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청주대 여학생 상습 성희롱·추행’ 교수로 지목됐던 배우 조민기 측의 공식입장이다. 공식입장에서 수차례에 걸쳐 강조된 문구는 “성추행은 루머이며 이로 인한 중징계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족의 고통까지 들먹이며 결백을 주장한 조민기의 이 같은 공식입장은 사실이었을까?
청주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조민기의 징계 의결 요구안. 사진=청주대
반은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학교 측이 조민기의 징계 사유를 ‘성추행’으로 명백히 규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난 1월 청주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사회 회의록에서 조민기의 징계 사유는 ‘성희롱에 해당하며 학교의 내외를 불문하고 교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경우’로 적시돼 있다.
조민기 측은 이런 내용을 교묘하게 이용해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수업 중 사용한 언행이 수업과 맞지 않는다는 대학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희롱을 ‘언어적 행동’에 국한하여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점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강제적인 신체 접촉이 있었음에도 학교가 성희롱으로만 판단한 것은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함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실제 조민기가 지난해 1~3월 겨울방학 공연을 준비하던 한 여학생의 가슴을 한 차례 친 사실이 청주대 징계위에서도 인정됐지만 이를 추행으로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주대 예술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에 여학생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조민기.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이에 대해 청주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추행의 경우 (협박이나 위력 등) 강제성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피해 학생들로부터 받았던 진술에는 그와 같은 내용이 없었다. 다만 성희롱은 넓은 범위로 강제성이 없는 성적·신체적 접촉이나 발언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성희롱으로 판단해 징계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추행과 희롱을 구분하는 범위에서 좀 더 포괄적인 성희롱으로 판단했을 뿐, 조민기의 주장대로 “성추행 사실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거듭된 부인과 교묘한 말장난으로 곤욕을 피하려다 역풍을 맞은 조민기는 촬영 중이던 OCN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하차한 뒤 충북경찰청의 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연극·영화계 미투’ 리스트에 오른 또 다른 ‘유명인 가해자’들은 어떨까. 피해자에게 부랴부랴 해명했다가 언론에 가해 사실이 보도되자 갓 개봉한 영화를 놔두고 출국한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배우 본인도, 소속사도 침묵만 지키다가 결국 가해 사실이 인정되지도 않았는데 실명부터 공개된 경우도 있었다. 전자는 영화 ‘흥부’의 감독 조근현이고 후자는 ‘천만 요정’ 배우 오달수다.
조근현의 경우는 지난해 12월 뮤직비디오 촬영 캐스팅을 위해 신인 여배우들을 면접하던 중 “여배우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문이 알려지자 그는 지난 2월 5일 이후 VIP시사회, 인터뷰, 무대 인사 등 영화 ‘흥부’의 홍보 일정에서 전면 배제됐다. 현재는 미국으로 출국한 뒤 두문불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달수는 아직 모호하다. 피해 사실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거나 다수의 유사한 사례인 것도 아니다. 단서라고는 앞선 ‘미투’ 인사들의 기사에 “유명한 코믹 연기 조연 배우가 여자 후배들을 은밀히 상습적으로 추행했다”라는 익명의 폭로 댓글이 달린 것뿐이다.
조민기처럼 ‘강한 부정’도 없고, 조근현처럼 피해자에게 해명 또는 사과를 한 정황도 없다. 피해자조차 특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명인의 실명부터 공개된,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도리어 배우 본인과 소속사까지 해명조차 않고 잠적하면서 의혹에 물음표만 더했다.
연락두절이 이어지자 ‘배우 오 아무개 씨’에서 결국 ‘오달수’라는 이름 석 자가 그대로 보도됐다. 그럼에도 오달수 측은 묵묵부답이다. 오달수는 물론, 소속사 관계자들 역시 모두 전혀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 상황.
한 방송계 관계자는 “침묵을 지킬 사안이 있고 아닌 게 있는데 배우들에게 제일 치명적인 게 성추문이 아닌가”라며 “실명까지 공개된 이상 침묵이나 회피가 능사가 아닌데 보는 입장으로서도 답답할 따름”이라며 오달수와 소속사의 대처를 지적하기도 했다.
배우 최율이 자신의 SNS에 성추행 의혹 배우 ‘J 씨’를 배우 조재현으로 지목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한편 오달수와 유사한 사례로 배우 조재현이 있다. 2013년 방송 스태프로 일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유명 배우 J 씨가 그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당시 J 씨 측은 즉각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던 바 있다. 그러나 배우 최율이 2월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너 언제 터지나 기다렸다”라며 직접 배우 조재현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결국 조재현도 성추행 의혹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고 말았다.
사안이 커지자 최율은 게시물을 삭제하고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돌렸다. 그러나 조재현의 소속사 측은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만을 밝혔으며 관련 사실에 대해서는 배우와 함께 또 다시 침묵을 고수해 빈축을 사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