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후를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인생 선배들은 직장인이 우선 버려야 할 아이템으로 불필요한 옷가지나 책을 꼽는다.
60세가 넘어 회사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은, 임직원을 제외하면 거의 드물다. 인기 샐러리맨 만화 ‘시마 과장’의 원작자 히로카네 겐시(71)는 이렇게 조언했다. “정년을 앞두고 ‘출세의 길에서 벗어나 있다’고 느낀다면 다른 행복의 기준을 세워라.”
이를 위해선 그는 “무엇보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을 돌아보고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함으로써 홀가분해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리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만큼의 시간을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저명한 정신과의사 호사카 다카시(66)는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간이나 물건, 시간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서툴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만일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라”고 충고했다. 특히 “정년 후에도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길 바란다면 현역시절부터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 직장인이 버려야 할 물건들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정리하면 좋을까. ‘40세부터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는 습관’의 저자 사사키 쓰네오(74)는 인생 선배로서 “정리의 시작은 물건 버리기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역할이 끝난 물건은 버리거나 처분하는 습관이 기본. 그 중에서도 직장인이 가장 착수하기 쉬운 것이 바로 책이다. 배움에 열심인 사람일수록 책이 많다. 사사키 씨 또한 취미가 독서다. 하지만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았다. ‘서재 책꽂이는 1000권 이내, 그 이상 늘어나면 처분한다.’ 덕분에 이사할 때도 수월해졌다.
인생 선배들은 책 이외에도 직장인이 버려야 할 아이템으로 옷을 꼽았다. ‘비싼 옷이니까’ ‘다이어트를 해서 다시 입어야지’ 등등 우리는 여러 핑계를 대며 옷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엔 입지 못할뿐더러, 옷장 안에서 원하는 옷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1년 동안 입지 않는 옷이 있다면 과감히 버려라. 상태가 좋은 옷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사카 씨는 “옷장을 정리하면 머릿속도 정리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멋을 내고 싶은 마음까지 버려선 안 된다. 무리하게 비싼 물건은 사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지만, 가령 유행을 덜 타는 선글라스라면 하나쯤 호화로운 것으로 오래 소유하는 걸 추천한다. 이는 수입이 줄어드는 정년 후에도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테크닉이다.
“상장이나 성적표 등의 물건도 직장인들이 버려야 할 아이템”으로 꼽힌다. “과거의 노력들은 지금 자신 안에 축적돼 있으니 ‘증명서’는 불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연하장, 명함 같은 물건도 인맥과시를 위한 자기만족용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연락을 하지 않는 상대의 명함이라면 처분하는 게 좋다.
# 직함에 대한 집착은 백해무익
인생 후반전을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들은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 않는다. 히로카네 씨는 과거 자신이 출연했던 “텔레비전 방송 녹화테이프를 전부 버렸다”고 밝혔다. 지금은 녹화도 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고 싶다. 옛날의 내 모습에만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추억과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일은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사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정년을 맞아도 과거의 직함에만 매달릴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일단 회사를 관뒀다면 과거 직함이 뭐였든 내려놓아라.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에 사사키 씨는 “많은 사람들이 집착하기 쉬운 건 역시 일에 관련된 추억이다. 과거 다녔던 회사나 골프대회에서 받은 상장을 자랑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어떤 인격을 갖췄나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인생 후반전 인간관계 ‘양보다는 질’
SNS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친구 맺기에 열을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히로카네 씨는 “친구가 많다고 해서 행복이 커지는 건 아니다”고 단언한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친구가 많은 편이 유리할 때가 있다. 특히 사업이나 업무 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포지션이 명확해진다. 만일 더 이상 위로 올라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경우, 무리해서 인맥을 넓힐 필요는 없다. 소수라도 믿음직한 친구가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에도 정리가 필수. 인간관계를 정리하면 정년 후 관혼상제에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따른다.
# 아내와 적정 거리 좋은 관계를 유지
은퇴 후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상대는 당연히 배우자다. 정년을 앞둔 남편들 사이에서는 “아내가 노후의 생명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히로카네 씨는 “현역 시절부터 아내와 50 대 50의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아내에게 의존하는 것은 금물. 그런 균형을 취하려면 남편도 가사 일에 참여해야 한다. 가령 요리가 서툰 사람은 설거지나 장보기 등의 분업을 하는 편이 좋다.
적정한 거리감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고생한 만큼 정년 후에는 모든 걸 함께하겠다’는 발상은 위험. 아내에게도 아내만의 교류관계가 있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선 아내와 별도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두는 것을 권한다. 가장 추천하는 커뮤니티는 ‘개호(간호) 관련 자원봉사’ 참가다. 언젠가 스스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인생 선배들은 “회사가 종적 사회라면, 가족은 횡적 사회다. 아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즐겁게 정년을 맞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