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로 구성된 컬링 대표팀을 향한 인기는 좀처럼 가실줄 모르고 있다. 누리꾼들은 김은정 선수를 포함해 대한민국 컬링 대표팀에 대한 패러디한 사진과 글을 쏟아내며 ‘국민 영미’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질세라 기업들도 ‘영미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놀이공원, 홈쇼핑, 프로축구 구단 등 너도나도 영미를 활용해 이벤트를 선보이고 있다. ‘일요신문i’가 각양각색 영미 마케팅을 소개하고 뒷이야기를 전한다.
컬링 여자 대표팀에서 스킵을 맡고 있는 김은정 선수 경기 모습, KBS 방송화면 캡처
위 사진은 김은정 선수가 무릎을 세우고 앉은 자세로 스톤을 던진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장면으로 평창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뽑힌다. 사진처럼 ‘안경선배’ 김은정 선수가 목이 터져라 ‘영미’를 외치면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 선수의 팔동작은 더욱 빨라진다.
선수들이 막대 모양의 브룸(broom)으로 강렬한 스위핑(sweeping)을 시작하는 것으로 김은정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외치는 ‘영미 헐!’은 스위핑을 빨리하라는 의미이다. ‘영미야~’라고 부드럽게 부르는 것은 라인이 안정돼 있으니 조금씩 잡아가라는 뜻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컬링 여자 대표팀의 은메달 수상 장면, MBC 영상 화면 캡처
김은정 선수가 단정적인 어조로 ‘영미야’라고 하는 것은 ‘빨리 닦아’라는 뜻이며, “영미~ 영미~ 영미~”를 반복하는 것은 “제발 좀 빨리 닦아 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영미 작전’은 기가 막혔다. 컬링대표팀이 역대 최초로 동계올림픽 은메달을 거머쥔 일등공신이 됐다.
동계올림픽마다 금밭을 선물한 쇼트트랙 선수들에 비하면, 컬링 여자 대표팀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림픽 중반부터 여자 대표님의 막강한 실력이 점차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선수는 물론 감독까지 모두 김 씨로 이루어진 ‘팀 킴’은 이제 대세다. 외신은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에서 온 ‘팀 킴’이 컬링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며 선수들에게 ‘갈릭 걸스’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와 관련된 패러디물도 넘쳐나고 있다.
‘영미’ 패러디물,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 사진은 김은정 선수가 ‘영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간절한 목소리가 표정에서 묻어나온다. 컬링 대표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포스터 형식의 패러디물도 있다. “방과후 컬링을 평창 올림픽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갈릭걸스“라는 문구를 담은 ‘컬링온’이 주인공이다.
영미 패러디물 포스터,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영미’는 기업 마케팅에도 흥미로운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롯데월드는 지난달 26일부터 ‘내 이름은 영미’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이름에 ‘영’과 ‘미’가 포함된 고객과 동반 1인에 대해, 자유이용권을 반값에 제공하고 있다.
롯데월드 홍보팀 관계자는 “영미는 워낙 화제의 인물이다. 이름 이벤트는 원래 진행을 해왔다. 동계올림픽 시기에 맞춰 키워드를 새롭게 선정했다. 고객들이 영미 이벤트를 좋아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월드 홈페이지 자유이용권 우대정보, 롯데월드 공식 홈페이지 캡처
CJ 오쇼핑은 로봇청소기와 무선청소기 특가 상품인 ‘영미 파이팅~ 컬링세트’를 내놓았다. 컬링 경기의 핵심인 ‘스톤’이 청소기와 모양과 비슷한 점에 착안한 것으로 로봇청소기를 스톤 삼아 던져, 컬링을 재현하는 패러디물이 생각나는 상품이다.
CJ 오쇼핑의 로봇청소기 특가상품, 홈페이지 캡처
신세계TV홈쇼핑의 이벤트는 앞서 롯데월드와 비슷하다. 신세계TV홈쇼핑은 2월 27일부터, 신세계 가입자 500만 명 돌파 기념으로 “전국의 영미를 찾습니다”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상품을 구매한 고객 중 이름이 ‘영미’ 또는 ‘영’과 ‘미’가 들어간 고객들을 대상으로 추첨 행사를 열어 쇼핑지원적립금 총 3000만 원을 지급하는 이벤트다.
신세계TV홈쇼핑의 영미 이벤트, 홈페이지 화면 캡처
프로축구단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영미’ 이벤트도 이색적이다. 블루윙즈축구단은 컬링대표팀의 선전을 기념하기 위해 이벤트와 영상을 준비했다. 이름이 ‘영미’면, 3월 1일 오후 2시 수원삼성블루윙즈와 전남드래곤즈의 K리그 홈 개막전 경기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수원삼성블루윙즈 측이 올린 영미 이벤트 영상 화면 캡처. 공식 페이스북 제공
블루윙즈 축구단은 페이스북에 컬링대표팀을 패러디한 홍보영상도 올렸다. 영상 속에서 염기훈 선수는 “동료들이여, 도움이 필요할 때는 영미 대신 염키를 불러달라”고 부탁하면서 작은 골대를 향해 공을 찬다. 데얀을 포함한 다른 선수들은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문지른다. 개막전에서 100호 도움에 도전하는 염기훈 선수의 도전을 컬링 대표팀의 ‘영미’로 재미있게 풀어낸 영상이다.
축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워낙 컬링 대표팀의 영미 패러디를 재밌어 해 기획했다. 외국인 용병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대걸레를 들었다. 시종일관 웃으면서 촬영했다”며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전국의 영미들의 문의를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왓챠 플레이 측의 무료 시청 코드 이벤트(좌)와 티웨이 항공의 영미 이벤트, 각각 공식 홈페이지 캡처
중소기업들의 ‘영미 이벤트’ 경쟁도 흥미진진하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플레이는 최근 “승리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 ‘영미영미영미!’, 전국의 ‘영미’들을 위해 24시간 쿠폰 쏩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
왓챠 플레이 측이 24시간 무료 시청 쿠폰의 코드를 ‘영미’로 정한 것이다. 왓챠플레이 앱을 깔고 ‘영미영미영미’라는 코드를 입력하면, 24시간 동안 무료 영상 시청이 가능하다.
티웨이항공은 ‘대한민국 영미들의 공짜 나고야 봄나들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미’라는 이름을 가진 고객들 중 선착순 200명을 뽑아, 나고야 노선 왕복 항공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다.
‘영미’는 동명이인이 많은 이름이다. 그만큼 친숙하기 때문에 이벤트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팀 킴’의 은빛 활약 덕분이다.
한편, 열악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대한컬링경기연맹은 여자 컬링 대표팀에게 포상금을 줄 형편이 못 된다고 한다. 국민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한 컬링이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떨치기에는 아직 산적한 난제가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다음 올림픽에서 ‘제2, 제3의 영미’가 탄생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영미’ 마케팅과 함께 컬링에 대한 관심도 지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