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데다 3월 봄개편 시즌까지 맞물려 각 방송사는 드라마, 예능 등 주요 프로그램을 재정비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올 한 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편성 등을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다.
# 드라마…논란과 공백을 메워라
동계올림픽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영역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콘텐츠의 속성상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4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전 프로그램 1위를 고수하던 KBS 2TV ‘황금빛 내인생’의 시청률이 29.3%까지 하락한 것이 그 예다. 폐막식의 여파도 있었지만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는 것이 업계 반응이다.
사진=MBC ‘데릴남편 오작두’ 홈페이지
잃어버린 시청률을 찾아야 하는 ‘황금빛 내인생’은 MBC ‘데릴남편 오작두’라는 복병을 만난다. 3월 3일 첫 방송되는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3.9%까지 치솟았던 드라마 ‘돈꽃’의 후속작이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하다.
주중 미니시리즈 시장도 새 장을 연다. 지난해 말 이후 7주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MBC가 각각 월화극 ‘위대한 유혹자’와 수목극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를 3월 초부터 편성한다. 그동안 ‘하얀거탑’ 리마스터링 버전이 방송돼 3% 안팎의 시청률을 거두며 호평 받았지만, 타 방송사 신작들과의 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두 드라마의 성공 여부가 전체 드라마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라 예상된다. 경영진 교체 후 절치부심하는 차원에서 7주간의 공백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던 MBC 입장에서도 두 드라마가 부진하면 ‘드라마 명가’라는 자존심 회복이 요원해질 것이다.
사진=KBS 2TV ‘추리의 여왕 시즌2’ 홈페이지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미투 운동’ 역시 드라마 시장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존재라 할 수 있다. 4%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행보를 보이던 tvN 월화극 ‘크로스’는 주연 배우 조재현이 중도 하차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미 촬영된 분량은 최대한 덜어내고 내용 전개를 바꿀 수는 있지만, 조재현의 성추문으로 인해 실추된 ‘크로스’의 이미지는 손쓸 방법이 없다. 3월 3일 첫 방송을 앞둔 OCN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 측도 출연 배우인 조민기가 청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직격탄을 맞았다.
이 외에도 아직 방송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오달수가 출연하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측도 그의 출연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달수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곧바로 “내가 피해자”라며 한 여성이 등장해 진실게임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의 지목되면 사실 여부를 떠나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된다”며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이 출연하는 작품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 예능…올림픽 스타를 잡아라
동계올림픽 기간 중 결방 및 편성 변경으로 맞서던 예능가 역시 봄 개편철을 맞아 새 단장에 나선다.
신규 예능도 여럿 론칭된다. 이미 파일럿 방송돼 호평을 받았던 KBS 2TV ‘하룻밤만 재워줘’와 ‘1%의 우정’이 전파를 탄다. MBC는 ‘전지적 참견 시점’을 새롭게 편성하며 변화를 준다.
특히 MBC는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년간 이 프로그램을 이끌던 김태호 PD는 3월말까지 연출한 후 하차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그의 후임은 ‘나 혼자 산다’ 등을 연출했던 최행호 PD가 맡는다.
김태호 PD 하차가 도미노 현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등은 김 PD와 ‘무한도전’을 함께 이끌어 온 개국공신이다. 김 PD에 대한 믿음으로 힘든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이들이 김 PD와 함께 하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MBC ‘무한도전’ 인스타그램
‘무한도전’의 연출자 및 출연자 변동은 시청률과 광고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김 PD가 새로 맡는 프로그램 역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방송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당분간 예능가는 올림픽이 낳은 스타들을 잡기 위한 섭외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영미~”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은메달을 거머쥔 여자 컬링 대표팀을 비롯해 아시아 선수 최초로 썰매 종목 금메달을 일군 스켈레톤의 윤성빈,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인 이승훈, 최민정-심석희-김아랑 등 여자 쇼트트랙 대표 등은 이미 방송가의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올림픽과 같은 대형 국제 경기가 끝난 후에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스포츠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게스트로 출연한다”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능이 당분간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