주문과 함께 바로 결제를 해야 하는 ‘선 결제’ 시스템이었다. 종업원은 “보시다시피 외국인 손님들 대부분이 정해놓은 자리 없이 돌아 다닌다. 이런 식으로 결제를 할 수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소주 안주로는 튀김류를 추천받았다. 주문이 밀려 튀김이 가장 빠르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주방에선 연신 감자튀김이 튀겨져 나오고 있었다.
#국내거주 영어교사들의 모임?
옆자리에선 백인 남성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하게 됐다. 대회에 참가하는 ‘올림피언’과 만남을 기대했지만 늦은 시간 탓에 선수들은 주점에 없는 듯했다.
주점에 남아있는 이들 절반 정도는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출신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마치 전국 영어 선생님 모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들은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질문에 미국이 아닌 수원, 제주, 부산, 춘천 등 국내 지역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 선생님은 ‘내 부산 악센트를 들으면 모르겠느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 부대’가 전부는 아니었다. 독일에서 온 촬영 감독, 노르웨이 출신 방송 리포터 외에도 캐나다, 미국 등지의 관광객도 많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이 소통하는 언어는 역시 영어였다. 영어의 파워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렸다. 눈만 마주치면 하이파이브를 하며 친구가 되는 분위기였다. 기자가 스스로를 지역 출신(local boy)라고 소개하자 더 큰 환영을 받기도 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평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국내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졌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단일팀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반응은 일단 ‘놀랍다(amazing)’였다.
다른 의견은 없었다. “멋진 일이다. 단일팀 결성으로 세계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포츠적 관점에서 선수들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는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큰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던 미국 출신 영어교사 벤자민, 프랭크, 노르웨이 기자 바스티안은 기자 일행과 한잔 더 마시기를 원했다. 이미 유천동 일대는 편의점의 불만 밝혀진 상태였다. 택시를 타고 상권 밀집 지역인 교동으로 향했다. 직선거리로 약 1.3km 떨어진 곳이다.
영어교사들을 뒤에 태운 택시기사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했다. “20년 정도 여기서 택시를 몰며 요즘 가장 많은 외국인을 태우고 있다”는 그는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이나 술 취하면 다를 거 없더라”라며 웃었다. 뒷자리 영어교사들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기자의 길 안내가 마음에 들었던지 이들은 영어 이름이 무엇인지, 없으면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들은 ‘강해보이는 그리스풍 이름’이라며 ‘트로이(Troy)’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하지만 기자가 ‘고맙지만 영문과 출신이라 외국인을 상대할 기회가 꽤 있었음에도 영어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이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들은 “당신 말이 전적으로 맞다”며 한국 이름을 묻고는 “너무 멋진 이름이다. 나는 너를 한국이름으로만 부르겠다. 지금 내 제자들 모두가 영어 이름이 있다. 단 한 명만이 한국 이름을 고수하는데, 그 아이 정말 멋진 아이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선수촌 인근 국가홍보관도 핫플레이스다. 16일 밤 체코 홍보관에서 방송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회 은메달리스트 마르티나 사블리코바.
작은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만취한 듯 보이는 한국인이 캐나다 출신 관광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안경이 날아갔지만 맞은 이도 만취한 탓에 상황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그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수의 외국인들이 주취 폭력을 적극적으로 말렸고, 경찰이 출동하며 상황은 마무리됐다. 폭력을 휘두른 장본인은 순찰차에 태워졌다.
상황이 마무리된 후 북한 인공기가 그려진 아이스하키 유니폼을 재킷 안에 받쳐 입은 백인이 동석했다. 40대로 보이는 그는 술잔을 들며 한국어로 ‘건배!’를 외치기도 했다. 유니폼의 출처와 그의 출신지를 영어로 물었다. 그는 또렷한 발음으로 “평양에서 왔습네다. 조선말, 조선사람보다 잘합네다”라고 말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던 북한 말투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어 수차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평양에서 왔습네다”뿐이었다. 다른 외국인들과의 대화에선 자신을 ‘캐나다사람(Canadian)’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의 목에는 체코라고 적힌 AD 카드가 걸려 있었다. 증폭되는 궁금증에 질문을 이어갔다. 그가 약간 거부반응을 보이자 기자 일행이 “이 친구는 기자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짜 기자야?”를 연신 외쳐댔다. 그 후로 그는 말을 아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체코 AD카드를 목에 걸고 북한말을 하며 캐나다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났다.
새벽 여섯시가 되자 주점도 문 닫을 준비를 했다. 술값을 계산하며 주점 운영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는 “유천동은 이전부터 외국 손님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쪽은 그동안 없었다. 오늘부터 이런 분들이 오시기 시작했다”면서 “많은 외국손님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평소 가게 운영과 큰 다를 바 없었다”고 설명했다.
술집에 있던 15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모두 작별인사를 하며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했다. 북한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캐나다인도 한 한국인 일행과 긴 작별인사 시간을 가졌다. 택시를 잡으려는 그들을 쫓아 문제의 캐나다인에 대해 물어보자 “우리도 모른다. 오늘 처음 만난 분인데 북한말을 해서 우리도 깜짝 놀랐다”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올림픽 한창인데 ‘강릉역 여인숙촌’은 성업중? 강릉역 일대엔 여인숙촌이 존재한다. 이곳은 여성들이 각자 방에서 대기하다 숙박업소 업주의 호출을 받고 출장을 가는 형태의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이다. 4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강릉역과 인접해 있다. 야간 시간대에는 강릉역 광장에서도 호객행위를 하는 중년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나가는 남성들을 붙잡고 ‘은밀한 제안’을 한다. KTX가 다니는 강릉역으로 새 단장을 마친 현재도 이 같은 불법 영업은 계속되고 있을까. 설날인 16일 늦은 밤 찾아간 강릉역 일대는 과거와 다르게 변해 있었다. 강릉역에서 나오자마자 볼 수 있었던 호객꾼들은 자취를 감춘 듯했다. 역사와 가까운 방면에 있던 오래된 숙박업소들이 사라지고 그간 강릉에서 보기 힘들었던 대형 오피스텔이 건설 중이었다. 하지만 강릉종합터미널과 강릉경찰서를 잇는 강릉대로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는 호객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보다 인원이 줄어든 듯 보였지만 이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대로를 따라 걷던 기자에게도 “어디서 자냐”는 말이 쏟아졌다. “올림픽인데 장사하냐”고 되묻자 한 호객꾼은 당당하다는 어투로 “우리는 숙박업소인데? 잠을 어디서 자냐고?”라고 답했다. 몇 걸음을 옮기다 또 다른 호객꾼에게 붙잡혔다.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배시시 웃으며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기자임을 밝히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으나 그는 대화를 거부했다. [상] |
선수촌·올림픽파크 일대에서 ‘위치기반 소개팅 어플’ 설치해보니 매 올림픽 시즌이면 ‘수만 개의 콘돔이 배포됐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수백, 수천 명의 건강한 젊은 남녀가 모이는 곳에 만남이 이뤄지고 감정이 싹트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술의 발달로 ‘올림피언’들의 만남에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이용되기도 한다. 지난 2016 리우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 위치기반 소개팅 어플 사용량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경기장 출입이 가능한 AD카드를 발급받지 못한 기자는 올림피언과 짧은 대화라도 나눠볼 요량으로 소개팅 어플을 설치했다. 강릉 선수촌 주변과 올림픽파크 등을 맴돈 끝에 많은 선수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플을 가동시킨 기간은 설 연휴 중 3일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약 20명의 올림피언들을 어플 내에서 볼 수 있었다. 메달리스트 등 많은 주목을 받은 선수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이 실제 선수인지 확인을 위해 선수단 명단과 대조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칠레 등 다양한 곳에서 한국을 찾은 이들은 모두 자신의 국적과 출전 종목을 당당히 밝히고 있었다. 종목 또한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봅슬레이, 피겨스케이팅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어플 구동에 익숙지 못해 여성을 대상으로만 검색이 가능했다. 남성까지 합하면 더 많은 선수들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특히 어플에서 대한민국 선수도 한 명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해 더욱 눈길이 갔다. 이 어플은 양측이 모두 호감을 표시해야 대화가 성사되는 시스템이다. 새롭게 발견되는 선수마다 열심히 ‘좋아요’를 눌러댔다. 하지만 끝내 단 한 건의 대화도 성사되지는 않았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