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중국이 점령한 티베트로 돌아갈 수 없어 떠도는 어린 린포체와, 혼신을 다해 그 린포체를 봉양하는 나이든 승려의 인연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맑은 눈물이 흘렀다. 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인연이 아름다워서,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길을 만들며 자기 사랑, 자기 삶을 지켜가는 듬직함에 감동해서. 문창용 감독은 무슨 인연으로 저들과 9년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간 9년이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길고도 긴 시간이었겠지만 삶의 관점에서는 축복받는 시간이었으리라.
티베트 문화에서는 삶의 큰 스승을 린포체라고 한다. 전생에서부터 오랫동안 수행을 해온 린포체는 중생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교화하는 존재다. 린포체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만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린포체는 태어난다.
어린 린포체 앙뚜는 전생에 그가 살았다는 티베트 캄을 그리워한다. 중국이 점령해버려 들어갈 수도 없는데. 그런데 그를 봉양하는 늙은 스승이 대단하다. 그는 대책도 없이, 어쩌면 무모하게 사원 하나 믿고 어린 린포체를 모시고 3000km나 되는 티베트 캄행을 하기로 결단한다.
눈밭에 푹푹 빠진 어린 린포체의 양말을 벗기며 스승이 “아휴, 발 냄새!”라고 하자 어린 린포체가 잠시 정색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많이 걸어서 그런 거잖아요. 나쁜 마음으로 하지 마세요!”
그 말은 문맥상, 나쁜 마음으로 하는 거면 안하는 게 낫다는 뜻이었다. 누가 들어도 ‘린포체’의 말이었다. 그리고 린포체는, 곧 발을 비벼 열을 내주는 스승이 고마워 깔깔거리는 아이로 돌아갔다.
영화는 끝났는데, 나쁜 마음으로 하지 말라는 12살 린포체의 말이 자꾸자꾸 내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 싫었으나 어쩔 수 없어 할 수 없이 했던 일이 우리를 얼마나 억울하게, 무력하게 만들었는가.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안할 수 있는 것이 실력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충격을 받았다.
비바람 눈보라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늙은 스승은 불어보라며 소라나팔을 건넨다. 당신이 제자들을 부르는 소리가, 린포체의 간절한 마음이 티베트 캄까지 전해질 거라고.
그런 스승과 린포체의 일심 때문이었을까. 티베트 접경 지역의 한 사원에서 린포체를 알아보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그를 그렇게 믿고 보살펴준 스승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함께 살아서 행복했다며, 그래서 참으로 고마웠다고 말하는 스승의 마지막 말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울었다. “당신은 당신의 사원을 찾아갈 겁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