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10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팬들도 보살팬으로 거듭났다. 일요신문DB
# ‘5886899678’ 한화가 잃어버린 10번의 가을
최근 가장 암흑기가 길어지고 있는 구단은 한화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실패하면서 10년 연속 가을잔치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한때는 한화도 당연한 듯 가을 무대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전신인 빙그레 시절에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한 리그 최강 팀 가운데 하나로 군림했다.
1986년 창단 팀으로 1군 무대를 밟은 뒤 3년 만인 1988년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992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 가운데 세 번이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히곤 했지만, 1999년에는 마침내 우승의 한도 풀었다.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이 버틴 마운드에 장종훈, 강석천, 송지만, 제이 데비이스가 포진한 타선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4승 1패로 롯데를 꺾고 창단 1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때만 해도 한화가 그 후 20년 가까이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을 터다. 2002년과 2003년에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꾸준히 강팀이라는 이미지는 유지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섰고, 특히 2006년에는 다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2007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이후 한화의 포스트시즌 역사는 업데이트를 멈췄다.
2008년엔 정규시즌 5위로 아쉽게 포스트시즌행 티켓을 놓쳤지만, 2009년엔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면서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다섯 번이나 꼴찌에 머물렀다. 8개 구단 체제였던 2011년 LG와 공동 6위에 오른 게 그 기간 최고 성적이다. 리그 최강 에이스인 류현진의 존재도 소용이 없었다. 2013년엔 9개 구단으로 팀이 하나 더 늘었는데도 여전히 순위표 가장 마지막 자리를 지켰다. 2015년엔 10개 구단 가운데 6위까지 올라서면서 희망의 동아줄을 잡는 듯했지만, 2016년 7위와 2017년 8위로 다시 한 계단씩 내려갔다.
그 사이 한화의 감독은 계속 바뀌었다. 감독과 감독대행을 합하면 무려 7명이나 된다. 두 명의 감독은 중도 퇴진했다. 마지막 포스트시즌을 함께한 김인식 감독이 2009시즌을 끝으로 물러난 뒤 한대화 감독, 한용덕 감독대행, 김응용 감독, 김성근 감독, 이상군 감독대행이 차례로 감독석을 거쳤다. 김성근 감독이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시기에는 김광수 감독대행도 지휘봉을 잡았다.
# 한화보다 먼저 10년 터널을 거친 LG
한화 이전엔 LG가 있었다. LG는 한화와 마찬가지로 10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역대 최장 기간 타이 기록이다.
1990년대 ‘신바람 야구’를 펼치며 이름을 날리던 LG다.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1997년과 1998년에는 2년 연속 준우승을 했다. 2002년 역시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그러나 이후 오랜 시간 암흑기를 거쳤다. 2003년 곧바로 6위까지 떨어지면서 3년 연속 여섯 번째 자리에 머물렀다. 2007년 잠시 포스트시즌 문턱인 5위까지 반등했지만, 이듬해인 2008년엔 급기야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그 후에도 LG의 성적은 8개 팀 가운데 7위-6위-6위(공동)-7위였다. 한화와 마찬가지로 LG 사령탑도 계속 교체됐다. 이광환 감독-이순철 감독-양승호 감독대행-김재박 감독-박종훈 감독까지 다섯 명이 차례로 지휘봉을 잡았다가 아쉬움을 풀지 못하고 물러났다.
LG가 마침내 포스트시즌 탈락의 굴레를 탈출한 것은 2013년이다. 2012년 LG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기태 감독이 이듬해 LG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하면서 최종 순위는 3위가 됐지만, 10년간 가을야구 경험을 하지 못했던 선수들에게는 충분히 감격할 만한 결과였다. LG는 2014년에도 4위에 올라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016년 역시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쳐 가을 야구 티켓을 따냈다.
# 롯데의 슬픈 전화번호 ‘888-8577’
각 구단 암흑기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숫자도 있다. 전화번호를 연상케 하는 ‘8888577’. 롯데의 2000년대 초중반 팀 순위를 표현한 숫자들이다.
롯데는 1999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던 팀이다. 1997년과 1998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도 1999년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 부산 팬들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반짝 활약에 불과했다. 롯데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역대 최장 기간 연속 최하위다. 2005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에이스 손민한을 앞세워 5위까지 올라섰지만, 2006년과 2007년 다시 7위로 내려앉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독 교체 역시 수순이었다. 김명성 감독-우용득 감독-백인천 감독-김용철 감독대행-양상문 감독-강병철 감독이 차례로 거쳐 갔다. LG, KIA와 함께 3대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꼽히는 팀이 하염없이 몰락하자 야구팬들은 어느덧 롯데의 7년 순위를 이어 붙여 놀림감으로 삼기 시작했다.
불명예스러운 ‘전화번호’는 결국 2008년에야 멈췄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뒤다. 로이스터 감독은 ‘노 피어’ 정신을 강조하면서 선수단이 두려움 없이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독려했다. 유망주에 머물던 선수들은 잇따라 개인 최고 성적을 내면서 부산에 다시 야구 열풍을 몰고 왔다. 신문지 응원, 쓰레기봉투 응원, ‘마!’ 구호를 비롯한 롯데 팬들만의 응원 문화도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롯데는 결국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이후 5년 연속 가을잔치에 초대 받았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다시 4년 연속 가을야구를 건너뛰는 아픔을 맛봤지만, 지난해 다시 정규시즌 3위로 올라서면서 제2의 암흑기를 차단했다.
# KIA와 두산에게도 암흑기는 있었다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 우승(10회)에 빛나는 KIA도 가을야구를 하지 못해 울던 시절이 있었다. 전신 해태 시절 구단 재정 악화로 선수를 줄줄이 팔아 넘겨야 했고, 결국 1998년부터 KIA로 인수된 2001년까지 4년 연속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또 2012년부터 2015년까지도 4년 연속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나 KIA는 20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면서 다시 포스트시즌의 맥을 이었고, 지난해에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까지 일궜다.
포스트시즌 단골팀인 두산 역시 암흑기의 위기는 겪었다. 전신 OB 시절이던 1988~1992년에 다섯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했다. 구단 역사상 최장 기간 암흑기다. 1990년과 1991년엔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는 좌절도 맛봤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선 좀처럼 하위권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2004년부터 14년간 단 세 시즌(2006·2011·2014년)을 제외하고 모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삼성은 포스트시즌에 그야말로 ‘밥 먹듯이’ 나가던 팀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35년간 단 일곱 시즌(1983년, 1994~1996년, 2009년, 2016·2017년)만 가을야구를 쉬었다. 가장 오래 포스트시즌에 못 나간 기간이 고작 3년에 불과하다. 순위도 1994년과 1995년 5위, 1996년 6위였다. 단 한 번도 꼴찌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삼성은 바로 ‘지금’이 창단 후 최악의 역사를 남길 위기다. 지난 2년 연속으로 10개 구단 중 9위에 그쳐 역대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승률 0.455도 구단 역사상 가장 낮았다. 올해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다면 또 한 번 3년 연속 실패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2000년에 창단한 SK는 초창기인 첫 해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 가을잔치에 나서지 못한 것이 가장 긴 기간이다. 넥센은 2008년 창단 후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013년부터 다시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서면서 암흑기를 벗어났다.
2013년 1군에서 출발한 NC는 첫 해를 6위로 마친 뒤 2014년부터 계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세를 뽐내고 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놀라운 약진이다. 반면 kt는 2015년 1군에 진입했지만,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면서 가을 야구 문턱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 암흑기 거치는 팀의 공통점은?
암흑기에 빠진 팀에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한화, LG, 롯데처럼 감독이 자주 바뀐다. 구단은 하루 빨리 성적을 끌어 올려주길 바라면서 새 감독을 영입한다. 하지만 이미 망가져 있는 팀을 재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감독들의 압박감은 커지고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구단과 팬들은 오래 기다려줄 생각이 없다. 결국 새 감독도 ‘실패’라는 낙인을 찍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악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외부에서 ‘우승 청부사’로 알려진 명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한화는 암흑기에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 1·2위 감독인 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을 차례로 영입했고, LG 역시 현대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김재박 감독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좋지 않았다. 오히려 베테랑 감독 세 명의 승승장구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다. 팀의 상황과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유명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공격적인 외부 선수 영입도 오랜 기간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한 팀들의 고육지책 가운데 하나다. 한화는 최근 수년간 이용규, 정근우, 권혁, 배영수, 송은범 등을 FA로 영입하고, 특급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엄청난 몸값을 쏟아 부었다. 롯데도 암흑기 시절 외야수 정수근에게 거액의 몸값을 안겼고, LG도 한때 ‘빅 5’로 불리던 국가대표급 외야수 다섯 명을 한꺼번에 보유했을 정도로 선수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결국 투자의 효과는 크게 보지 못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30승’ 장명부부터 ‘소년 가장’ 류현진까지, 암흑기의 에이스들 누구? 야구는 선수가 한다. 그러나 선수 한 명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강한 에이스라도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 수는 없다. 오히려 불펜과 타선, 수비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짐을 떠안는다. ‘암흑기의 에이스’는 그래서 비운의 존재다. 삼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태평양 시절이던 1988년까지 7년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창단 2년째인 1983년에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재일교포 투수인 장명부는 그해 전체 100경기 가운데 60경기(선발 44경기)에 출장해 427⅓이닝을 던지면서 30승을 올렸다. 평균자책점은 2.34. 현대 야구에선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숫자들이다. 첫 해 15승 65패로 승률 0.188을 기록했던 삼미는 전체 승수의 58%를 책임진 장명부의 활약 덕분에 52승 1무 47패(승률 0.525)로 반등했다. 전기리그 2위, 후기리그 3위의 감격적인 순위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장명부 혼자 힘으로 팀을 정상으로 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장명부의 어깨가 식자 삼미도 이듬해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손민한은 4년 연속 최하위를 이어가던 롯데가 ‘8888’ 행진을 멈추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투수였다. 그는 2005년 28경기(선발 26경기)에 출전해 18승 7패 평균자책점 2.46을 올렸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1위에 등극했다. 롯데는 에이스의 위용을 앞세워 조금씩 승수를 늘려 갔지만, 결국 5위에 멈추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한을 풀지는 못했다. 그 결과 손민한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 배출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남게 됐다. 비록 가을 야구는 하지 못했어도, 손민한이 롯데 팬들에게 추억 속 에이스로 남게 된 계기였다. 한화 이글스의 소년 가장 시절 류현진 류현진은 공교롭게도 한화 암흑기의 시작을 한복판에서 함께한 에이스다. 입단 직후인 2006년과 2007년에는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지만, 입단 당시 함께했던 쟁쟁한 선배들이 모두 은퇴하거나 기량이 쇠퇴한 2008년부터는 류현진이 ‘소년 가장’ 역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탈삼진 왕에 오른 2009년 팀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무려 12패를 떠안은 게 그 증거다. KBO 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2년도 불운했다. 류현진은 그해 27경기에 선발 출장해 182⅔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했다. 그러나 승수는 단 9승뿐. 10승도 채우지 못했다. 통산 100승을 완성하려던 그의 희망은 단 2승이 모자라 불발됐고,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기록도 무산됐다. 그는 KBO 리그 마지막 등판에서 10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도 결국 시즌 열 번째 승리를 완성하지 못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류현진은 그 후 LA 다저스로 떠났고, 한화는 여전히 가을야구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